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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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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빛

: 나만의 서점

[ EPUB ]
앤 스콧 저 / 강경이 | 알마 | 2013년 12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2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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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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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12월 20일
이용안내 ?
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7.06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8만자, 약 2.2만 단어, A4 약 51쪽?
ISBN13 979115992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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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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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앤 스콧Anne Scott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으며 BBC 스코틀랜드의 방송인이었다. 1990년대에는〈스코츠맨The Scotsman〉과〈헤럴드The Herald〉에 비정기적으로 글을 썼다. 에든버러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에든버러에서 결혼했다. 그녀의 아들인 마이크 스콧은 영국에서 잘 알려진 작사가 겸 작곡자이자 음악가다.
앤 스콧이 아홉 살 때 서점직원이 그녀의 책에 빨간 줄 달린 책갈피를 꽂아주었고 그때부터 책과 서점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그녀는 일 때문에 미국의 앤아버와 캔자스, 뉴욕, 아일랜드의 더블린과 골웨이로 출장을 다니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아일랜드와 미국문학을 더 깊이 있게 읽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와 미국에는 작가가 너무나 많고, 세상에는 서점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그녀는 책과 서점을 찾아다니는 탐험가가 되었다. 그녀는 현재 스코틀랜드 서부에 살며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역자 : 강경이
제주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했다. 현재 펍헙번역그룹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데카르트의 사라진 유골] [이기적 삶의 권유] [커리의 지구사] [직업의 광채] [어린이 문학의 역사] 들이 있다.
아트디렉터 : 안지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북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인문·사회·예술 분야 책을 디자인했다. 디자인·출판·뉴미디어·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각이미지 생산자로서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도쿄에서 열린 ‘서-축전: 건축 같은 책, 책 같은 건축’, ‘상하이 국제 북디자인전’ 등 다수의 기획전과 ‘동아시아 책의 교류 심포지움’, ‘중국 북디자인전 포럼’ 등 포럼에 참여했으며, 2013년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시사저널] 선정 ‘올해의 북디자인’, ‘한국백상출판문화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선정 ‘디자인이 좋은 책’ 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는 《기억의 반대편 세계에서-워바타》 《스티커프로젝트》 《세계인권선언》 《금지된 숲》 들이 있다.
앤 스콧Anne Scott은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으며 BBC 스코틀랜드의 방송인이었다. 1990년대에는〈스코츠맨The Scotsman〉과〈헤럴드The Herald〉에 비정기적으로 글을 썼다. 에든버러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고 에든버러에서 결혼했다. 그녀의 아들인 마이크 스콧은 영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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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 어느 토요일에 오빠와 함께 동네를 걸을 때였다. 혼스식료품 가게 밖에 버려진 빈 오렌지 상자가 눈에 띄었다. 가운데에 널찍한 버팀대가 있고, 위에는 오렌지가 화사하게 그려진 얇은 미색 나무로 된 상자였다.
“오빠!” 내가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책장!”
“가보자,” 오빠가 말했다. “혹시 주실지 몰라.”
오빠가 가게에 들어가 물어봤고, 우리는 그 상자를 얻었다. 그날 저녁 나는 몇 권 되지 않는 내 책을 상자에 넣었다. 학교 성경책과 빨간색 사전, 《회색 부엉이》《로빈슨 크루소》그리고 내 교지들을 낮은 선반에 눕혀서 꽂았다.
그래서 내 첫 책들에서는 늘 오렌지 향이 났다. --- p.9

1 바람 실은 돛 컴펜디엄서점
컴펜디엄서점의 지적 수준은 대단했다. 직원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가였다. 궁금한 작가에 대해 물어보면 거의 짧은 세미나 수준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손님들에게 필요한 책이나 시리즈도 기꺼이 찾아주었다. 컴펜디엄을 이룬 자본과 태도, 이상은 1967년에 라운드하우스에서 열린 ‘해방의 변증법 학회The Dialectics of Liberation Conference’에서 시작되고 구체화되었다. 컴펜디엄의 책들은 결코 주류사회의 전통이나 기대, 순응주의에 갇혀 있지 않았다. --- p.16

