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략은 기업의 유일한 솔루션은 당연히 아니다. 기술과 품질이 우선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라면에서 수프와 면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누구는 문화 전략을 라면의 수프와 같다고 생각할 것이고, 누구는 면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그냥 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 사람 또는 CEO의 자유다. 보는 만큼 보이고 생각하는 만큼 기능하는 법이니까. 삼성의 성공에서 핵심이 삼성의 기술이었을까, 아니면 이건희 회장의 비전과 미션이었을까? 소비자는 기술만 접하니 당연히 삼성의 기술이라고 말할 것이고, 삼성의 핵심 중역은 이 회장의 공을 꼽을 것이다. 그것은 서로 분리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같은 몸에서 나온 것이다. 기업경영에서 문화 전략도 딱 그렇다. 문화 전략과 하이테크는 생각처럼 그렇게 분리되지 않는다. 문화 전략에는 창조적 마인드, 분위기, 미션과 비전 의식이 섞여 있고 그것이 브랜드와 서비스, 공간에 녹아들기 때문이다.---p.12
기업 문화 전략 중 자주 언급되는 용어가 문화 마케팅이지만 실상은 정체가 뚜렷하지 않다. 문화와 마케팅 둘 다 꽤 복잡한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곰곰이 들여다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문화와 마케팅이 왜 만날까? 그 둘이 쉽게 만날 수 있을까? 문화 마케팅은 단기적인 유행일까, 아니면 트렌드일까? 그리고 CSR, 메세나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마케팅은 잡종이다. 그래서 체험, 재미, 공간, 도시 마케팅처럼 다양한 접붙이기가 있었다. 그런데 체험이나 공간 등은 마케팅과 쉽게 접목되는데 문화와 마케팅의 만남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문화 마케팅에는 문화의 개념이나 역사만큼 복잡한 오해와 갈등이 숨어 있다. 그래서 문화 마케팅을 버려야 문화기업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왜 그럴까? 문화에는 발톱이 있기 때문이다.---p.52
소비자도 왕자처럼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기업을 선호한다. 심리학의 대가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것을 ‘상호성의 법칙’이라고 표현했다. 내 마음이 가면 상대방도 마음을 준다는 뜻이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상품에 기대지 않는다. 마음이 외로워서 그 대안으로 브랜드를 고르는 것 아닌가. 소비자는 사는(buying) 사람이 아니라 사는(living)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문화 전략이 종국에는 힘을 받는다. ---p.105
IBM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가. 바로 컴퓨터 저장기술 아니던가. IBM은 자신들의 핵심 역량인 디지털 보존 기술로 소련의 많은 예술 작품을 디지털 박물관에 저장해주었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최대 박물관 에르미타슈 미술관을 직접 후원했다. 인류의 자산인 소련 미술품들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러시아는 이 은혜를 잊지 않았고 그 덕분인지 IBM은 지금도 러시아 시장에서 점유율이 1위다. 그뿐만 아니라 IBM은 프랑스 르누아르전이나 19세기 조각가전을 대규모 후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IBM은 2008년 5월부터는 스마터플래닛이라는 보다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면서 인류의 비효율과 낭비를 해결할 솔루션을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재설정했다. 문화와 예술을 포함하며 인류라는 테마를 끌어안는 행보를 걷는 산타 기업 IBM은 과연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p.122
사랑방 문화 전략과 스위트스폿의 개념을 비교해보자. 국민 타자 이승엽 선수는 한창 전성기 때 배트를 휘두르면 ‘땅!’소리와 함께 공이 빨랫줄처럼 뻗어나가 보는 사람마저 시원하게 해주는 명장면을 자주 연출했다. 이처럼 공이 골프채나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 정중앙에 제일 잘 맞은 지점을 스위트스폿이라고 한다. 경영에서 스위트스폿은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친밀감이 극대화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심리 타점이라고도 부른다.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친밀감이 극대화되는 시점은 4개의 문화 전략 중 사랑방 문화 전략이다. 이때 바로 문화와 기업, 소비자의 친밀감이 극대화된다. 많은 한국 기업이 단기 목적만을 쫓느라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방을 만드는 데 소홀하지만 사랑방 문화 전략은 돌파구가 된다.---p.163
집도 20년 살면 리모델링하는데 우리 역사와 신화도 리모델링해야 한다. 미국의 독립 영웅이나 유럽의 왕가만 쳐다보는 우리 아이들 머릿속에 한국을 각인시키려면 신화 재구성이 당연히 필요하다. 기업이 여기에 투자를 하면 좋겠다. 테카르트 면에 투자하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좋지만 대기업이 역사적?사회적 책임을 통감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여기에 투자해야 산타 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신화가 재구성되어야 소설, 서사시, 음악, 영화, 그림, 연극, 뮤지컬, 발레, 게임이 만들어진다. 그 몫은 산타클로스와 코카콜라의 경우처럼 기업이 가져가게 될 것이다.---p.213
소비자가 보내는 좋은 제품과 좋은 문화를 만들라는 발신을 무시하고 계약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늦은 처벌’이 내려지게 되어 있다. 늦지만 반드시 하는, 그래서 더 무서운 처벌이다. 빨리 했으면 제때 대응했을 텐데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소비자 신뢰 리스크에 불감증인 회사나 산업은 월가의 허황된 약속에 바람만 잔뜩 들었다가 결국엔 치명적으로 휘청대는 ‘미국 금융의 후회’와 같은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잠시만 이런 장면들을 상상해보자. 씻김굿, 이슬람 교인들의 오체복지 기도, 통곡의 벽, 환경 영화 '지구'의 마지막에서 굶어죽어가던 북극곰, 태안반도의 기름때를 걷는 100만 명의 사람들, 남대문 화재사고 때 통곡과 참회의 꽃다발 등의 영상들 말이다. (중략) 굿이 신명나는 한풀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영혼을 정화하는 힘이 있듯이 문화 전략도 딱 그렇다. 그 씻김의 정신을 문화 전략은 또 하나의 힘으로 가지고 있다.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는 힘으로. 이것이 문화 전략에 관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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