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하기에 주어진 환경을 될 수 있는 한 효율적으로 가꾸려고 노력한다. 일하는 동선을 짧게, 햇빛이 잘 들게, 늘 앉는 자리에서 즐거운 것들을 볼 수 있게. 그러자니 같은 물건도 자주 이리저리 옮기곤 한다. 한 친구는 사람들에게 우리 집 이야기를 할 때면 “올 때마다 뭔가 바뀌어 있는 집, 일주일에 두 번 왔는데도 두 번 다 바뀌어 있는 집”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건 아주 특별한 경우이지만, 그만큼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사실이다. 우리 집에는 흔히 있는 큰 소파나 장식용 그릇장, 대형 텔레비전, 거대한 탁자와 같은 가구가 없다. 모두 옮길 때 분해와 조립이 간편하도록 우리가 직접 만든 가벼운 것들이다. 하나하나 보면 가구라고 부르기 쑥스러울 정도로 간단하고 밋밋한 것들이지만 같이 모여 있으면 나름대로의 멋이 느껴진다.--- pp.15-16
물건에도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하듯 사람과 물건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잘 쓰이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 자리만 차지하는, 쓸모없는 물건도 있다. 서로 임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버려진 물건이 거라지 세일이나 재활용 가게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쓰임이 생기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어딘가에서 다 부서져 가던 물건이 내게로 와서 새로 깨끗한 모습으로 자리를 잡고 나면 참 뿌듯하다. 또한 버려질 물건을 이리저리 고쳐서 다시 쓸 수 있게 만들고 난 뒤의 기분은 새 물건을 샀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 ‘없음’을 ‘있음’ 로 고쳐 놓았다고나 할까. 아니, 아무것도 없었으면 차라리 좋을 텐데, 짐처럼 방치되어 있는 것은 ‘없음’만도 못한 ‘나쁨’이다. 그 ‘나쁨’을 ‘좋음’으로 바꾸고 나면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세상에 좋은 일을 한 가지 보탠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들고, 세상을 감싸고 있는 큰 기운이 그 물건과 나를 잘 연결해 준 것 같아서 고맙다. 그렇게 해서 우리와 인연이 된 물건들은 지금까지 함께 잘 지내고 있다. 간혹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난 물건은 떠나보내기도 했다. 어차피 물건이란 잠시 내게 머무는 것이므로 나보다 더 필요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나면 망설임 없이 내 주기도 한다. 언제까지 갖고 있겠는가? 인연이 닿았을 때 잘 쓰고, 죽기 전에 치워놓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pp.38-39
우리들은 물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옷장 안에는 옷이 가득, 찬장 안에는 그릇도 가득, 여러 가지 다른 기능을 가진 가전제품이나 잡동사니가 방, 지하실, 다락까지 가득하다. 그러면서도 또 무언가를 산다. 계절이 바뀌면 입을 것이 없다고 새 옷을 사고, 새로 나온 더 편리한 물건을 산다. 자고 나면 또 새로운 상품들이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비가 미덕인 지금의 사회에서, 상품의 홍수와 현란한 할인 광고들로부터 쓸데없는 물건들을 집안에 들이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유행에 따라 바뀌는 옷과 가재도구를 생각 없이 사느냐, 휩쓸리지 않고 나의 사는 방법을 지키느냐는 자신의 선택이다.
어느 날 죽음이 다가왔을 때 이미 치우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내 뒤에 남겨짐을 깨닫게 된다면 편히 눈이 감아지겠는가. 빈손으로 왔으니 갈 때에도 빈손으로 가야지.--- pp.67-68
나와 들꽃과의 만남은 오래되었다. 오래전 달력에 넣을 한국의 야생화 그림을 2년간 그리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이후 꽃이 좋아서 계속 그리고 있다. 나는 특히 자잘한 들꽃이 좋다. 아스팔트 사이 작은 흙에도 싹을 내고, 아무도 볼 것 같지 않은 자리에도 꽃을 피우는 들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즐겁다. 가진 것 없는 들꽃들이 다음에 피울 꽃을 위해 자신을 지탱해 준 줄기와 이파리마저 버리고 바람을 따라 홀홀히 떠나는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많이 갖고도 더 갖고 싶어 하고 자기가 가진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욕심많은 인간의 모습은 한낱 들풀만도 못해 보인다.--- p.89
‘고맙다’고 서로 인사를 나누고 먹으면 밥이 더 맛있다. 먹을거리를 키워 준 농부에게 고맙고, 영양분을 나누어 준 흙에 고맙고, 물을 뿌려 준 비에 고맙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어 준 하늘에 고맙다. 그날 먹을 게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음식이 되도록 만들어 준 사람에게 고맙고, 가족이 같이 모여서 식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이 고맙다.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먹으면 무엇을 먹어도 맛있다. 다 먹고 나면 빈 그릇은 각자 설거지대로 가져가 물에 담가 놓고 그릇 정리와 설거지도 같이 한다. 우리 가족이 저녁을 항상 집에서 같이 먹는 걸 보고 우리 아들 친구가 이상해 하며 물어 본 적도 있다.
“너희 집은 어떻게 그렇게 매일 저녁을 집에서 가족이 같이 먹니?”
너무나 당연한 그 일이 요즘은 이상하게 보이는 풍경이 되었다.--- pp.199-200
좁은 집에서 쾌적하게 지내려면 살림살이를 갖지 않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살다보면 또 뭔가 물건이 생기기도 하고, 때가 되어서 필요하면 고쳐 만들기도 하는 것이지, 재활용 자체가 삶의 목적은 아닌 것이다. 그동안 우리들이 고치고 만들며 재생산을 해 온 목적은 쓰지 않는 것들을 쓸모 있게 만들자는 거였다. 이제 그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으니 앞으로는 적게 갖고 사는 것이 목표다.--- p.250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가 땅 속에서 썩고 분해되려면 상상할 수 없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대략 종이는 2년에서 5년, 나무젓가락은 20년, 금속 캔은 100년, 스티로폼 컵 500년, 플라스틱 병 700년, 유리병은 1000만 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잠시 귀찮은 생각에 분리하지 않고 버린 쓰레기 하나하나가 모여서 산을 이루고 지구를 병들게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숨을 쉬고, 동물과 식물이 서로 주고받으며 산다. 인간이 만들어 낸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지구 구석구석이 썩어 가면 지구에 사는 동식물들은 먹을 것이 없어 멸종된다. 어느 한 쪽이 병들고 아프기 시작하면, 그 고통은 이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되어 있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또 귀여운 손자들에게 남겨 주고 싶은 것은 아름답고 건강한 세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조금씩 비우고, 주변을 조금씩만 더 치우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그것들이 모여 훗날 큰 고마움으로 돌아올 것이다.
---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