내가 프랭크 오하라의 시집을 이것저것 사 모으고 그의 예술비평과 전기에 눈을 뜰 무렵인 2001년에 컴펜디엄서점은 문을 닫았다. 그리고 1년 후 마이크 하트는 세상을 떠났다. 캠든 하이 스트리트의 오래된 작은 가게들도 사라졌다. 과일가게, 철물점, 빵집, 생선가게. 창문에 정답게 붙은 상호를 이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내게 남아 있는 컴펜디엄서점의 자취는 그곳에서 구입한 책만이 아니다. 컴펜디엄이라는 장소와 그곳의 사람들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책을 읽는 사람이 나와는 또다른 세상을 거닐고 있는, 이 서점이라는 곳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공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거리에서 보면 컴펜디엄서점의 유리문은 늘 열려 있었고, 넓은 유리창 너머로 진열된 책들이 보였다. 그 거리는 얼마나 분주했던가. 고르지 않은 길 위에서 짐을 싣는 사람, 옮기는 사람, 차에 타는 사람, 출발하는 사람. 분주한 거리를 건너 서점 안에 들어서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준비된 지성, 새로운 발견이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p.18∼19

2 3년의 빛 체프먼 앤드 밀러
1505년 앤드로 밀러(안드레아스 밀라르 스코투스)는 문법책과 미사전서 해설서의 제작을 주문하면서 인쇄공들에게 숙련된 기술과 성실성, 두 가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루앙의 인쇄소에 제작과 교정을 맡겼는데 프랑스 인쇄공들에게 자기만큼 정확하고 솜씨 있게, 헌신적으로 책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그에게는 명성이 전부였다. 그는 고객과 서적 수집가들에게 자신이 루앙에 가서 없을 적에는 아내가 주문을 받아서 그가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겠다는 보증을 했다. 그는 책의 완전무결함을 보장하는 약속이자 인장으로 방앗간 주인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이미지를 사용했다.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도 아마 그를 존경했을 것이다. --- p.25

혼자 책을 읽는 즐거움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필사본은 들고 다니기 조심스러웠지만 제본된 책은 안전했다. 이제 스코틀랜드의 시는 사람들의 정신에도, 테이블에도 안전하게 배달되었다. 책을 인쇄하는 일은 필사본을 만드는 일보다 시간과 노력이 덜 들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인쇄한 책은 프랑스 수입도서보다 저렴했다. 작은 개인 서가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서적상이 늘어났다. --- p.27∼28

제임스 4세의 출판업자들은 예견했지만 제임스 4세는 미처 내다보지 못한 점이 있다. 바로 스코틀랜드 왕실 출판사의 첫 출판물인 시집이 신앙서적보다 더 위대한 업적으로 남았다는 점이다. 체프먼앤드밀러출판사의 첫 출판물들인 시집을 통해 윌리엄 던바와 로버트 헨리슨의 이름이 유럽 도처의 서적상들에게 알려졌고, 그들의 문학이 르네상스문학의 주류에 합세했다. --- p.29∼30

3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초판을 팔다 패럿서점
1576년 이래 패럿서점의 입주자는 네 번 바뀌었지만, 1608년부터 패럿은 애스플리와 한 길을 걸었다. 애스플리에게는 패럿서점이 자신의 삶이었다. 그의 판매대와 탁자, 진열대에서 유례없이 새로운 책들이 르네상스시대로 런던으로 시간 속으로 등장했다. --- p.37

셰익스피어도 애스플리가 파는 책을 샀을지 모른다. 셰익스피어는 패럿서점에 들른 적이 있었을까? 혹시 패럿서점에서 당시 히트작이던 윌리엄 스트레이치William Strachey의《난파 경험담The True Repertory of The Wreck》을 비롯해 버뮤다제도에서의 놀라운 모험 이야기를 사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1610년에《템페스트The Tempest》를 구상한 게 아닐까? 셰익스피어는 세인트 폴스 처치야드의 서점들에서 많은 책을 구입했을 것이다. 자신의 연극을 잘못 받아쓴 4절판을 사지는 않았을 테지만 《우울론On Melancholy》도 사 보았을 것이고, 1603년에 존 플로리오John Florio가 번역한 사랑과 우정에 대한 미셸 드 몽테뉴의 수필도 구입해서 읽었을 것이다. --- p.38∼39

