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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 기형도 추모문집

기형도 | | 1999년 04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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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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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9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53쪽 | 380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5062626
ISBN10 898506262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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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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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913

기형도가 죽었다. 기형도는 시인이다. 기형도가
묻혔다. 기형도를 땅속 깊이 묻었다.
곧 많은 열매가 맺히리라. 기형도는 땅에 떨어졌고
묻혔고, 썩었다. 그 첫열매의 얼굴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형도는 자지가 있었다.
기형도의 자지는 내 자지다. 자지가 썩었다.
어머니말고 기형도 자지를 본 여자가 보고 싶다.
그런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가 달고 있는 자지 반대도
썩을 것이다. 기형도가 벌떡 일어나 걸어다닌다.
문학이 어떻고 시가 뭐고 하고 싶다고
하다가 한 많은 이 세상을 부르고 있다.
기형도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묻힌다.
터질 듯한 유방과 엉덩이가 찢어질 듯 발기한
자지가 묻힌다. 더럽고 또 더럽고 세 번 더러운 서울이
내 고향 경기도 안성의 한 구릉에 묻힌다.
폼페이처럼 베수비오스 화산처럼.
기형도에 묻힌다. 기형도가 괜히 죽었다.
기형도가 멋있다.
기형도를 제외한 그 모든 놈들은 다
나쁜 놈이다. 기형도가 제일 착하다.
조금은 착한 나는 또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고 나는 싼다.
이 자지 반대 같은 세상에
기형도가 찍 싸진다. 기형도가
내 자지 속에서 나와 자지 반대의
그 어떤 부드러운 곳으로
쏙 들어간다. 기형도가 잘 죽었다.

(pp. 121-122, 김영승의 추모시)
--- p.
그리하여 내 정든 포도밭에서 어느 하루 한 알 새파란 소스라침으로 떨어져 촛농처럼 누운 밤이면 어둠도, 숙주인 희망도 내게는 너무나 거추장스러웠네. 기억한다. 그해 가을 주인은 떠나 없고 그리움이 몇개 그릇처럼 아무렇게나 사용될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짧은 촛불들을 태우곤 했다. 그렇게 가을도 가고 몇잎 안남은 친구들마저 천천히 힘을 잃어갈 때 친구여, 나는 그때 수천의 마른 포도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놀라운 空中을 만났네
--- p.197-198
그것은 어느 늦은 겨울날 저녁
조그만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누구를 기다리기로 작정한 것도 아니었다
부르기 싫은 노래를 억지로 부르듯
흑인가수의 노래가 천천히
탁자에는 시든 꽃 푸른 꽃 위에는 램프
어두웠다 벽면에 긴 팽이모자를 쓴
붉고 푸른 가면들이 춤추며
액자 때문은 아니었다
예감이라도 했던들
누군가
나를 귀찮게 했던들 그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대학생이었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래서 더욱 무서웠다
가끔씩 어떤 홀연한 계기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전청춘이
한꺼번에 허물어져버린 것 같은
슬픔을 맛볼 때가 있듯이
레코오드판에서 바늘이 튀어오르듯이
그것은 어느 늦은 겨울날 저녁
조그만 카페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천천히 탁자 아래로 쓰러졌다

(1984.2.17)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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