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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악마와 내기를 하다

괴테, 악마와 내기를 하다

탐 철학 소설-32이동
김경후 | | 2017년 07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4 리뷰 13건 | 판매지수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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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326g | 144*210*16mm
ISBN13 9788964963449
ISBN10 89649634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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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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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하얀 얼굴, 누구보다 똑똑하고 얌전해 보이는 소년. 그러나 문수는 인간이 아닌 호문쿨루스였다. 동네 이웃들과 학교 사람들은 문수가 과학에 미친 어느 아줌마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박은오 박사가 인간의 세포와 몸 일부를 열, 증류, 기타 화학 실험을 통해 만든 인조인간이니까 그녀의 아들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를 받고 엄마의 자궁을 통해 태어난 보통 아들과는 달랐으니 말이다.
‘로봇은 인간의 일부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인간이 되는 것이 목적도 아니야. 로봇은 인간을 도와주기 위한 도구, 잘 만들어진 기계일 뿐이지. 문수랑은 달라.’
박사는 로봇을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었다. 자신의 과학적 능력과 지식만으로 완벽한 인간을 만들고 싶었다.
- 1장 〈인간은 노력하는 한 사랑을 찾는다〉

한 번 일어난 일은 두 번도 일어날 수 있다. 변화는 변화를 부른다. 어느 방향으로 틀었는지 확신할 순 없었다. 몹시 나쁜 것일 수도 있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문수는 그게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괴테 할아버지가 그러지 않았는가. 나쁜 것을 나쁘다고 해 봤자 무슨 이익이 있냐고. 그리고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하면 그건 더욱 나쁜 일이 된다고. 그리고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다.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살길 원치 않을 거라고 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의 아주 중요한 길목에 친구가 서 있는 게 분명했다.
“어? 어, 그, 그래.”
“고마워.”
“지, 지각하겠다. 빨리 가자.”
“그래, 좀 뛸까?”
문수가 시험이나 성적에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학교생활이 즐거울 리도 없었다. 그가 관심 있는 건 예현이었다. 그는 그걸 인정하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퉁퉁거리는 말 외엔 하지도 않던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던 아이, 예현이가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궁금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여전히 모래가 섞인 매캐한 바람이었다. 하늘도 맑진 않았다. 그러나 문수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가뿐하고 기분 좋게 예현이와 학교로 향했다.

멀리서 둘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있었다. 메피스토. 그도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다.
‘오, 뭔가 인간의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구나, 호문쿨루스. 무언가 달라졌어, 확실히. 흐흐흐. 그 달라진 방향이 이 악마 님에게 아주 유리한 방향이란 말이지. 지금 저 상태라면 인간으로 봐도 될 정도야. 당장 몸을 뒤져 영혼을 꺼내고 싶을 지경이야. 그래, 노력해라. 열심히 노력해. 그래서 지옥으로 데려가기 아주 좋은 영혼을 가지렴. 크크크.’
말라죽은 나뭇잎 같은 손을 비비며 메피스토는 키득거렸다.
- 3장 〈인간은 노력하는 한 소통한다〉

파우스트가 메운 바닷물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문수의 가슴으로 들어왔나 보다. 문수는 가슴속에 슬픔과 무거움이 가득 차오르는 걸 느꼈다. 창밖의 어두운 빛을 받아 가끔 비치는 파우스트의 얼굴은 메피스토보다 강하고 악하고 고집스럽고 섬뜩했다. 이제 악마 수습생들은 모두 파우스트에게 와서 악의 본성을 견학하고 강의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진짜 악마는 원래부터 인간의 모습이라고 떠도는 소리가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파우스트가 온몸에 힘을 빼고 몹시 불쌍하고 초라한 늙은이의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난 세상 어디든 다 누벼 봤어. 사랑도, 즐거움도, 고통과 허무도 겪었지. 폭풍처럼 인생을 달려온 거지. 오로지 노력만으로 말이야. 운하를 파고 물길을 만들고 땅을 만드니 사람이 모여들고 시장이 만들어졌어. 도시가 세워지고. 우린 바다를 통해 더 넓은 곳을 향해 나아갈 거야. 다른 땅의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까지도 도울 수 있을 거야. 그들에게도 문명의 시대를 열어 줄 거야. 바다를 메워 만든 드넓은 땅에 사람이 모이게 할 거야. 그 땅에서 하루하루 땀 흘려 열심히 살아가는 한 자유로울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 주고 싶어. 그들도 돕고 우리도 이익을 보고. 어때, 멋지지 않아? 폐허에 이렇게 멋진 궁전이 세워진 것처럼 다른 곳도 기적처럼 아름답게 만들 수 있어.”
“과연 그럴까? 내가 보기엔 파우스트 당신은 그냥 사업가인 것 같은데. 좀 더 고상한 꿈을 꾸는 지배자이거나. 뭐, 어쨌든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인간이지.”

문수는 더 말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궁전의 꽃병에 꽂혀 있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가지고 잿더미로 변한 오두막과 보리수가 있던 언덕으로 향했다.
- 5장 〈인간은 노력하는 한 사랑을 찾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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