4 상념 옛 출판사 터의 서점
계단 한 칸 위에 낮은 문이 달린, 수도사의 거처 같은 건물이었다. 오래된 석벽 깊숙이 작은 유리창이 나 있고 석벽에는 흰 페인트가 두텁게 칠해져 있었다. 페인트 대신 석회도료만 칠한다면, 떠돌이 일꾼들이 수확기에 머물렀다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일 것 같았다. 유리창을 통과한 햇살이 아름다운 짙은 색 책표지와 덮인 책, 황동제품, 십자가, 촛대, 개점시간을 알리는 접이식 간판에 내려앉았다. 어둑한 날이면 서점 안에 램프가 켜져 서점 앞 순례길을 밝혀주었다. --- p.49

자리를 지키고 앉은 서점직원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말을 하더라도 작게 웅얼거렸다. 당연한 일이다. 이오나출판사가 사라지고, 섬세하게 제본된 책들이 나무 책장에 말없이 꽂힌 이곳에서 소리를 낼 게 대체 뭐가 있을까? 그러나 서점 밖에는 거친 자연이 있다. 마을을 지나 낮은 곳으로 흐르는 투명하고 거친 물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서점 안에는 시간, 시간, 또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 엽서를 쓰고 있다. 시간이 흘렀지만 글의 형태도 내용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 서점에는 내가 찾는 책이 없을 때도 종종 있지만, 책이 아닌 무언가가 나를 이곳으로 끌어당긴다. 건물에 깃든 출판사의 기억 때문은 아니다. 이 작은 거처에 머물렀던 사람들, 그리고 지친 손으로 신비스러운 켈트의 문양을 채색했던 사람들이 이 공간에 남긴 것이 무엇이든, 그것 때문에 나는 이곳으로 거듭 돌아온다. --- p.53∼54

5 리틀 기딩 리키스서점
눈부신 빛이 널찍한 서점 곳곳을 공평하게 밝힌다. 이 서점에 처음 들어선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한 가지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바로 강가의 이 건물이 예전에 세인트 메리 게일어 교회St Mary’s Gaelic Church였다는 것이다. 게일어와 게일어를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음악처럼 울려 퍼졌던 교회와 서점, 이보다 더 어울리는 한 쌍이 있을까? 게다가 존 녹스John Knox(16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옮긴이)의 수수한 개혁교회에는 다른 느낌의 언어도 울려 퍼졌다. 바로 설교다. 깊은 고민 끝에 구두법이 정확하고 긴 문장들로 빚어낸, 여러 제목의 설교야말로 개혁교회의 토대였다. 이보다 더 책이 모이기에 좋은 장소가 있을까? --- p.59

나는 문득 교회와 책의 관계를 생각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 이후에 모든 학교와 교구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종교적 생각을 가르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신나는 목적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에게 독서를 가르치는 것, 독서로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1600년에 런던의 교회와 새로 지은 글로브극장Globe playhouse(1599년 런던에 세워진 극장으로 셰익스피어 극을 상연해 유명해짐-옮긴이)에서는 강렬한 리듬과 사람을 빨아들이는 목소리, 매혹적인 사상이 울려 퍼졌다. 이곳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노래하고 글을 읽었다. --- p.60

무엇보다《리틀 기딩》은 ‘우이게uige’다. 우이게는 시란 소중한 원석임을 뜻하는 고대 게일어다. 시란 반짝이게 다듬고 부활시켜야 할, 저 깊은 곳에서 빛을 발하는 원석이다. 엘리엇은 치유를 약속하며 시를 끝맺었다.

“우리의 모든 탐색의 끝은
우리가 시작했던 곳에 도달하는 것
그리고 그곳을 처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p.64

