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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 그 삶과 음악

멘델스존, 그 삶과 음악

[ CD 2장 포함 ]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0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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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153*220*20mm
ISBN13 9788993818154
ISBN10 8993818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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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닐 웬본 Neil Wenborn
닐 웬본은 캠브리지 대학의 마덜렌 칼리지를 졸업했으며, 옥스퍼드 대학의 보들리안 도서관에서 일했고, 출판계에 들어가 영국의 대표적인 독립 출판사 가운데 하나의 편집장이 되었다. 1989년부터는 프리랜서 작가 겸 출판 컨설턴트로 일해왔으며, 영국과 미국에서 『모차르트 전기』(그가 시리즈 편집자이기도 했던 「Pavilion's Compact Companions series」 가운데 하나), 『하이든 전기』, 『스트라빈스키 전기』 등의 저서가 출판되었다. 그는 높이 존경받는 『History Today Companion to British History』(Collins & Brown), 『A Dictionary of Jewish-Christian Relations』(Cambridge University Press)의 공저자이며, 수상작 시집인 『Firedoors』를 로킹엄 프레스에서 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가운데 『드보르작, 그 삶과 음악』편의 저자이기도 하다.
역자 : 김병화
서울대 고고학과 졸업,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번역ㆍ기획 네트워크 ‘사이에’의 일원으로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 번역서로는 『음악의 첫날밤』, 『베토벤, 그 삶과 음악』, 『베토벤』, 『세기말 비엔나』, 『미술, 세상에 홀리다』, 『공화국의 몰락』,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전사들』 등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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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스존은 수수께끼다. 그의 작품 「헤브리디스 제도」 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이탈리아」 등은 클래식 작품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졌고 사랑받는 곡들이다. 그가 쓴 소품 중에는 너무 자주 듣게 되어 오히려 손해를 보는 곡들도 있다. 가령 피아노곡 「무언가 Lieder ohne Worte」의 봄노래라든가 합창곡 「제 기도를 들으소서」 중의 소프라노 독창 「오, 비둘기 날개에게」 같은 곡들은 워낙 오랫동안 높은 인기를 누리다보니 이제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원래 모습을 되살리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면서도 멘델스존의 영향력은 클래식 음악 애호가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고 있다. 그의 음악은 수백만의 사람들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배경음악으로 쓰인다. 수많은 신부들이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에 맞춰 결혼식장을 걸어나온다. 또 예전부터 「들으라! 전령 천사들이 노래한다Hark! the herald angels sing」는 아이들이나 유년의 향수에 젖은 어른들에게 겨우살이와 썰매 종소리, 무화과 푸딩 같은 이상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일부처럼 되었다. 하지만 그 노래의 작곡자가 멘델스존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노래의 기원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편의 출간 400주년을 축하하여 궁정에서 상연된 연극에 딸린, 그리 유명하지 않은 합창곡과 간주곡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물론 더 적을 것이다. 그가 죽은 지 150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멘델스존의 음악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도 음악사에서 멘델스존의 위치를 확정하기는 쉽지 않다. 멘델스존의 생애는 비극적으로 짧았지만 그가 선택한 예술과 바깥 세계 모두는 격동의 변화가 벌어지던 때였다. 그가 태어났을 무렵, 하이든은 나폴레옹 군대의 위협을 받으며 빈에서 생애의 마지막 몇 달을 보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38년 뒤 멘델스존이 죽은 해에는 바그너가 「로엔그린」을 쓰고 있었고, 그 몇 주 뒤에는 일대 격변인 1848년 3월혁명이 일어나서 진통을 겪으며 현대 유럽이 탄생한다. 하지만 멘델스존 본인은 기묘하게도 자기 시대의 지배적인 추세에서 초연하게 벗어나 있었으며, 어떤 범주에도 속하기를 거부했다. 《신 그로브 작곡가 전기 시리즈New Grove composer series》에서 그는 초기 낭만주의 대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베를리오즈 곁에 실려 있다.

하지만 그는 모차르트와 하이든을 온 마음으로 추모하는 자부심 높은 고전주의자였고, 허세가 있고 무질서하다고 생각한 베를리오즈의 음악에 대해서는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교수법에 뿌리를 둔 엄격한 음악교육을 받은 그는 바흐와 헨델에 대한 19세기의 저명한 해석자였고, 멘델스존의 음악은 그들의 유산을 후세에 전하는 최고의 통로였다. 하지만 또한 그는 후에 ‘프로그램 음악’으로 알려지게 될 음악의 선구적인 주창자이기도 했다. 그의 「헤브리디스」 서곡이 가진 어슴푸레하게 환기시키는 듯한 텍스처texture(작곡이나 오케스트레이션에서 감지되는 음의 상대적 밀도, 표면적인 질감 - 옮긴이)는 그 뒤 수십 년 동안의 낭만주의 음향 회화 시대가 찍혀나올 틀이 된다. 서지학자, 고전주의자, 낭만주의자, 이런 이름표 가운데 어느 것도 그에게 맞지 않지만 그 모두가 그에게 해당된다.

