문제는 분쟁은 개인의 영역에서보다는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그리고 협상은 처세술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기술로서 더욱 중요하다는 데 있다. 조직의 협상력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화두라는 것이다. 그런데 개인이 협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저마다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연구하는 것과는 달리, 정부와 각종 이해집단은 종종 굵직한 분쟁의 당사자로 직접 나서야 하는데도 협상력을 기르기 위해 연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형편없는 협상 전술로 판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본문 15쪽)
개혁은 필연적으로 갈등과 분쟁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개혁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해관계의 충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어느 한쪽의 가치관만 선택하고 다른 쪽의 가치관과 이해는 무조건 공격하고 누르려고만 하면 당연히 대화가 단절되고 반발이 일어난다.
개혁을 시작할 때는 상충하는 이해와 갈등을 미리 예상하고, 그것을 개혁의 설계에 반영해 각 세력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부의 개혁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이런 갈등과 분쟁에 대한 밑그림이 개혁의 설계안에서 빠져 있다는 데 있다. (본문 18쪽)
1997년 말 외환 위기가 발생한 다음 정부는 IMF(국제통화기금)와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협상에 임하기 전에 정부는 외환 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설사 외환 위기가 일어나더라도 일본이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도 이미 금융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고, 결국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를 수습할 수 있는 적절한 때를 놓치고 뒤늦게 IMF와 협상을 시작했다. 협상이 시작된 후에도 문제는 있었다. IMF와 협상이 시작된 후에야, 정말 문제를 해결하려면 IMF가 아니라 미국과 협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결국 협상의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실수를 거듭한 셈이었다. IMF와 합의에는 도달했지만 언론으로부터 IMF 이행각서에 서명한 12월 3일을 '국치일'이라고 비난받을 정도로 IMF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게 됐다. (본문 26쪽)
협상은 급부와 반대급부, 권리와 의무를 따지고 결정하는 과정이다. (본문 32쪽)
한국 정부가 취하는 대북정책은 한국 사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가들에게 언제나 중요한 관심사항이었다. 한국의 역대정권이 북한과 중요한 협상을 벌일 때 언제나 비밀을 유지했던 데는 국내 세력과 주변국가 등 협상 객체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미리 차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햇볕정책도 마찬가지 이유로 비밀리에 추진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협상의 상대방인 북한의 이익을 배려하는 데는 적극적이었던 반면, 협상의 객체인 남한 내부의 구성원과 남북한 관계에 영향을 받는 주변국가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데는 너무 소홀했다. (본문 87쪽)
북한 핵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라 한반도 정세에 민감한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가들의 이해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문제다. 핵과 관련해 북한은 미국과 쌍무적 협상 구조를 원하고, 반면 미국은 주변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다자 간 협상 구조를 원한다. 왜냐하면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모두 북한의 핵 개발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다자 간 협상 구조에서는 미국이 주변국가들과의 연합을 통해 북한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다는 약속이나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한다. 미국 정부로서는 북한에 대해 좋지 않은 미국 안의 여론
반대로 쌍무적 협상을 하게 되면 미국은 북한과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안전을 보장을 극복해야 하는 부담이 생기는 반면, 바깥의 주변국가들은 북미협상이 진행되는 것을 구경만 하다가 그 결과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 (본문 88쪽)
의약 분업 분쟁은 처음 협상을 설계할 때부터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의약분업을 추진하던 초기부터 시민단체를 끌고 갔다. 하지만 의사들은 시민단체를 배제하고 정부와 쌍무적 협상을 하자고 요구했다. 시민단체는 정부가 협상을 주도하던 초기에는 협상의 주체로 나서다가 의사가 협상을 주도하는 단계에 이르면서 협상의 객체로 물러났다. 이렇게 정부가 시민단체와 언론을 끌어들여 의사를 압박하자 협상이 오히려 복잡해졌다. 의약분업의 주무부서인 보건복지부의 역할이 줄어든 반면, 관찰자에 머물러 있던 일반 의사들이 결집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협상력은 떨어지고 의사들의 파업이 확산됐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언론의 태도가 바뀌고 시민단체가 뒤로 빠지면서 보건복지부가 나섰는데, 이것이야말로 의사들이 요구하던 의·정 대화 구도였다. (본문 98쪽)
남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관한 협상을 하고 있다. 남북한이 대부분의 조건에 대해 합의에 도달했기 때문에 남한 측에서는 합의안을 발표하자고 서두른다. 그때 북한이 새로운 경제적 지원을 요구한다. 남한은 최종적인 합의를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게 된다. 이것은 양보를 야금야금 얻어내는 전술을 사용한 것이다. 이런 전술에 당하지 않으려면 위협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대비하거나, 벼랑 끝 협상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앞의 사례를 예로 들면, 남한은 북한의 이런 전술에 대비해 이산가족 상봉에 따른 대북지원의 규모를 북한이 수락하는 조건과 연동해두거나, 아니면 협상을 결렬시키는 상황을 사전에 설정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본문 109쪽)
지금 얻을 수 있는 실체적 이익보다 상대방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미래에 얻을 수 있는 실체적 이익을 얻으려 할 때 관계적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 따라서 관계적 이익은 수단적 이익의 성격을 갖는다. 예를 들면, 남한 정부의 햇볕정책은 관계적 이익을 중시한 것이다. 북한을 지원하면서 우호적 관계를 만들어 남북한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려는 것이 그 의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적 이익에 매달린 나머지 실체적 이익과 원칙적 이익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하게 됐다. (본문 134쪽)
정보는 '협상의 시작 단계에서 공개할 정보', '논의가 어떤 특정한 사실이나 이슈에 집중될 때까지 공개하지 않을 정보', '협상이 교착에 빠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알리지 말아야 할 정보'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협상이 종료되어야 할 시점은 협상 진행에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되는 정보임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불리한 협상 결과라도 감수해야 할 처지라면, 협상의 종료시점에 대한 정보는 내게 아주 불리한 정보에 해당한다. (본문 195쪽)
미소짓는 습관과 정직성은 관계가 없는데도, 상대방이 평소에 잘 웃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할로효과, 즉 후광효과가 만들어낸 문제다. 할로효과 때문에 한 가지 좋은 점을 가지고 그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나, 한 가지 나쁜 점을 가지고 그 사람은 다 나쁘다고 말하는 오류가 생긴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장관을 인선할 때 유능한 인재보다는 자신에게 헌신적인 비서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 비서가 비서 업무뿐만 아니라 행정이나 정책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후광효과에 의한 부작용이다. (본문 2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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