6 건널목 윌리엄템플턴스서점
그해 어느 무렵, 길 건너 글래스고 베널의 아마 공장에서 일하는 로버트 번스Robert Burns(스코틀랜드의 시인으로 젊은 시절에 아마를 가공하는 공장에서 일했다-옮긴이)가 하이 스트리트를 건너와서는, 책장에 놓인 책을 좀 봐도 되냐고 물었다. 윌리엄 템플턴은 서점 문 앞에 선 이 노동자를 보고 무어라 생각했을까? 서적 밀수 전과범이자 어바인의 평의원인 템플턴과 공장에서 어렵사리 한 시간 짬을 내어 새로운 지성을 찾아 서점 문을 들어선 노동자 번스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번스는 템플턴에게 산문을 좀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시라면 종교시 외에는 포기했노라고, 하지만 민요나 노래는 언제든 좋다고 덧붙였다.
… 번스가 템플턴스서점을 찾았던 그 몇 주 동안에 템플턴은 구석에 모아두었던〈루디먼스 위클리Ruddiman’s Weekly〉를 번스에게 보여주었던 모양이다. 번스는 그곳에서 8년 전에 세상을 떠난 로버트 퍼거슨Robert Fergusson의 시를 처음으로 발견했고, 그날 이후 번스의 삶은 달라졌다. --- p.71∼72

1782년 번스를 만났을 때 템플턴은 지역의 학교에 색다른 책을 공급하는, 장기적이고 전례 없는 사업을 막 시작한 참이었다. 템플턴과 그의 서점은 아이들에게 창작문학을 소개하는 새로운 사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당시 어바인의 교사인 벤저민 몰의 놀라운 혜안에 따르면, 아이들은 단지 읽는 법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읽는 법을 배워야 했다. 몰은 책은 곧 교본이라는 해묵은 생각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문학이 삶의 무한한 자산임을 알렸다. 책은 더이상 도덕이나 사회의 관습적 잣대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독자가 새로운 자아를 찾는 장이 되어야 했다. --- p.73∼74

7 불 켜진 무대 스미스서점
《보물섬》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이 나보다 먼저 이곳에 왔다. 1856년에 다섯 살 꼬마 스티븐슨이 안티구아 스트리트 1번지의 층계 세 계단을 처음으로 올라와 용감하게 서점에 들어섰다. 스티븐슨은 스코틀랜드 꼬마의 억양으로 그림들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서점직원이 대답했다. “진열창에 있습니다, 손님.” 단검과 권총으로 무장한, 상상의 산물인 그것들은 서점 진열창에도, 스티븐슨의 꿈속에도 있었다. --- p.81

스켈트극장과 더불어 스티븐슨의 세상은 정적인 세상에서 그가 ‘트란스폰투스Transpontus’라 이름 붙인 세상으로 변화했다. 그는 트란스폰투스가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 그를 이해할 독자들을 위해 이심전심의 미소를 선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와 또다른 나, 나와 망명지를 배회하는 나, 나와 이해할 수 없는 나 사이의 다리에는 그러한 변모의 순간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부두 근처의 거무스름한 작은 석조건물에 자리 잡은 서점 진열창의 불 켜진 무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 p.85∼86

8 정류장 아톨브라우즈서점
아톨 브라우즈는 유일하게 액자 속 사진으로 떠오르는 서점이다. 이 서점을 생각할 때면 북에서 다가가는 장면을 떠올려보려고 애쓰지만 언제나 남에서 보는 풍경, 곧 언덕과 길, 나무와 어우러진 조용한 서점을 떠올리게 되곤 한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실 아톨브라우즈서점은 활기 넘치는 장소에 있다. 서점 뒤로는 에든버러에서 인버네스까지 가는 급행열차가 “블∼레∼어 아톨!”이라는 짐꾼의 외침소리와 함께 멈춰 선다. 서점이 자리 잡은 석조 건물은 전생에 도로변 주유소였다. 그러니까 수십 년간 온갖 탈것들이 덜컹거리며 들어와서, 멈춰 섰다가 다시 출발했던 곳, 지나가다 잠시 들르는 사람들로 북적대던 곳이었다. 1988년 이곳에 서점이 생기면서 조용한 곳이 되었다. --- p.91

서점주인은 처음에 책을 어떻게 모았는지 기록해두었다. 동네 목사님 한 분이 펭귄 책을 여러 박스 들고 왔고, 동네 사람 하나가 훌륭한 스코틀랜드 책들을 들고 왔다. 경매에서 낚시 관련 책들을 얻어 왔고, 재고를 처분하는 어느 서적상에게 많은 책을 구입했다. 거기다 도서관에 소장되었던 책들도 많이 구해왔다. 서점직원들은 동네의 특성을 연구했다. 가을과 봄 사이에 조용한 이 동네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책은 바느질 책, 철도 여행 책, 여름 낚시, 요리, 소설 그리고 인기 있는 초록색 펭귄 탐정소설이었다. --- p.92

