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사이어가 권하는 “세계관 탐색적 독서법”>
1. 빨리 읽으려고 하지 말라. 평소에 읽던 속도대로 읽으라. 아니면 더 천천히 읽으라. 속독은 유용할 수도 있지만, 세계관 탐색적 독서에는 쓸모없을 공산이 크다.
2. 필기 도구를 가지고 읽으라. 저자가 중점을 두고 있는 단락이나 개념, 비유에 밑줄을 그으라. 주제문이나 논증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편리하다.
3. 기사나 에세이가 아니라 단행본을 읽고 있다면, 서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소개 글들을 먼저 읽으라. 그런 류의 글들은 저자가 의도하는 바를 알려 줄 것이며, 저자의 가설들, 그가 선택한 방법들을 알아보는 통찰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4.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와 개념을 찾아볼 수 있도록 백과사전이나 여러가지 사전을 활용하라. 단어 위에다 용례를 적어 두는 것도 어휘력을 배가시키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5. 첫째, 둘째 등 중요한 편제를 말해 주는 단어에 밑줄을 그으라. 논증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논의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중요한 매듭이 있을 때마다 여백에 번호를 매겨 두고 싶을 수도 있다. 글쓰기의 스타일은 각양각색이게 마련이어서 글 하나하나마다 거기에 맞는 여백 활용법을 찾아야 한다.
6. 책 전체나 하나의 장을 읽은 뒤에는, 곧바로 내용을 다시 검토하고 제목을 붙여 두라. 논제가 들어 있는 대목은 전체 내용을 단순 명료하게 요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책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을 짚어 준다. 그런 대목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논제를 적어 보라.
7. 여백에 책이 말하는 개요를 거칠게나마 구성하여 적어 두라. 이것은 필자가 주장을 펴나가는 방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필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필자가 왜 타당하다고 믿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단행본의 경우, 목차의 순서를 조금이라도 유념해 본다면 책의 일반적인 유형을 구별하는 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8. 읽고 있는 글의 장르를 판단하라. 물론 수필을 읽고 있는지 시나 소설, 희곡을 읽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인칭으로 쓰여진 시만 하더라도 자전적인 작품인지 아니면 등장인물을 앞세우고 쓴 글인지 알아봐야 한다. 아울러 필자의 진술 태도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9. 필자가 어떤 가정 아래서 어떤 방식으로 목표에 도달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라. 필자는 무슨 증거를 끌어대고 있는가? 인용된 내용은 믿을 만한가? 비판할 만한 점은 없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가 예상하고 있는 반론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거기에 대해서도 논박하고 있는가? 어떻게 논박하는가?
10. 필자가 최고의 실재, 즉 참으로 진실한 존재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파악하라.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가? 신과 비슷한 것은 무엇인가? 신은 인격적인가, 비인격적인가? 무한한가, 유한한가? 신은 하나인가, 아니면 여럿인가? 신은 우주, 인간사(人間事), 사람들, 그리고 저자 자신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11. 필자는 외부 세계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물질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영혼뿐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도 아니면 물질과 영혼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가? 근본적으로 질서 정연한 것, 아니면 혼돈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상을 바꾸는 것은 무엇이며,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2. 필자가 말하는 인간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인간은 인격적인가, 아니면 비인격적인가? 사람은 기계인가, 유기체인가? 그게 무엇이든, 인간과 동물(또는 다른 동물들)을 구별짓는 조건은 무엇인가?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사람의 모든 행동은 이미 결정되어 있거나 프로그래밍되어 있는가? 하나님과 우주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가정이 어떻게 가능한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오늘날 어떤 곤경에 빠져 있는가?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한 인간에게, 사회적으로는 인류 전체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가? 인류가 처한 곤경에는 해결책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 그 해결책이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13. 필자는 인간의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말하는가?
인간은 완전히 소멸되는가, 아니면 변형되는가? 변형된다면 무엇으로 변형되는가? 사람은 언제 태어나는가?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존재의 끝은 죽음인가? 아니면 다시 육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가? 어떤 상황 아래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14. 필자에 따르면, 도덕의 기초는 무엇인가? 이것은 “어떤 가치를 지지하는가?”라고 묻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도덕성은 모든 가치의 뿌리다. 개인의 도덕성만이 가치 있는가? 사회 전체의 윤리가 중요한가? 아니면 초월적인 하나님의 도덕률인가? 절대선은 존재하는가?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 갈등은 어떻게 해결되는가?
