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10월 25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336g | 133*203*20mm |
ISBN13 | 9788901114392 |
ISBN10 | 8901114399 |
발행일 | 2010년 10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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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336g | 133*203*20mm |
ISBN13 | 9788901114392 |
ISBN10 | 8901114399 |
말테의 수기 작품해설 / 『말테의 수기』를 읽는 법 작가 연보 옮긴이 주 |
[말테의 수기] 中에서..
요즘은 거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간혹, 아주 가끔 선생님이나, 여자아이같은 주변의 인물이 아니라 책을 쓴 작가들의 머리속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어떻게 그렇게 긴 글을 일목요연하고 흥미롭게 쓸 수 있었는지, 도대체 어떤 생각들을 품고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기에 그런 기발한 생각과 놀라운 사건, 개성있는 인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같은 세상에서 한 공기를 마시고, 비슷한 사물을 보며 살면서도 무엇인가 크게 다르다는 건, 그 사람들의 외부 문제가 아니라 안, 바로 머리속의 문제임에 틀림이 없으니까.
그런데 사실 머리속을 들여다본들 무언가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가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에게 재귀시켜 하고 있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지진때문에 모두 바닥에 쏟아져 뒤죽박죽 엉켜버린 도서관의 책들 마냥이나 종잡을수도, 일관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다가도 돌연 길거리에서 마주친 눈에 확 뜨이는 여성에게 눈길을 주고, 일이나 공부에 집중하다가도 어제 본 영화나 술자리에서 누군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조각난 내 사고의 편린들을 누군가 들여다볼 수 있다 한들, 나라는 사람의 남다른 능력이나 삶의 이력, 예민한 감수성 등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게 조각나고 모순된 기억의 조각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봤자, 그저 실망하고 그 사람의 본질과는 사뭇 다른 선입견만 생겨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말테의 수기] 中에서..
「사실 사람들은 자기가 변하는 모습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런 변화의 증거들을 보이는 대로 마치 낯설기 짝이 없는 것을 손에서 털어내듯 계속해서 털어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글의 머리에 꺼낸 이유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체코의 시인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어나가고 있노라면 누군가의 복잡한 머리속을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이 세상에 대한 피드백과 감정을 품고 사는 천재의 머리속 말이다. 이 작품은 예사의 다른 작품들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훨씬 더 많이 아름답게 압축된 문장을 품고 있어, 시인으로서 릴케의 진면목이 잘 드러나기는 한다. 그러나, 소재로 사용되는 에피소드들은 지나치게 평이하며 또 단절적이다. 제목에 노골적으로 수기(手記)라 명한 것처럼, 말테라는 덴마크 시골출신의 한 청년이 대도시 파리에 와서 때로는 보고겪은 것을, 때로는 몰락해가는 과거 귀족가문의 자제로 살았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말테의 수기] 中 '메모'일부 발췌이 작품에서 말테가 써 나간 에피소드 중 많은 부분은 실제로 릴케의 경험이다. 입신양명을 꿈꾸던 아버지의 몰락과 허영심 많은 어머니의 묘사, 그리고 일찌기 세상을 떠난 릴케의 손위 누이에 대한 어머니의 각별한 애정 때문에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자랐던 어린 시절.. 등의 사연은 릴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작품 속 단절적으로 등장하는 여인 아벨로네 역시 릴케의 청년시절에 인연을 맺어 그의 삶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준 루 살로메(Lou Andreas-Salome)에 대한 릴케의 연정이 형상화된 인물로 보인다. 어머니의 지인으로 등장해 말테보다 훨씬 연상인 것으로 설정된 그 여인에게 말테는 어머니로부터 온전한 상태로 받지 못한 모성과, 여느 여성에게선 쉽게 느끼지 못했던 관능적 매혹을 동시에 느낀다. 이는 릴케가 실제 열 네살이나 연상이었던 루 살로메를 통해 느낀 감정과 닿아있다. 루 살로메는 당시 갓 어른이 되었던 순수한 청년 릴케를 한 단계 높은 성장으로 이끈 보호자이자, 기쁨과 질투, 아픔과 고독이라는 사랑 속 다양한 감정을 깨닫게 해준 연인이었다.