2006년 3월 30일 목요일, 마지막으로 그 서점을 찾았을 때 나는 1947년판 《풀잎》의 1961년 에브리맨 재판본을 3파운드에 살 수 있었다. 청록색 천으로 표지를 두른 판본이었다. 서점주인은 책의 “노출된 가장자리가 살짝 갈색으로 변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의 표현이 서점 근처의 숲과도 근사하게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아톨브라우즈서점은 20년이나 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나는 그 서점을 떠올릴 때면 이상하게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에 그려진 아름다운 덧없음이 떠오르곤 한다. 마치 하룻밤 사이에, 한낮 사이에, 하루아침에 서점이 사라져버리기나 한 듯 말이다. 어쩌면 아톨브라우즈서점은 너무 여렸는지 모른다. --- p.95

9 매주 토요일 그레일서점
어셈블리 룸 근처 26번지의 그레일서점을 발견했던 1970년대 초반에 나는 삶을 이해할 관점에 목말라 있었다. 그레일서점에 대한 소문을 어디에서 어떻게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입구에 바싹 붙은, 난간 달린 층계 다섯 계단을 올라가면 문이 나왔다. 이상적인 비율의 18세기풍 문으로, 나무와 유리로 만든 작은 채광창 하나가 달려 있었다. 서점은 은신처처럼 아늑했다.
그레일서점을 거듭 찾아갔던 이유는 처음 찾은 날 느꼈던 그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 p.103

에든버러의 그레일서점은 세계문학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었다. 내가 13세기 아프가니스탄 시인 루미Rumi의 시를 처음 읽은 것도, 마틴 루서 킹의 연설을 처음 접한 곳도 그곳이었다. 그레일서점에서 나는 대학 시절 좋아했던 크리스토퍼 프라이Christopher Fry의 희곡에 다시 끌리기 시작했고, 서점에서 일하던 미국인 자원봉사자를 만난 뒤부터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와 에밀리 디킨슨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게 그레일서점은 에든버러의 중심에 자리한 그 존재감으로 여전히 기억된다. 서점 2층은 모임을 위해 개방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예술가들은 전시회를, 음악가들은 연주회를, 시인들은 시 낭송회를 열었다. 희곡 낭송회가 열리기도 했다. --- p.105

결국 그레일서점은 1977년 문을 닫고 말았다. 조지 스트리트의 임대료 상승이 주원인이었다. 나는 성배를 찾으러 그곳에 가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레일서점은 내게 책 이상의 것을 선사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나 혼자서, 또는 아들과 함께 그레일서점에 있을 때면 그곳의 밝은 음악(대개는 비발디였다)과 대화, 그림, 책 읽기에 좋은 포근하고 조용한 공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서 나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나의 고질적인 죄책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p.106

10 허드슨 스트리트의 빛깔 북스오브원더
북스오브원더는 살아가다가 어떤 질문에 봉착했을 때 찾아가면 좋을 서점이다. 무엇이 현실이지? 혹은 이제 어디로 가야하지? 이런 질문. 나 역시이두가지질문을품었었다. 그때야말로 무지개 너머 그곳으로, 거울 속으로 여행해야 할 순간이 아닐까? 책 선반에는 각기 다른 문화와 시대를 살았던 작가들이 고민과 삶을 통해 제시한 해답이 가득했다. 그들은 상상을 통해 마음과 영혼의 장소를 탐색했다. --- p.112

‘해답이 있다면,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거야.’
이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아무 감흥 없이 책을 덮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꿈을 드러내는 책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펼친 독자라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어진다. 가야 할 장소를 찾고,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이야기에 경이로워한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면 무척 먼 곳까지 와버린 자신을 발견하며 사람들은 묻는다.
‘이게 어디에서 시작되었지?’ --- p.115

