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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

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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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1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03쪽 | 428g | 195*260*30mm
ISBN13 9788990365590
ISBN10 8990365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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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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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어간 다음 거기 계단에 앉아 나 그런 생각했어. 엄마한테는 참 아름다운 사랑이 있었구나 하고. 나는 그렇지 못한데. 나는 그 아저씨가 누군지 몰라. 그런데 엄마한테 참 좋은 사람 같았어. 평생을 두고도…….”

“윤희가 그렇게 생각해 주면 엄마 마음이 가볍고.”

“고등학교 때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에도 그랬어. 나는 엄마들은 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랑 같은 건 아예 없는 사람들인 줄 알았거든.”

“윤희야.”

“혼자 앉아서 나는 뭔가 하는 생각을 했어. 엄마 사랑은 그런데 나는 뭔가 하고…….”

“앞으로 있을 거다. 아직 그런 사랑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지.”

“엄마.”

“왜?”

“나 엄마 딸 맞지?”

“그래.”
---p. 289
수술 후 회복실로 돌아와 누울 때에도 그랬다. 엄마와 단 둘이 있는 방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챙이 넓고 긴 개량 야구모를 쓰고 옆으로 다리를 오므리고 누웠다. 병원에서 주는 한 끼의 회복식으로 미역국이 나왔고, 누워 있는 아이를 일으켜 그 국에 밥을 말아 먹일 때, 이 아이를 낳던 날 친정 엄마가 말아주던 첫 미역국을 먹던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수술실에서 나오면 안쓰러움이 덜할 줄 알았는데, 빈 배를 채워줄 미역국을 떠먹이는데 국에 만 밥이 아니라 대접 가득 담겨 있는 어미 몫의 안쓰러움을 어미 손으로 직접 퍼 먹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울지 마. 엄마. 나도 이제 안 울게…….”
---p. 67
스물세 살 먹은 딸아이가 마흔여섯 살 된 엄마한테 서로 가장 깊은 비밀을 나누어 간직한 사이처럼 은밀한 목소리로 엄마는 알지? 하고 말할 수 있는 일이 예전에 우리에게 있었던 것이다. 다른 집 아이가 다른 상황에서 자기 엄마에게 엄마는 알지? 하고 묻는 것과 지금 이 상황에서 윤희가 엄마는 알지? 하고 묻는 것은 같은 말이라도 그 의미가 다른 것이었다. 이어 윤희가 말한 ‘내가 왜 이런 말하는지’가 바로 예전의 그 일인 것이었다.

“그래. 엄마도 알아.”

“엄마.”

“응.”

“나는 엄마가 내가 말할 때마다 그래, 라고 말하는 게 참 좋아.”
---p.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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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진실을 실어 나르고 진심을 가감 없이 전달해 주는 완전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스킨십은 둘을 하나로 연결하는 온전한 통합을 대변한다. 그런 관계는 우리 모두가 타자와의 관계에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이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언어는 소통을 가로막고 진실로부터 끊임없이 달아나는 텅 빈 기호들이 되었으며, 우리들 각자는 서로가 서로에게 교통이 불가능한 고립된 우주들이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더욱 그리워진 완전한 소통과 통합의 세계를,『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은 엄마와 딸의 이상화된 관계를 통해 우리 앞에 그려 보인다. 그것이 다만 소망일 뿐일지라도 그런 소망이 남아 있는 한 우리에겐 『스물셋 그리고 마흔여섯』과 같은 이야기가 필요할 것이다.
박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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