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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밤 1

비 내리는 밤 1

최수현 | 가하 | 2017년 06월 2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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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6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500쪽 | 522g | 128*188*30mm
ISBN13 9791130019345
ISBN10 1130019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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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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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라는 게 그랬다. 그 사람이 어떤지, 뭘 하는지, 예습이라도 하듯 미리 알고 나왔다. 그리고 예습을 많이 하면 실제에선 딱히 질문할 거리도 없었다.

“……저는 제가 열심히 잘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왜 이 남자에게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툭, 유리창에 닿는 빗방울 하나에 그녀의 시선이 잡혔다. 곧게 흘러내리지 않고 바람 부는 대로 자유롭게 빙글거리는 물방울이 유인의 건물과 겹쳐 보였다.

비가 오네.

오늘 하루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이상했는데, 그중에 이렇게 때맞춰 내리는 비가 가장 신기했다. 처음 본 묘한 남자에게 본심을 말하는 것 정도는 이제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원이 씨 말은 이제라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 그런 결심이에요?”
“아…… 아뇨. 그러면 분명 유인 씨가 곤란해질 거예요.”

도대체 내가 왜? 반은 궁금한 듯, 또 반은 초조한 듯 그의 표정이 다양해졌다.

“원한 거든 아니든 오늘 저는 첫 번째 맞선을 봤으니…… 오늘부터 최선을 다한다면 저는 이 맞선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하거든요.”
“……곤란하긴 하네요.”
“살던 대로 적당히 하고 살면 저는 또 내일이든 모레든 부르는 대로 나와서 이렇게 앉아 있겠죠. 그때에는 상대방이 저한테 인형이니 효녀니 놀려도 아무 말 못할 거예요.”
“그건 더 곤란한데.”

빗방울이 셀 수 없을 만큼 수를 늘렸다. 세상에, 어쩌지, 몇몇 사람들이 호들갑스레 자리에서 일어나고 멀리서 종업원이 부리나케 비닐 막을 들고 카페 문을 열었다. 거세지는 빗소리에도 유인과 원만 고요하게 있었다.

“맞선에 최선을 다해 혼신을 기울이면…… 혹시 내일 당장 결혼해야 하는지?”
“아뇨, 그 정도는 아니고요. 그래도 보통 하는 것처럼 세 번 정도는 더 만나보겠죠.”
“아.”
“서유인 씨, 혹시 저랑 세 번 정도 더 진지하게 만나실 생각 있으신가요?”

다짐하건대 평생 여자 때문에 말문이 막힌 건 처음이었다. 그가 본 누구보다도 고상하고 우아한 외모의 여자가 다정하게 건네는 말이 갑작스러운 빗소리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럼 나는 얻는 게 뭔지?”

원은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결심이라도 지키겠지만 그의 사정은 달랐다. 얼굴과 목덜미를 살짝 붉힌 그녀가 아니었다면 진짜 인형이라 깜빡 속을 뻔했다.

“유인 씨 한 번도 여자에게 거절당하신 적 없으시죠? 거기다 효자이시고.”
“그렇긴 한데, 두 개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세 번을 만나도 아니다 싶으면, 유인 씨가 더 이상 시달리지 않게 제가 먼저 유인 씨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볼게요. 직접 말씀드리기에는 효자라시니.”
“뭘?”

턱을 쓰는 그의 손동작이 웃음을 모두 감추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곤조곤, 원의 더없이 진지한 말이 이어질수록 그의 웃음도 사위어들었다.

“댁의 아드님은…… 애초에 결혼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고 네 시간이나 늦어도 미안한 것보다는 자기 심기가 먼저라고요. 늘 웃고는 있는데 속으로는 딴생각만 하고 있고, 본인은 모르겠지만 싫은 속내도 잘 못 감춰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전혀 모르고 와선 은근히 반말도 하고. 괜히 선보라 밀어넣으면 시간 때우며 도망갈 생각만 하는데, 아들 장가도 좋지만 남의 집 귀한 아가씨 시간 뺏으면 되겠냐고요.”
“…….”
“으음, 일단은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천천히 눈을 깜빡인 유인이 목젖을 크게 울렸다. 두어 번 숨을 들이켜본 그가 자리에 앉고 처음으로 원을 진지하게 마주 보았다. 훑거나 장난스럽거나 다정한 척조차 없다.

“……전공이?”
“심리학이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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