11 그게 사라졌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터얼서점
1층 벽에는 반짝이는 어두운 색 나무 책장이 있었고, 가운데에는 작은 탁자가, 뒤에는 계산대가 있었다. 어디선가 햇살이 스며들어와 두꺼운 난간이 달린 땅딸막한 층계에 내려앉았다. 오른으로 돌아가는 그 층계를 따라 올라가면 위층이 나왔다. 빛은 그곳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위층의 넓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지도와 큰 흰색 해도에, 하늘색 바다와 모래 깔린 여울에 반사되었다. 창밖의 하늘과 해도 사이를 오가는 빛의 향연 속에서 영국의 모험가인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Thomas Edward Lawrence와 로버트 스코트 Robert Scott 선장, 어니스트 셰클턴Ernest Shackleton이 환하게 빛났고 천체도의 푸른 별은 더더욱 짙고 푸르러 보였다. --- p.123

결말에 이르면 우리는 이 모든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의문에 빠질 수 있기를, 기적을 믿을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옥스퍼드의 어느 건물 안에서 이 책을 읽던 사람이라면 밖으로 나가서 미스터리가 펼쳐지고 수수께끼가 기다리는 그 거리를 직접 확인해보고 걸어볼 수 있다. 그리고 터얼서점 위층의 반짝이는 해도처럼 그 거리들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주제는 옥스퍼드에 결코 낯선 게 아니다. --- p.125

12 배우와 그의 서점, 그리고 새뮤얼 존슨과 제임스 보즈웰 토머스데이비스서점
1762년 데이비스 부부는 코벤트 가든의 러셀 스트리트 8번지에 서점을 열었다. 새로운 서점의 단정한 외관, 그리고 쾌활하고 사람 좋은 전직 배우 서적상과 미모의 부인에 대한 소문 덕택에 고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결코 연극을 버리지 않았다. 서점에서 그는 극단장이나 다름없었다. 서점은 텅 빈 무대였고 데이비스는 자신의 상상력과 영혼이 이끄는 대로 그곳을 변신시킬 수 있었다. --- p.136

보즈웰과 존슨이 함께 지낸 시간은 고작 270일이지만《새뮤얼 존슨의 생애》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정신과 자아를 만나 진정하고 엄정하게 교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그렇게 서로 다른 두 지성이 만나, 그토록 깊이 교류한 순수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 기록 속에서 두 사람은 살아 있을 때처럼 생생하게 남아 있다. 데이비스의 서점에서 대화를 나눈 지 며칠 후에 보즈웰이 존슨의 집을 방문했고, 두 사람 사이의 위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 p.139

13 세실 코트를 걸으며 왓킨스서점
나는 세실 코트에 늘어선 가게의 진열창을 하나씩 지나치며 옛날 편지들을 구경했다. 편지를 곱게 접은 다음 옅은 갈색 잉크로 주소를 쓴 종이봉투에 넣어, 반짝이는 주홍색 밀랍으로 봉하고 우표 아닌 소인을 찍은 편지들. 잉크병과 잉크 말리는 모래도 있었다. 불 꺼진 어느 진열창에는 초록색, 진한 호박색, 푸른빛의 수레국화색, 청록색, 자주색 유리병이 가득했다. 그중 하나는 약제상의 독약병을 연상케 하는 코발트 청색이었다. 나는 그 병 표면에 혹시 누빔무늬나 오톨도톨한 혹들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다. --- p.148

나는 책을 한 권 찾으러 왔는데 제목이 확실치 않았다. 젊은 직원에게 부탁했다.
“제목에 ‘명예’가 들어가 있고요, 페이건 에틱스 시리즈에 있어요.”
“아, 본 적 있어요!” 그가 말했다. “그게 어디 있더라…, 찾아볼게요.”
그는 “기타”라고 표시된 계단을 따라 급히 내려갔다. 그러고는 “찾았어요”소리가 들리더니, 한 손에 내가 찾던 책을 치켜들고 올라왔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았어요?” 내가 물었다.
“어느 분야로 분류할까 고민했었거든요. 이 책은 철학과 신비주의, 그리스 고전과 동양… 사이에 있죠.” --- p.153

한때 이곳은 이발사인 존 쿠진John Couzin의 집이었다. 그의 집에 1764년 4월부터 8월까지 레오폴트와 안나 모차르트 부부가 아들 볼프강을 데리고 머물렀다. 당시 아이였던 볼프강 모차르트는 런던에서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기 위해 잉글랜드에 당도했다. 나는 모차르트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일곱 살의 나이에, 이 서점의 그 무엇만큼이나 불가해한 재능을 지녔던 모차르트에 대해. 어떻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앎 너머에 있는 곳으로 남겨두는 것 말고는. 어쨌든 이곳은 모차르트를 생각하기에 딱 어울리는 장소다. --- p.154