그러므로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에게는 여러 개의 얼굴이 있었다. 그가 쓴 작품 또한 엄청나게 많다. 그의 작품 목록은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편곡하거나 번안한 것, 또는 심심풀이를 겸하여 손대거나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작곡한 수많은 카논을 제외하고도 약 400편에 이른다(그중의 4분의 1은 그가 열여섯 살이 되기 전에 작곡한 것들이다). 이 음악의 보고에는 모든 중요한 클래식 장르가 다 들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작곡하고 싶어했던 장르인 오페라는 아주 어렸을 때의 작품을 제외하면 없다. 하지만 멘델스존은 그와 대등한 반열의 작곡가들 가운데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 많은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원래 작품에서 분리되어 나온 곡 「들으라! 전령 천사들이 노래한다」는 그의 전 작품군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귀에 가장 익은 몇몇 작품들은 지금까지 작곡된 어떤 음악보다도 더 단단하게 우리의 집단 무의식에 뿌리내렸다는 점에서 전체 레퍼토리의 핵심을 이룬다. 하지만 놀랍게 나머지 많은 작품들은 여전히 그리 자주 연주되지 않는다. 그의 작품 포트폴리오에는 교회 합창과 세속 합창 작품, 독창곡, 부분 가곡, 부수 음악, 다양한 조합의 실내악 등 온갖 것들이 들어 있지만,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연주회장이든 녹음 스튜디오에서든 거의 들을 수 없다.

멘델스존이 밟아나간 경력을 보더라도 역시 쉽게 어떤 유형이라고 규정하기가 힘들다. 예전에는 17세에 이미 자신이 이룰 수 있는 최정상 고지에 도달한 작곡가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 고지에서 보자면 그 이후의 나머지 작품들 중에 이따금씩 솟아오른 봉우리가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는 내리막길로 간주되었다. 그를 음악의 오손 웰스 같은 존재, 즉 창작의 삶을 역순으로 산 인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8중주와 그에게는 『시민 케인』 격인 「한여름 밤의 꿈」에서 시작하여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선전용품 같은 「무언가」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연구자들은 그가 음악적 지형을 이보다 훨씬 더 꾸준하게 탐험해나간 사람임을 밝혀냈다. 그는 자신이 작업하던 사회적 맥락의 잠재력과 형식을 끝없이 시험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걸작들이 뿜는 광채는 여전히 눈이 부실 만큼 특출하다. 그것들의 그림자가 워낙 길게 드리워져서 다른 사람이 썼더라면 그 자체로 영원히 잊혀지지 않았을 작품들까지 그늘 속에 갇혀버린다. 설사 그에게 기대되던 전망이 충분히 성취되지 않았다하더라도, 이렇게 된 주된 이유는 그 전망이 전례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은 그 정도로 음악사상 최고의 신동이었지만, 스스로의 조숙함에 갇힌 포로이기도 했다.

멘델스존이 죽은 뒤에 그의 명성이 거쳐 간 경로 또한 이런 통념에 못지않게 변덕스럽다. 삼십 대 중반이 지난 뒤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생존 작곡가로, 당연하게도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상속자라는 치하를 끊임없이 받았다. 그의 오라토리오 「성 파울로Paulus」와 「엘리야Elias」는 창조적 정신의 기념비로 간주되었고, 「무언가」의 악보는 유럽 안팎의 거실 피아노들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명성의 진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에 크게 기여한 것은 1850년에 바그너가 악랄한 의도로 발표한 논문 「음악에서의 유대정신ber das Judentum in der Musik」에서의 이기적인 비난이었다. 그 삼십 년 뒤에는 조지 버나드 쇼라는 독선적인 젊은 음악평론가가 멘델스존의 “양가죽 장갑 같은 부드러움, 관습적인 감수성, 비열한 오라토리오 행상”에 대해 후려갈기면서, 반유대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은 의도에서의 또 다른 공격을 감행했다.

아마도 무엇보다 멘델스존의 명성에게 타격을 가한 것은 연좌제(guilty by association)에 해당하는 문화 현상이었을 것이다. 독일에서 문제된 것은 멘델스존의 사후에야 시를 발표한 데다가 그때든 언제든 애당초 실존인물도 아니던 시인 고틀리엡 비더마이어와의 관련이었다. 풍자적인 성향의 학생 두 명이 만들어낸 허구적 인물인 비더마이어는 그들이 생각하는 독일 중산계급의 속물적 보수주의, 즉 독일 내에서 멘델스존의 음악을 좋아하는 주된 계층의 감수성에 이름을 붙였다. 이와 비슷하게 해외에서도 멘델스존의 명성은 부지불식간에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가치관에 연루되었다. 영국을 “저 올바르고 깐깐한 작은 섬”이라 부른 그는 런던의 연주회 청중들에게 항상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그곳에 체류하는 동안 버킹엄 궁전에 자주 초대되곤 했다. 독일에서 비더마이어가 그의 유산에 대해 보인 태도는 영어권 세계에서 그가 받은 대우에 대해 쇼와 리튼 스트레치가 보인 태도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서 가장 불길한 적수는 20세기에 등장했다. 1933년 히틀러가 권좌에 오르자 유대인 가문의 자손인 멘델스존은 나치의 통치 기간 동안 고국의 문화사에서 삭제되었다.