이 작품에는 간혹 말테가 작품 중에서 쓴 것인지, 릴케가 작품을 써가며 추가적으로 든 생각을 직접 써 넣은 것인지 모르겠는 메모가 몇 군데 삽입되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글들이다.
「솔직하게 말해 보자. 우리에게 신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장 또한 없다. 이런 것들을 위한 합당한 공동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나름의 생각과 걱정거리가 있지만 자신에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때나 남에게 보여 준다. 우리는 자꾸만 우리의 이해력에다 물을 탄다. 혹시라도 고갈될까봐 그러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차라지 우리 고뇌의 벽에 대해 울부짖느게 낫지 않을까. 그 벽 뒤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이 여유있게 자기의 힘을 모으고 있거늘」
「사랑받는다는 것은 불타서 사라지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 기름으로 밝게 빛나는 것이다. 사랑받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지속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읽어가다보면. 신(神)에 대한 이야기나, 이전 문학에 대한 언급, 세계관이나 인생관 등에 대한 릴케 자신의 독특하지만 낯익은 철학적 견해가 종종 드러나는데, 이는 당시 루 살로메의 또 다른 연인이었던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의 영향을 받아서인것 같다. 릴케는 루 살로메로부터 전해들은 니체의 그 놀라운 해석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직관적으로 해석하였고, 그렇게 전체적으로 연결되어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생각의 조각들을 비교적 잘게 부수어 작품 곳곳에 흐트러놓은 듯하다. 그건 아마 릴케의 연적이며, 루 살로메가 열광해 마지 않았던 니체의 사상에 대해 릴케가 보일 수 있는 입장에서의 최선의 표출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비유는 말테(결국 말테의 모습을 빌린 릴케가)가 맨 마지막에서 이상형으로 언급하는 '돌아온 탕아(蕩兒)'의 이야기다. 성서 속 '돌아온 탕자(蕩子)의 비유'를 빗댄 이 이야기에는 하느님과, 고통 그리고 사랑이라는 삶의 대부분을 아우르는 핵심적 이슈들에 대한 릴케의 생각이 잘 묻어나 있다. 집안의 지나친 기만적 사랑에 지쳐 집을 뛰쳐나간 그는 극단적 고독을 추구하고, 그 결과 외부의 모든 위협과 유혹으로부터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진 그의 모습은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Übermensch)을 떠올리게 한다.
이 밖에도, 이 작품에서 소재로 사용된 다양한 에피소드들 역시 당시 릴케의 머릿속을 지배하던 다양한 생각들과 관심거리의 그대로이거나, 또는 파생, 변질된 것들로 보인다. 자신의 경험을 담보로 하지 않고는 순수한 창작에 의해 어떤 상황을 상정하고 그 상황 안에 놓인 누군가의 내면을 그토록 주관적이며, 감정적이고 치열하게 묘사하기는 어려웠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의 세계를 깨닫는 만큼 나는 어린 시절의 광대무변함에도 눈을 떴다. 어린 시절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임과 이제 막 어른의 세계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았다. 시대를 구분하는 거야 각자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꾸며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이가 더 들면서 자주 느끼곤 한 것을 나는 그때 이미 어렴풋하나마 예감했다. 즉, 모든 책을 다 읽지 않으려면 한 권의 책도 펼치지 마라. 한 줄 한 줄 읽어가는 순간 세계는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책들을 읽기 전, 세계는 온전하게 보였다. 이제 그 세계는 나중에 가서나 다시 온전한 모습을 찾을 것 같았다」
[말테의 수기] 中에서..
