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우리 안의 원시 논리’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건의 발생을 자기 행동의 결과라고, 혹은 다른 누군가가 준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그것이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도로 한가운데서 사슴을 두 번이나 친 내 친구는 “왜 나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라며 울부짖었다. 그녀는 자신의 운전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교육받은 이성적인 그녀가 이러한 사건을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처벌로 여겼다. 마치 우주(우주라고 쓰지만 신이라고 읽는다)가 그녀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모니터한 뒤 결과를 내려주기라도 했다는 듯 말이다.---p.70 ‘모든 것이 내가 불러들인 일: 과도한 인과성 탐지의 오류’ 중에서
3장 ‘일상에서부터 전쟁까지, 원시 논리가 우리를 지배할 때’
영성은 미국에서 애플파이, 모성애와 함께 신성불가침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는 매우 영적인 사람이야”라는 말은 “그 바보는 유령을 믿어”라는 말이 아니다. “그는 더 높고 더 축복받은 세상을 지향하는 아름다운 사람이야. 좋은 음식, 좋은 섹스, 좋은 음악만 추구하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 비해 훨씬 착하고 고결하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영성이란 게 더 훌륭하고 헌신적인 친구나 연인, 부모, 자녀를 의미하는 거라면 나도 거기에 포함되고 싶다. 외부인을 대할 때 섣부른 판단이나 왜곡, 비난 없이 그 사람 자체로 받아들이는 걸 의미한다면,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나는 영성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은 상당히 영적인 사람이다. 그건 조지 부시도 마찬가지다. 성전(聖戰)은 전형적으로 영적인 사람들에 의해 치러졌다. 영적인 것이 늘 좋은 건 아니다.---p.115 ‘그들은 매우 영적인 사람들이다’ 중에서
3장 ‘일상에서부터 전쟁까지, 원시 논리가 우리를 지배할 때’
얼마 전에 나는 가벼운 대화라고 생각하고 앉아 있다가 매우 신경 쓰이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편이 문신을 한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서 결국 혼자서 어린아이를 키워야만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동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 그녀가 말한 의미에선 그렇다. 나는 인과관계를 믿지만 그녀가 주장하는 신성한 목적의 인과관계는 아니다. 나는 이혼 같은 사건이 궁극적인 목적을 예측하는 마스터플랜에 따라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p.129 ‘정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까’ 중에서
6장 ‘가장 위험한 망상’
지구상의 모든 종은 생존 본능을 보인다. 쥐는 자신의 생활주기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해도 번식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인간은 개념?출생?죽음 등에 대한 추상적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래서 얻은 게 뭔가? 우리는 생물학 책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유일한 종이지만 또한 생존과 번식의 본능을 파괴하는 믿음 체계에 빠질 수 있는 유일한 종이기도 하다. ---p.295 ‘성스러운 전쟁을 벌이는 이유’ 중에서
6장 ‘가장 위험한 망상’
제임스 랜디가 공개적으로 유리 겔러를 반박해도 사람들은 그를 심령술로 숟가락을 구부린 사람으로만 기억한다. 그가 공개적으로 반박당하고, 랜디에 대한 겔러의 소송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기억하는 건 겔러의 능력이지, 그러한 능력의 본질이 아니다. 니켈은 또한 튜린의 수의(죽은 예수의 몸을 덮었다고 전해지는 천) 논쟁을 조사했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수의는 사실 중세에 스스로 고백한 날조자의 작품임을 보여주는 과학적 증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니켈의 지적대로 수의의 속임수가 얼마나 많이 발견되고 공개적으로 보도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과 언론은 그런 이야기가 그냥 사라지게 두지 않는다. 매년 부활절이면 그 이야기는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고, 또다시 반박된다. 그냥 버리기엔 너무 좋은 신화인 것이다. 분명 언론이 커다란 공모자다. 그들은 좋은 이야기를 보면 금방 알아차리는데, 순진함이나 미신이나 원시 논리를 이용해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p.309 ‘마술사와 사기꾼’ 중에서
7장 ‘원시 논리의 극복’
언젠가는 인간의 대다수가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네안데르탈인과는 다른 원시 인류인 것처럼, 마치 다른 종처럼 보일 정도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누군가는 그런 새롭고, 덜 미신적이며, 더욱 현명한 인간 종의 이름을 따로 만들어 붙일지도 모르겠다. ---p.337 ‘우리에게 가능성이 있는가’ 중에서
7장 ‘원시 논리의 극복’
이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다. 즉 원시 논리는 신이나 국가를 사랑하는 데서 시작할지 몰라도 곧 타인에 대한 증오로 확대된다. 일단 자신의 신이나 국가가 최고라고 결론을 내리면, 국경선 너머나 교회 밖의 얼간이들을 참아내기는 힘들어진다. 그리고 그들에게 진실을 이해시켜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면 곧 “개종이냐, 죽음이냐?” 문구의 티셔츠가 돌아다니게 되는 것이다.
---p.343 ‘원시 논리의 중독에서 벗어나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