이 책은 놀라운 한 생애가 지나간 길을 좇는다. 그동안 멘델스존의 우월한 배경 때문에 그저 물질적인 어려움 뿐 아니라 음악의 창조에 필요한 실질적이고 감정적인 투쟁까지도 면제 받았다고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평론가 에밀 뷔에모즈는 “만족한 국가와 만족한 인간에게는 역사가 없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우리는 멘델스존의 생애에 대해 쓰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조에 따르자면 멘델스존은 의미 있는 사건이 없었던 삶을 산 것이 된다. 모든 것은 그에게 쉽게 주어졌고,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유명한 철학자 모세 멘델스존의 손자이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한 인맥을 지닌 부유한 은행가 아브라함 멘델스존의 아들로 태어난 펠릭스는 명성과 안정감을 타고났다. 하지만 그처럼 한가롭지 못하게 살았던 사람도 드물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하루하루의 일분일초를 유익한 지적활동으로 채우도록 길러진 그는, 성인이 되고나서도 한가하게 지내는 재주는 거의 병적이라 할 만큼 없었다. 작곡만이 직업 생활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휘자, 행정가, 교사, 편집자 등 그가 맡았던 수많은 다른 임무에 치여 창작은 점점 가장자리로 밀려나는 실정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업적으로 활동했던 모든 분야에서 음악에 실질적이고 영원히 남을 공헌을 했다. 바흐와 헨델의 작품 편집자로서 그는 작곡자가 쓴 원고에 대한 엄격한 충실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런 태도가 일반화되기까지는 앞으로 여러 세대가 더 지나야 했다. 비범한 추진력과 비전을 지닌 행정가로서 그는 휘하 연주자들의 사회 복지에도 관심을 쏟았으며, 더 나은 작업 여건과 연금 수혜권을 보장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지휘자 멘델스존은 오케스트라 지휘를 ‘박자만 저어주던 기술’에서 ‘해석’의 영역으로 가져갔으며, 프로그램 편성을 통해 유럽 음악의 정전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실력자가 되었다. 게다가 그는 습관처럼 산책하고 등산하고 수영했으며, 다작이면서도 하나같이 수준 높은 작품을 쓰는 예술가였다. 그가 쓴 수천 통의 편지 가운데 많은 수는 그대로 다시 묶어 여행기로 출간해도 될 정도다. 이런 일을 하고도 힘이 남았는지, 그는 다섯 자녀를 둔 가정의 아버지 역할에 충실했으며 공적인 사교 생활에서도 뛰어난 활동을 보였다.

또 일부 비판자들 생각처럼 음악 자체가 그에게 쉽게 다가온 것도 아니었다. 이미 스스로 털어놓은 바 있는 것처럼, 인쇄물을 끔찍할 정도로 존중하다보니 강박적으로 작품을 개정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 한 작품을 여러 해에 걸쳐 개작하는 경우가 많아 출간된 작품의 작품 번호를 결정하거나 작곡 연도를 확정하기가 무척 어렵게 됐다(작품번호 72번까지는 모두 그의 생애 동안 출판되었다. 73번 이후에는 「이탈리아」와 「종교개혁」 교향곡 같은 주요 작품들까지도 모두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 말년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작곡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여건 때문에 그는 점점 더 괴로워했다. 멘델스존이 짧은 생애 동안 해낸 그 많은 일을 생각한다면, 그 와중에 음악 한 곡이라도 더 작곡할 시간과 에너지를 찾아낸 것이 놀라울 정도다. 그의 생애는 안락과 손쉬움이 넘치는 오아시스이기는 커녕 그가 가진 엄청난 힘의 한계에 도달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넘어서는 활동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데스마스크로 남아있는 멘델스존의 얼굴은 서른여덟이라는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 보여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마지막은 기묘한 종결부로 마무리지어진다. 1936년 11월, 독일 연주 여행길에 오른 토마스 비첨 경은 멘델스존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관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정면에 사십 년이 넘도록 서 있었던 멘델스존 기념비를 찾아갔다. 다음날 비첨은 위인에게 화환을 바치기 위해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다시 그곳에 갔다. 하지만 그의 조각상은 그 지역 나치당원이 내린 지시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끌어내려지고 없었다. 이것은 20세기 문화정치의 끔찍한 변덕스러움과 세상의 평판이라는 것의 덧없음을 잘 보여주는 언짢은 사건이지만, 포착하기 힘든 작곡가 멘델스존의 모습도 그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속편이 있다. 1993년 3월 10일에 라이프치히 당국이 이번에는 신 게반트하우스 바깥에 멘델스존의 새 조각상을 제막했다.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는 멘델스존이 있어야 할 곳이 빈자리로 남아 있다. 하지만 결국 그의 수수께끼는 모든 위대한 예술의 수수께끼다. 즉 새로운 얼굴, 상이한 시각을 새로운 세대의 열성적인 추종자들에게 보여주는 능력 말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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