「말테의 수기」 는 이야기, 즉 줄거리를 읽어나가는 작품이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함축적 의미와 그 의미의 배경을 이루는 감정을 읽어나가야 하는 작품이다. 따라서 고전이든 현대문학이든 소설에 익숙한 이에게는, 산만하고 어수선하며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느낌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난 이 작품을 읽으며 시인 기형도의 단편소설들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수 놓여있음에도 전체적으로 순하게 다가오고 조화롭다는 느낌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격하게 억눌린 무언가가 느껴져 답답하고 불편했던 그 역설의 문장들.. 이 작품 역시 비슷하다. 장편 치고는 그리 두껍지 않은 작품임에도 더 오랜 시간을 빼앗고. 더 많은 생각으로 읽어야 하는 작품, 그리고 그 험난한 여정을 무사히 끝마쳤을 땐, 수 권의 고전을 한꺼번에 읽은 것 만큼이나 깊고 다양한 심상을 가슴 속에 아로새길 수 있는 작품.. 그것이 바로 이 「말테의 수기」 다.
이제껏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사랑을 갈구해왔다. 부모님의 사랑, 친구들의 사랑, 나를 모르는 사람의 사랑 같이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랑부터 애완동물이나 물건의 사랑까지 가리지 않고 사랑을 갈구해왔다. 그 사랑은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나 연인의 애정 어린 사랑에서 부터 능력에 대한 인정, 딱히 이유 없는 호감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것은 영원하지 않았고 또 일정하지도 않았다. 마치 심장박동을 나타내는 곡선들처럼 끊임없이 위아래로 요동쳤으며 흥분하면 심장이 빨라지고 폭도 커지는 것처럼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고 기대한 것과는 다르게 돌아왔다.
사랑이란 끊임없이 생각하는 주제이지만 누구도 명쾌하게 답을 내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이것도 답이고 저것도 답이다. 그리고 이것도 오답이고 저것도 오답이다. 실체에서 한 발자국 떨어질수록 답은 없다. 오답도 없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 또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다. 결국 원점이고 나는 내가 보이는 것을 믿고 다른 사람도 그러하리라 생각되는 것들만 이야기 한다.
완전한 사랑이란 있는 것인가? 논문이나 학술적인 저서를 보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용어의 정의이다. 사전에서 끌어오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의 다른 저술을 인용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진리인가? 정확한 것인가? 조금씩 길을 따라 올려다 보다보면 아무것도 없는 하늘처럼 혹은 파란 것이 있는 하늘처럼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 못하는 것을 만나게 마련이다. 나는 어떠한 것을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을 증오한다. 입으로는 웃고 즐길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증오한다.
말은 생각을 지배하고 글은 말과 생각 두 가지 모두를 지배한다. 한 문장으로 줄여서 말하고 그 한 문장으로 인해 줄어든 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또 그 시각으로 바라본 것을 글로 쓴다. 사람의 말로 증명돼서는 안 되는 것들까지도 몇 마디 말로 시각을 국한해 버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평범한 사람 속에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써 지혜의 확장에 대한 제한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모자람을 깨달게 될 뿐이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 속에서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믿고 서로 동의해가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완전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진 않고 혹여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나의 도플갱어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싫어져서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언제나 완전하다. 사람들이 있음으로써 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보다 완전한 것은 없다.
이 책은 굉장히 오랜 기간 읽었다. 꾸준히 자주 읽은 것이 아니라 몇 단락을 읽고 그 뼈대만 어스푸레 남아 있을 무렵 다음 내용을 읽었다. 말테의 수기는 71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들 사이에는 딱히 별 관련이 없다. 이것을 다 읽고 이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를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 이 책은 릴케가 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써놓은 책이다. 말테라는 소설 속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릴케는 위대한 시인이다. 깊고 깊은 누구보다도 깊은 곳의 자신을 꺼내놓았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고독했다. 완전한 사랑을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자신의 깊은 곳에서 찾아낼 수밖에 없다는 막연한 깨달음만 얻게 된다.
나는 릴케를 모른다. 사랑도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혹여 안다고 이야기 한다면 나는 깨달았다고 이야기하는 사기꾼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일 것이다. 나는 읽을수록 모르겠다. 글을 쓸수록 모르겠다. 읽을수록 채워지는 것을 느끼고 채울수록 비워지는 것을 느낀다. 어느 순간 내가 내 모든 것을 버리는 순간 이 세상을 정말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게 또 모두가 알게…….릴케의 묘비 문처럼…….
천재와 미친 사람의 공통점은 무질서속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