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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

검정도 색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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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436쪽 | 540g | 136*205*30mm
ISBN13 9788993964233
ISBN10 899396423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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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효나
서울대학교에서 도자공예를 전공하고 프랑스로 떠나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진행했다. 2007년 파리-세르지 국립고등예술학교에 입학했고 사진개인전 『새벽의 대화』을 열었다. 2009년에는 파리에서 쓴 장편소설 『오래된 소녀』를 출간했다. 현재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하며, 소설 쓰기와 프랑스어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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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정면으로 대응한 사람들만의 목소리가 있다. 작품을 넘어서 삶 자체가 예술인 사람의 그것.
출판한 책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고, 한 명의 ‘작가’ 그리고 ‘혁명가’로서 사회적 입지를 굳히고, 66세의 나이로 매춘을 그만두고 나서도 자신은 영원히 ‘창녀’라고 말하는 그리젤리디스 레알. 그녀는 종종 자신의 직업을 제빵업자와 비교하곤 한다. 그들이 고도화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여 맛있는 빵을 만들듯이 창녀들도 훈련된 기술과 예술, 거기에 과학을 도입하여 심리적으로나 성적으로 절망에 빠진 사내들을 구하는 역할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옷을 벗으세요.”
그 후에는 침묵이 계속되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포즈를 취해야 했다. 사각사각, 종이를 스치는 연필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렸다. 청년은 한숨을 쉬었고 나는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는 마침내,
“끝났습니다.”
라고 말하며 연필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그는 내게 15마르크를 내밀었다. 난 뭐라고 대꾸할 기력도 없었다. 그저 돈을 받아 쥐면서 그의 작품을 곁눈질해 보았는데, 맙소사! 커다란 백지 한가운데에는 아주 아주 작고, 서투르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실루엣 하나만이 그려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저걸 그리려고 그 오랜 시간을……! --- pp.49~50

“아름다운 여인이여, 나와 함께 식사를 하겠소?”
그는 나를 중국 식당에 데려갔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음식들은 이제 곧 다가올 고통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난 용기를 내기 위해 와인을 들이켰다.
식사가 끝나고 우리는 나란히 길을 걸었다. 배는 두둑했지만 날이 너무 추웠다.
우리는 승강기가 없는 오래된 건물에 올랐다. 마지막 7층, 지붕 바로 아래에서 그는 다락방 문을 열었다.
“받아.”
그 말과 함께 그는 50마르크를 내밀었다. 절망적인 초록색 지폐 한 장을. 그러고 나서는 꽃무늬 디방 위에 올라갔다. 네 다리로 엎드려서 털 난 거대한 엉덩짝을 벌리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핥아.”
아, 이것이 바로 천국으로 통하는 치욕스런 비밀의 문이었다! 먹고살고 싶다면, 빨고 핥아야 하는 역겨운 성체의 빵 말이다!
이윽고 뚱뚱보 독일인은 가냘프게 울었다. 언젠가 기저귀를 채워주던 엄마의 부드러운 손가락을 경험하고 있다고 믿는 이 늙은 갓난아기는 저렇게 엎어져서 지금까지 똥을 한 트럭은 눴을 것이다! 이제 끝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넥타이를 매고 다시 위엄을 되찾았다.
“한잔하러 갑시다.” --- pp.69~70

나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닭을 대리석 서랍장 위에 올려두고 빌을 기다렸다. 아이들은 이미 잠든 뒤였다. 자정이 되어 들어온 빌은 문턱을 넘자마자 곧장 서랍장으로 달려들었다.
“닭 요리했어? 좋아. 맛만 좀 볼게.”
그리고 빌은 그 크고 탐욕스러운 이빨을 드러내고 야생적으로 살점을 뜯어나갔다. 내가 손가락 하나 대기도 전에 싸그리 먹어치운 것이다. 순식간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는 기름이 번들번들한 입을 닦아내며 말했다.
“굿, 베리 굿! 우리 달링, 이제 침대로 가자.” --- p.145

한 포르투갈 사내를 받은 기억도 난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지갑에서 멋들어진 지폐 몇 장을 꺼내 보였다. 내가 모르는 화폐였지만 화려한 채색 장식이며 주르르 늘어진 0자를 보니, 엄청난 액수일 게 분명했다. 그는 그중에서 몇 장을 뽑아내더니 몹시도 귀족적인 자태로 테이블 위에 그 돈을 날렸다. 내 심장이 존경심으로 가득 차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날 밤은 문제없이 지나갔다. 다행히도 그는 정상적인 사람인데다가 일이 끝나고 몇 시간 동안 잠을 자기까지 해서 나도 얼마쯤 쉴 수 있었던 것이다. 날이 밝았고, 나는 그에게 성냥갑 두세 개 정도를 권해보았다. 그는 즉시 어제의 그 지갑을 열었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중 두 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아침이 되어 들뜬 마음으로 돈을 환전하러 은행에 갔다. 창구 직원이 장부를 들여다보며 계산을 하는 동안 나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그 포르투갈 자식한테 속았다! 사이즈만 크지, 참으로 인정머리 없는 지폐들이었다. 종이에 화려하게 새겨진 섬세한 장식은 치명적인 속임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정해야 했다. 그날 밤 내내 핥고 빨아서 번 돈은 겨우 16페니히(오늘날 원화로는 96원이다-옮긴이)라는 걸. 그나마 조금이라도 잤었다는 걸로 울분을 다스릴 수밖에!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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