15. 필자는 역사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역사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획인가? 역사의 의미는 어느 한 개인이 그것에 부여하는 의미와 같은가? 아니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부여하는 의미의 총계인가? 역사는 직선적인 궤적을 따라 뻗어나가는가, 또는 순환하는가? 다시 말해서 우리가 겪는 사건들은 절대로 되풀이되지 않는, 또는 영원히 재발하지 않는 유일무이한 것인가? 시간이란 정말 의미 있는 단위인가? 아니면 실제 사건들은 초(超)시간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는가?
(--- 본문 74-79쪽에서)
마침내 책을 모두 읽는 순간이 왔다. 글 전체와 모든 컨텍스트에 신경을 써가며 완독했다. 책이 내세우는 주장을 파악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올렸으며 작품에서 더할 나위 없이 깊은 감동을 받았으니, 독자들은 대단히 만족스러울 것이다. 바로 이때가 ‘훌륭한 독서’라는 행위를 뛰어넘어 ‘훌륭한 삶’이라는 행위로 진입하기를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시간이다.
(--- 본문 204쪽에서)
오류를 오류로 분명하게 인식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보다 오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더 무서운 일이다. 신학생들은 이단을 정통 신학만큼 열심히 연구한다. 의대 교수들은 건강보다 질병을 연구한다. 왜 그런가? 그렇게 해야만 건강을 유지하도록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질병과 싸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진리에 대한 지식은 오류에 맞서는 최고의 방어책이다. 독서를 말할 때, 성경공부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삶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과 게임의 규칙, 우리를 성장시키시는 방식 따위가 모두 성경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놀랍게도 그것은 여느 문학 작품을 읽는 것과 똑같이 읽어야 한다. 역사로서 성경의 역사를, 시로서 성경의 시를, 비유로서 성경의 비유를, 그리고 명령으로서 성경의 명령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앞에서 살펴본 장들에 나와 있는 모든 조언과 충언들을 모두 연습해야 한다.
(--- 본문 205-20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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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전제들을 파악하는 작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올바른 독서의 일부며, 자신의 세계관을 검증하는 과정인 동시에 글과 말로 메시지를 전하는 이의 정신과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제 줄지어 늘어서서 헌신을 요구하며 경배를 받고 싶어하는 우상들에 관심을 가져 보자. 그래야 점점 더 퇴폐적으로 변해 가는 문화 속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본문 29쪽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빨리 읽으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세계관 탐색적 독서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쉬워지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제 2의 천성으로 자리잡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수집한 정보들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빠른 속도로 책을 보는 동시에 세계관 탐색적 독서를 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속독을 토대로 해서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라. 앞으로는 주의 깊게 읽어야겠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말라. 속독이란 그저 나열된 사실들을 주워 담고 신중한 독서를 고사(枯死)시키는 데에나 쓸모가 있다. 진지한 일(설령 즐기기 위한 일일지라도)은 대충하지 않는 법이다. 이제 당신의 지성(mind)을 십분 발휘해 읽으라.
(--- 본문 80쪽에서)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되풀이할 이야기 하나를 들려 주고 싶다. 얼마나 빨리 읽느냐는 전혀 신경 쓰지 말라는 부탁이다. 실제로 다음 몇 장을 읽고 또 읽어 달라고 거듭 요구할 것이다. 그러다보면 독서 속도가 한없이 처질지도 모른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올바른 독서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래도 나로서는 반복해서 읽으라고 권할 수밖에 없다. 독자의 지적인 능력을 무시해서가 아니다. 훌륭한 독자는 다양한 내용을 여러 번에 걸쳐 읽고 또 읽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독서법을 체득할 때쯤이면 어느 결엔가 책 읽는 속도가 덩달아 빨라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으쓱할 건 없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양으로 승부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프록스마이어(Proxmire) 상원의원은 1분에 2,500개의 단어를 읽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평범한 독자라면 1분에 250개의 단어를 읽어 낸다. 속도는 그만하면 충분하다.
(--- 본문 33-3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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