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자전거로 여행한다고? 농담도 정도껏 하라고. 내가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살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어.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는 있는 거야? 거리에 총을 든 강도들이 우글거린다고. 무슨 사고가 나도 난 몰라. 절대로 상관 안 할 테니까 마음대로 해.”
긴 비행 끝에 아프리카 대륙의 최서남단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내리자 우리는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여행자 숙소를 운영하는 아저씨가 우리의 황홀한 감상을 깨고 다시금 긴장 모드로 돌아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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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정말 엠티를 온 듯한 기분이 났다. 아름다운 사막이 바로 옆에 있고, 하늘빛은 투명했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자 하늘은 점점 파스텔 빛으로 물들었다. 말을 잃게 하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면서 바비큐를 먹고 맥주를 마시니 기분이 그만이었다. 우리는 분위기에 취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이 깊어지자 하늘이 수많은 별들로 가득 찼다. 여행하는 동안 저 별들만큼이나 아름다운 추억을 가득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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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를 지나자 길이 거칠어지고 정글이 나타났다. 왠지 야생동물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앗 코끼리다!”
갑자기 앞에서 코끼리 세 마리가 나타났다. 도로에서 코끼리를 만나다니, 정말 믿겨지지가 않았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뒤에도 코끼리 일가족이 도로를 점령했다. 코끼리에게 완전히 포위된 것이다. 우리 셋은 겁에 질려 숨이 멎는 듯했다.
‘우린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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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비아의 정육점은 냉장 시설도 잘 갖추고 고기의 육질도 좋아서 우리는 2kg씩 쌓아놓고 포식을 하기도 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불판 위에 티본스테이크를 얹고 지글지글 익혀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가면서 먹는 그 맛이란! 어느 날 이대장이 맛있게 뜯어 먹는 모습을 보니 왠지 자신도 먹어보고 싶어졌다며 용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처음에는 뼈를 발라 먹는 폼이 영 어색했지만, 잠비아 여행이 끝나갈 즈음에는 용이도 아주 능숙하게 발라 먹었다. 내가 용이의 옆구리를 찌르며 한마디 했다.
“작작 좀 뜯어라. 네가 발라 먹은 뼈는 개도 못 먹겠다.”
이렇게 길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을 때면 동네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 p.148
아프리카에서의 생활을 통해 우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50리터의 물이 필요했던 샤워는 5리터만으로도 가능했고, 양변기의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15리터의 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생활 속 낭비들이 이곳에서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예전의 생활에 익숙해질 테지만, 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물 부족 문제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
--- p.178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나에게 총을 겨눴던 것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카메라 내놔.”
“무, 무슨 일이죠?”
대답을 하긴 했지만, 이미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설마 강도인가? 여기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내와 용이는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당장 내놓으라고!”
--- p.233
마사이마라는 ‘마사이족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마사이마라 입구에서부터 붉은 천을 뒤집어쓴 마사이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길게 늘어진 귀와 형형색색의 화려한 장식을 한 마사이족은 과거에 사자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만큼 용맹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는 관광객과 사진을 찍거나 마사이족 마을에 초대하고 받는 입장료로 생계를 이어간다고 했다. 소를 몰고 사자를 때려잡으며 자유롭게 푸른 초원을 누비며 살 때가 좋았을까, 아니면 관광객을 대상으로 돈을 벌며 살아가는 지금이 좋을까? 무엇이 좋다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문명’이 꼭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 p.257
한국의 남대문처럼 왁자지껄한 시장을 둘러보며 거니는데, 한 남자가 내 앞쪽으로 지나치게 가까이 달라붙었다. 조금 불쾌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지나가려는 찰나, 글쎄 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내 가슴을 슬쩍 만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1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뒤에서 옥수수를 먹고 있던 이대장에게 소리쳤다.
“여보! 이 남자가 내 가슴 만졌어! 꺅! 난 몰라!”
“뭐라고? 이 자식이! 거기 안 서!”
복잡한 시장에서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이대장은 먹던 옥수수를 그 남자의 뒤통수에 던지며 쫓아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때 아닌 추격전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남자는 얼마 도망 못 가 남편과 용이에게 붙잡혔고, 사람들이 그 주위를 에워쌌다.
--- p.286
술에 만취한 상태 같은 고산증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정상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운 곳에서 환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한 것이다! 고개를 든 순간, 내 앞에 킬리만자로 최고봉 우후르 피크가 보였다! 우리가 해낸 것이다! 마치 고난을 딛고 일어난 듯 벅찬 감동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우리 셋은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손마담 : 용아, 괜찮아?
용이 : 내가 뭐라고 그랬어? 정신력으로 이겨낸다고 했지?
이대장 : 모두 정말 잘 따라와줘서 고마워!
--- p.298~299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 일어섰다, 끌었다, 멈췄다를 반복하며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갔고, 우리의 체력도 바닥나기 시작했다. 30km만 가면 있다는 마을이 300km 떨어진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게 반 탈진상태로 바닥만 보며 자전거를 끌고 가는데, 코끼리 똥처럼 보이는 배설물이 길을 잔뜩 덮고 있었다.
‘설마, 코끼리 똥은 아닐 거야. 아니겠지?’
보츠와나에서 야생 코끼리를 바로 눈앞에서 봤을 때의 두려움이 밀려오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공황 상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정글에서는 해가 급속도로 지기 시작했고, 우리 셋은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랫길을 쉬지 않고 걸어가야 했다.
--- p.33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