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이렇다. 나는 ‘상상 친구’ 같은 걸 믿는 부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진짜다. 올가을이면 5학년에 올라간다. 내 나이에 괴짜로 유명해지는 건 썩 좋은 일이라고 하긴 곤란하다. 나는 사실을 좋아한다. 늘 그랬다. 참인 것들. 2 더하기 2는 4. 양배추 맛은 고린내 나는 양말 맛. 뭐, 두 번째는 의견이라고 쳐도 좋다. 솔직히 고린내 나는 양말을 먹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내 말이 꼭 맞다고 볼 수는 없다. 과학자들에게는 사실이 중요한데, 내 꿈이 바로 과학자다. 나는 자연과 관련된 사실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나 ‘말도 안 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그런 사실들. --- p.14-15
처음 크렌쇼를 만난 건 약 3년 전, 1학년을 마친 직후였다. 초저녁이었고, 우리 가족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주차 중이었다. 나는 휴게소 앞의 풀밭에 누워 하나둘씩 깜빡이며 나타나기 시작하는 별들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언뜻 소리가 들렸는데, 스케이트보도가 자갈길 위를 달리는 소리 같았다. 나는 일어나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 스케이트보도를 타고 주차장을 누비고 있었다. 보자마자 평범한 존재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보도를 타는 주인공은 까맣고 하얀 새끼 고양이였다. 키가 나보다 큰, 커다란 새끼 고양이. 반짝이는 아침 풀밭 같은 푸른 눈을 가진 녀석이었다. 까만색과 주황색이 섞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야구 모자를 쓰고 있었다. (중략) 마침내 내가 말했다. “고양이 이름으로는 ‘크렌쇼’가 좋을 것 같아.” 고양이들은 웃지 않으니까 녀석은 웃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든 눈치였다. 녀석이 말했다. “내 이름은 크렌쇼야.” --- p.28-30
발톱을 빼며 크렌쇼가 말했다. “잘 들어. 너를 도와주기 전에는 못 가. 규칙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야.” “그럼 누가 만드는데?” 크렌쇼가 초록 구슬 같은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앞발을 내 어깨에 올렸다. 녀석의 몸에서 비누 거품과 캣닢과 밤바다 냄새가 났다. “바로 너야, 잭슨.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너라고.” 벌리서 고동 소리가 울렸다. 나는 창턱을 가리켰다. “나는 누구 도움도 필요 없어. 그리고 난 정말이지 상상 친구 따위 필요 없어. 난 더 이상 꼬맹이가 아니야.”
나는 ‘상상 친구’를 믿지 않는다. 나는 사실을 중요시하는 과학자가 꿈이다. 난 무슨 일이든 항상 논리적인 설명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난 한 번도 진짜인 척하는 것들에 푹 빠져 본 적이 없다. 엄마 아빠는 이런 내가 너무 어른스럽다고 걱정한다.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렵다. 엄마 아빠는 둘이 합쳐서 모두 다섯 가지나 되는 ‘시간제 일자리’를 갖고 있지만 우린 늘 배가 고프고 집세를 낼 돈조차 없다. 어쩌면 또다시 우리 가족은 미니밴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때, 상상 친구 크렌쇼가 내 앞에 나타났다! 크렌쇼는 고양이다. 덩치가 크고 거리낌이 없는 상상 속 존재. 크렌쇼는 나를 도와주기 위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고작 상상 친구가 위기에 처한 우리 가족을 구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