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37억 년 전에는 빛도 없고, 섬광도 없고, 폭발도 없었다. 무한히 작고 조밀하고 뜨거운 점 하나가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 입자와 힘으로 무를 채웠다. (중략)
뭐라고 정의할 수도 없고, 측정할 수도 없는 작은 점 같은 것 속에 시간과 공간이 엄청나게 큰 에너지 밀도와 높은 온도의 형태로 존재했다. 이 점과 같은 것, 곧 무한히 작고 뜨거우며 밀도가 무한히 큰 이 최초의 특이한 영역인 미지의 영역Singularitaet은 현세와 내세 밖에 말하자면 형이상학과 물리학의 중간지대에 있었다. 이 미지의 영역은 시공 속에 편입되지는 않았지만, 빅뱅의 심장이었다. 이 미지의 영역으로 말미암아 우주가 약동하기 시작했다. ---pp.14~15
별의 죽음은 오로지 시간문제이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붕괴하고, 덮개가 다시 중심부에 빨려들어 몹시 뜨거워진다. 별은 철을 생성하기까지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려면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거성(직경이 태양의 10~100배 되는 별)은 생애 마지막 단계에서 무겁고 안정된 원소인 금과 우란(우라늄)을 생성한다. 뜨거운 덮개는 마지막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별이 수소를 헬륨으로 바꾸는 데 필요로 하는 핵연료가 없으면 무서운 중력 붕괴가 일어나 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붕괴와 동시에 복잡한 과정이 많이 일어난다. 마침내 별은 붕괴와 함께 폭발하여 찢어진다. 이때 별은 무거운 원소가 농축된 가스 덮개를 초속 2만 킬로미터로 우주 속으로 내던진다. 섭씨 수백만 도나 되는 별 파편에서 새 별이 생성된다. 아마도 행성을 낳는 별일 것이다. 그 중에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별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직경이 수백만 킬로미터이던 거성이 매우 작은 별의 시체가 된다. 이 시체는 직경이 몇 킬로미터밖에 안 되고 입자가 매우 가까이 붙어 있고 서서히 냉각된다. 천문학자는 이것을 중성자별이라고 한다. ---pp.44~45
생명을 베풀어주는 이 둥글고 빛나는 태양을 매일 보아서 그런지 우리는 이 어머니별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고는 좀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별의 죽음은 우주의 진화에 있어서 확고히 정해진 자연법칙이다. 별과 은하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주의 심연에 있는 수십억 개의 다른 태양이 생명의 순환을 마친 후에야 우리 어머니별은 매우 조밀하고 차가운 별의 시체인 백색왜성으로 변할 것이다. 빛과 열을 베풀어주는 우리 어머니별은 다른 태양과 달리 일정 기간 생존할 것이다. 태양이 앞으로 약 80억 년간 헬륨과 핵 융합할 수소를 비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차가운 별의 시체가 되어 몹시 차가운 우주 속으로 끌려갈 태양의 모습에 놀라서는 안 된다. 어쨌든 우리가 있든 없든 생성과 소멸의 역사는 계속된다. ---p.67
물론 인간도 DNA의 자식이다. 각 염색체 속에 있는 DNA 분자는 세포핵에서 이중나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염색체는 23쌍 곧 46개 있고, 각 염색체의 DNA는 수천 개의 정보단위 곧 유전자를 운반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것을 자기 증식 능력이 있고 나누어지지 않는 마지막 유전 정보 단위로 이해한다. 유전자 하나는 짧은 DNA 조각 하나를 대표하는데 이 DNA 조각에는 앞뒤로 늘어선 많은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진 특정 단백질을 생산하라는 지시가 들어 있다. 따라서 유전자는 수정된 난세포에서 다 자란 인간에 이르는 발달을 실현하는 복잡한 공동작용을 조종하기도 하고, 우리의 외관과 성질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DNA 건축 설명서는 네 개의 문자 체계로 쓰여 있고, 각 문자는 DNA의 화학적 구성요소인 핵 염기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 중 하나와 일치한다(RNA에는 티민이 없고, 우라실이 있다). 여러분이 DNA에서 특정 유전자를 찾아내는 일은 모르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백과사전을 다 뒤지는 일과 같을 것이다. 서가에는 사전v?46권이 있고, 어느 것을 꺼내더라도 A, G, T, C 네 개의 문자로 쓰여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네 개의 문자가 제멋대로 위치를 바꾸어 아는 단어나 논리적 문장은 하나도 없다. 여러분은 연관된 텍스트나 얻으려는 정보 대신 AGTTCGTGAAAACTCCG처럼 문자 네 개가 무의미하게 뒤섞여 있는 텍스트만 볼 것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신비스러운 문자의 4중주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특히 오늘날 분자생물학자들이 이 ‘문자 기호’의 97%를 무용한 정보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문자 샐러드로 이루어진 세포 기관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p.103
