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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영광

권력과 영광

[ 양장 ] 열린책들 세계문학-14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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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11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42g | 128*188*30mm
ISBN13 9788932911465
ISBN10 893291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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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냄새가 사방에서 올라왔다. 지구가 우주 공간 속으로 떨어져 나올 때의 화염에도 그 습기만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다. 그래 봐야 이 끔찍한 지역의 안개와 구름만 겨우 빨아들였을 뿐이리라. 쭉쭉 미끄러지는 노새 위에서 아래위로 흔들거리며 그는 브랜디로 굳어 버린 혀를 놀려 기도했다.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곧 체포되기를 바라옵니다.」 그는 탈출하려 했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노예가 되어 바람이 잠잠해지지 않을 때면 몸조차 눕히지 못했던 서아프리카 한 부족의 추장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 p.33

때리려고 치켜드는 마리아의 손, 어스름 속에서 애어른처럼 떠들어 대는 페드로, 숲을 뒤지는 경찰들. 폭력은 도처에 있었다. 그는 조용히 기도했다. 「아, 하느님, 통회하지 않겠사오니 어떤 식으로든 죄 중의 상태로 저를 죽여 주시고, 다만 이 애를 구하소서.」 그는 영혼들을 구제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한때 그 일은 정말 간단했다. 축복의 기도를 내리고, 조합을 만들고, 창살이 달린 창 안에서 할머니들과 커피를 마시고, 검은 장갑을 끼고 작은 향으로 새로 지은 집을 축성하는 일……. 그건 돈을 모으는 일만큼이나 쉬웠는데 이제는 신비로운 일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그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절망적으로 감지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 낄낄대며 도망가려고 하는 아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사랑한다, 얘야. 난 네 아버지고 너를 사랑한단다. 넌 알고 있어야 해.」 --- pp.134-135

〈사생아〉라는 단어를 들으니, 사랑에 빠진 남자가 애인의 이름과 같은 꽃 이름을 낯선 남자가 입에 올리는 걸 들을 때처럼 그의 가슴이 쓰라렸다. 〈사생아!〉 그 단어 덕분에 그는 비참한 행복에 푹 빠져들었다. 그 단어를 떠올리자, 아이가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쓰레기 더미 옆 나무 아래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딸의 모습이 그의 눈에 선했다. 무심함을 가장한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는 다시 〈사생아〉라고 되뇌었다. --- p.201

어디로 가든, 어느 정도 가면 물론 마을이 나올 것이다. 계속 가면 해안에, 태평양에, 과테말라로 가는 철도 선로에 닿을 것이다. 거기에는 길도 있고 자동차들도 있을 것이었다. 기차를 마지막으로 본 건 10년 전의 일이었다. 해안을 따라 검은 선이 쭉 이어지는 지도를 그는 상상할 수 있었다. 50마일, 1백 마일 너머로 펼쳐진 미지의 땅도 그는 볼 수 있었다. 거기가 바로 그가 지금 있는 곳이었다. 인간들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난 셈이다. 이제 그를 죽일 수 있는 건 자연뿐이었다.
가던 대로 그는 계속 걸었다. 버려진 마을, 죽어 가는 잡종 개와 구둣주걱이 있는 바나나 농원으로 다시 돌아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으니까. 기어 내려가고 또 기어 올라가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는 수밖에 없었다. 비가 지나간 뒤 협곡의 맨 위에 서서 바라보니 젖은 회색 장막이 출렁이는 아래로 일그러진 땅과 숲과 산들뿐이었다. 그건 꼭 절망을 바라보는 일 같았다. --- p.202

사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숨소리를 들으려고 사내의 입 가까이 얼굴을 갖다 댔다. 역겨운 냄새가 치올랐다. 토사물 냄새와 시가 냄새, 퀴퀴한 술 냄새가 뒤섞였다. 들릴락 말락 한 영어가 그의 귀에 닿았다. 「튀어요, 신부님.」 문밖 폭풍 앞의 햇살 속에서는 메스티조가 무릎에 조금 힘이 풀린 듯 오두막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살아 있는 거 맞소?」 사제가 활기차게 말했다. 「서둘러야겠군. 얼마 남지 않았으니.」
「튀라고요, 신부님.」
「나를 필요로 한 사람이 당신 맞소? 가톨릭 신자요?」
「튀어요.」 다시 목소리가 속삭였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배운 것 중 기억할 수 있는 표현은 그것뿐이라는 듯. --- p.297

이것이 바로 내가 항상 모든 이들에게 느껴야 했던 감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혼혈인, 경위, 심지어는 몇 십 분 동안 함께 앉아 있었을 뿐인 치과 의사와 바나나 농원의 그 아이에게로 생각을 돌려 보려고 했다. 끄떡도 하지 않는 무거운 문을 밀듯 주의를 한곳으로 모으며. 모두 각자의 위험에 처해 있던 그 사람들에게로. 「그들 모두를 보살피소서.」 그는 기도했지만, 기도하는 순간 그의 신경을 쓰레기 더미 옆에 서 있던 자기 딸에게로 돌아갔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기도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다른 실패였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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