14 시 읽는 정원 킹스서점
서점 안은 길었다. 그리고 무척 환했다. 출입문의 긴 창유리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빛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환했다. 반짝이는 원탁에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서점 안 풍경이 맺혔다. 책으로 둘러싸인 삼면의 벽과 여행서와 어린이책이 꽂힌 원형 거치대가 원탁에 비쳤다. 형형색색의 어린이책 속에서 스코틀랜드 삽화가 마리 헤더윅Mairi Hedderwick, 나니아, 그린치를 비롯한 닥터 수스의 여러 등장인물, 로알드 달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이책을 뒤로 하고 소설이 꽂힌 벽을 따라가다 보니, 정원 출입구가 눈에 띄었다. 작은 뒷산으로 이어지는 정원의 모습은 시도서Book of Hours(중세시대에 만들어지던 기도서로 기도문과 성가, 전례문이 삽화와 함께 실려 있다-옮긴이)에 등장하는 한편의 삽화 같았다. 방금 보았던 나니아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저 너머 햇살이 반짝이는 꽃의 정원으로 갈 방도가 있을까? 당장은 없는 듯했다. 아직은. --- p.160

커피는 언제나 후하게 대접되었고 낭송회가 끝나고 나면 모두 서점에 모여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정원을 떠났다. 작은 통로를 따라 서점으로 들어가다가 나는 그만 일행을 놓치고 말았다. 그곳에는 ‘사유지’라든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 같은 표지판은 없었다. 그런 표지판은 킹스서점답지 못했다. 대신에 환한 빛 속에서 옅은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듯한 신비로운 공간이 나왔다. 그곳에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혹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듯한 책들이 책장에 놓여 있었다. 제본되기를 기다리는 책들이었다. 새로운 생명으로 환생하기를 기다리는, 아주 오래된 책들이었다. --- p.163

15 떠남 바우어마이스터스서점
우리가 만난 두 번째 해에 그는 나를 어느 서점에 데리고 갔다. 더마운드the Mound의 우아한 석조건물 사이에 작은 서점 하나가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피어 있었다. 스코틀랜드은행과 성공회회관의 높다란 벽에 둘러싸인 그 동네에서 서점 진열창에 놓인 다양한 색상의 외국 책표지가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정열적인 노란색의 프랑스문학, 영국의 빅터골란츠Victor Gollancz출판사의 책들, 순백색의 외국 에세이집들, 주홍색 표지에 고딕체로 제목을 쓴 정치사 서적들, 지적인 파란색의 유럽 소설들, 로맨스와 시집들, 짙은 갈색 표지에 부드러운 글씨체로 제목을 쓴 아일랜드 시인들의 시집이 흰 불빛 아래 놓여 있었다. --- p.171

매일 오후 4시쯤 그가 도서관 문을 찰칵 열고 들어오면 나와 내 책들은 그를 따라서 세인트 자일스 성당 맞은편 카페로 갔다. 그 카페에서 그는 여러 날에 걸쳐 《가을 일기》의 4부를 조금씩 내게 읽어주었다. 그 당시에 나는 잘 몰랐지만 그건 나에 대한 사랑 고백이었다. 맥니스의 시는 학교에서 읽던 엘리자베스시대와 빅토리아시대의 시만큼 달콤하지도 유려하지도 않았지만, 나와 같은 현실의 소녀에게는 그게 오히려 더 진정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 p.172

우리는 언젠가는 모두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날개 달린 마차를 알고 있었다. 일과 삶 사이의 뼈아픈 선택에 대한 예이츠의 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양심과 의무 사이에서 갈등하던 햄릿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관념 중 무엇도 우리를 현실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실수가 두려워, 비난이 두려워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지식을 통해 성장했지만 협상의 경험이 없었다. 그 긴 지식의 순례길 끝에 내가 다다른 것은 강렬한 감정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 감정을 불신했다. 내가 틀렸다. 나는 너무 어려서 그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릴지 알지 못했다. --- p.174∼175