인간은 과거의 흔적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인원과 다르다. 우리는 이 점을 양심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우리는 최근(2007년) 고고학적 발굴 덕분에 침팬지가 적어도 4,300년 전에 돌로 호두를 쪼갰다는 것므 안다. 놀랍지 않은가? 침팬지가 수백만 년 전에 이 기술을 터득하고 계속 발전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면 침팬지와 그 후손이 오늘날 우리 집 안방에 들어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모든 존재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무언가 끼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p.138
역사에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자기가 죽어야 하는 존재임을 처음으로 의식한 사람은 누구이고, 처음으로 별을 바라본 사람은 누구이고, 세계의 기원을 곰곰이 생각한 사람은 누구이고, 모든 존재의 제1원인을 두고 온갖 추측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처음으로 자의식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존재 의의의 배후를 탐지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런 사고의 창조자는 호모 하빌리스의 대표자였을까, 호모 하빌리스의 동료이자 후에 나타난 호모사피엔스의 조상인 호모 에렉투스의 대표자였을까(두 종은 거의 50만 년간 같이 존재했다)---pp.149~150
누가 또는 무엇이 이 우주를 창조했느냐는 것, 우리 인간이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3차원 공간을 만들었느냐는 것, 물질적인 것(또는 비물질적인 것)을 만들었느냐는 것, 다른 3차원의 토대가 되는 4차원 곧 시간을 만들었느냐는 것, 이런 질문들은 창조적인 주인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그것도 늘 존재함을. 우주에 지금처럼 생명이 가득 차도록 한 것이 어떤 에너지 형태이냐 비에너지 형태이냐 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이다. 우리는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순전한 우연일까 하고 자문해 본다. (중략)
그 사이에 ‘강한’ 인류 지향 원리가 나타난다. 이 원리는 우주에는 진화하는 중에 생명체가 생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는 목적 지향 메커니즘으로 우주를 설명한다. ‘마지막’ 인류 지향 원리는 더욱 돋보인다. 이 원리는 우주에 언젠가 지적인 생명체가 출현하여 발전할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지적 생명체는 이 우주에 출현한 후 결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의 요청이다. ‘강한’ 인류지향 원리의 가장 엄격한 버전은 ‘목적론적’ 이형에서 실현될 것이다. 목적론은 목적 지향적인 힘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과 계획이 우주 생성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생명체가 발달하도록 하는 교묘한 결정이 깔려 있다. 그 배후에는 모든 것보다 상위에 있는 의지, 우주 밖에 존재하고 생명체의 창조를 꾀하는 창조자가 존재한다. 프랑스의 고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피에르 떼이야르 드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1881-1995)은 이 전제에서 출발한다. 샤르댕의 이론 모형은 체계적으로 생명, 인간, 정신의 생성을 목표로 하는, 역동적이고 스스로 발전하는 우주를 설명한다. 이 ‘계획된’ 우주Kosmogenese는 물질 복잡성 증가와 정신 중심성 증가를 수반한다. 말하자면 신에서 출발한 진화는 동시에 신을 지향한다. 이 모든 발전의 끝에는 ‘오메가 점Punkt Omega’이 있다. 세상 마지막 날에는 공간, 시간, 의식을 포함한 우주 전체가 이 점에 모인다.
---pp.182~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