16 돌아온 헨리 제임스 카라로
그의 노래는 그 누구의 노래와도 달랐다. 해안가 성당의 미사에서 합창단의 소리가 파도처럼 부서질 때 그의 목소리가 바다의 흐느낌처럼 떨리며 올라가더니 척박한 삶의 고통과 전율을 담아 높이 솟구쳤다. 이 마을에서는 길도 집도 교회도 모두 돌로 지어졌고, 들판을 구획한 담도 돌로 쌓였다. 토머스는 게일어로 시를 쓰는 시인이었다. --- p.179

책장에는 바다 이야기가 한두 권 있었고, 피곤한 저녁을 달래줄 소설이 몇 권 있었다. 아일랜드의 역사책과 지도도 있었다. 고전도 몇 권 있었다. 각양각색의 표지를 두른, 아름다운 양장본 책들도 있었다. 이 서의 시골 마을에서 문화는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것, 일상의 다른 욕구와 구분되지 않는 것이었다. 토머스가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읽고 싶은 책 있어요?” 나는 헨리 제임스의《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을 발견했다. 읽고 싶고, 갖고 싶은 책이었다.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책이었다. 토머스는 특별한 그날을 기념하고 싶다며 내게 그 책을 사줬다. 그에게 특별한 일이란 집이 수리되었고, 날씨가 화창하고 상쾌했으며, 바다는 거칠지만 다정했고, 누군가 그와 함께 차와 설탕, 그리고 불을 피울 성냥을 사러 나왔다는 것이다. --- p.181

17 아일랜드에서 존재하는 법 케니스서점
내가 케니스서점을 다시 찾게 되는 이유는 언제나 계단 때문이다. 빙글빙글 돌며 각 층을 통과하는 중세풍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주름무늬 카펫이 깔린 맨 꼭대기 층이 나온다. 그곳에 가면 가장 오래되고 희귀한 책들을 만날 수 있다. 뉴욕의 고급 로프트처럼 널찍한 이 꼭대기 층의 서남향 창문으로는 항구에서 대성당까지 이어지는 옛 길을 굽어볼 수 있다. --- p.189

케니스서점의 문에는 엮은 바구니가 걸려 있었다. 판매용으로 걸어둔 게 아니라 옛날에 바구니 제조를 생업으로 삼았던 이 마을에서 풍요를 기원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서점 안도 풍요롭고 충만했다. 내가 평생 고르고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책들, 많은 그림들, 카드들, 소책자들, 책을 쓰기 위한 종이들, 메모하기에 좋은 공책들, 가죽양장에 도금을 하고 새틴 리본을 단, 행복한 미래를 기록할 일기장들이 있었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무한한 시간이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곳이었다. --- p.191

나는 온라인으로 책을 요청하고, 책값을 지불했다. 그랬더니 내가 요청한 책들이 진짜로 왔다. 누구로부터, 누구의 손을 거쳐 왔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것 역시 또다른 종류의 전설이 될지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기도와 응답’의 관계 같기도 하다. --- p.195

18 오래된 빛 아틀란티스서점
T. S. 엘리엇도 분명 이 서점에서 구르지예프의 책을 몇 권 샀을 것이다. 엘리엇이〈황무지〉를 출간한 1922년에 아틀란티스서점은 이미 영업 중이었다(뮤지엄 스트리트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 무렵 엘리엇은 여전히 피요트르 우스펜스키에게서 “위대한 가르침”을 찾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서점은 1946년에 뮤지엄 스트리트로 이전했다. 엘리엇이 아틀란티스의 역사를 그리듯 “불행했던 어느 낮과 밤의 지나가는 순간들”을 기록한《네 개의 사중주》를 발표한 지 2년이 지난 뒤였다. --- p.203

음악을 틀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큰 공간에서 리듬을 느꼈다. 어쩌면 내 심장의 리듬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서점의 리듬이었는지도. 누군가 배달을 오고 사인을 하고 정리하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일단 문이 닫히고 나자 서점은 다시 혼자서 출렁이는 바다가 되었다.
아들이 부탁한 책이 다 포장되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들고 갈 책이 너무 많았다. 결국 그 아름다운 책들을 우편으로 보내기로 했다. 내 주소가 조용한 서점에 울려 퍼졌다. 지상에서의 나의 거처와 이곳의 마법이 서로 닿는 순간이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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