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세상에는 참으로 아름다운 편지들이 있습니다.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은 스물여섯이라는 엄청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백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우정의 편지요 존경의 편지였지만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의 편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편지는 심오한 내용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예’를 갖춘 겸허한 자세가 큰 감동을 줍니다.
발자크가 우크라이나 오데사 지방에 사는 2년 연하의 폴란드 백작부인 에블린 한스카에게 보낸 어마어마한 양의 편지는 또 어떻습니까.
‘이국의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작가 사후에 책으로 발간되었는데 그 수는 4권, 장편소설치고도 아주 긴 소설 분량이었다고 하지요. 발자크는 한스카 부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중요한 일과였으며, 이 책은 그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비평가라는 벨린스키한테서 “당신이 정말 이 소설을 쓴 사람이란 말입니까”라는 경악에 가까운 찬사와 함께 와락 포옹을 당했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적이자 출세작인 『가난한 사람들』은 대표적인 서간체 소설입니다. 빼쩨르부르그 뒷골목의 가난한 연인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 마까르 알렉세예비치가 주고받는 편지가 한 편의 놀라운 소설이 되어 17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편지라는 것은 참 신기하게도 내 마음을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습니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 전송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감정의 통로인 편지를, 오늘날에는 왜들 안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군인이었을 때만 하더라도 고참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것이 고역이었는데 지금 군에서는 편지를 써달라며 부하를 괴롭히는 고참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김천 촌놈인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3학년 때까지 10년 가까이 재수 1년, 휴학 1년이 포함되어 이름 알고 주소 알고 얼굴은 모르는 서울의 소녀에게 편지를 썼었습니다. 편지가 너무 두툼하여 우표를 2장 붙여야 했던 그 세월의 편지가 저를 시인의 길로 걸어가게 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시와 수필, 독후감 등을 정성껏 써 보내면 그 소녀는 겨우 한 장 내지 두 장의 답장을 보내주었지만 저는 그 편지를 수십 번 되풀이해 읽으면서 가슴을 졸였습니다. 갈망과 동경, 그리움과 서러움을 듬뿍 담아 쓴 저의 그 편지가 어느 날 몽땅 반송되었고, 저는 제가 썼던 편지와 그녀한테서 온 편지를 김천시 외곽을 흐르는 감천 냇물에 몽땅 떠내려보내는 결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 이후에도 편지의 형식을 빌려 글을 쓰곤 했던 것은, 그녀를 향한 10년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생각, 내 느낌, 내 희망, 내 의견 등을 남에게 전하고자 할 때, 가장 좋은 형식이 편지임을 저는 이미 중학생 시절에 충분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편지를 쓸 때는 마음의 온갖 삿된 것이 사라져,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 비슷한 경지에 이르곤 했습니다.
편지는 진심을 토로할 수 있기에 참 좋은 것입니다. 소설은 그야말로 픽션이며, 시도 많은 경우 작은 체험과 큰 상상력을 버무려 빚어낸다는 점에서 진리를 추구하기는 하되 사실 그 자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편지라는 형식으로 글을 쓸 때는 보았던 것, 들었던 것, 느꼈던 것을 곧이곧대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추호의 가식이 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사람 저 독자에게 썼던 편지를 다른 어떤 장르의 글보다 ‘사실’이라는 측면에서는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습니다. 솔직히 말하건대 책으로 낼 생각은 해보지 못했습니다.
제 젊은 날의 벗 중에 윤승천이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윤 시인은 1986년에 박세현·오태환·원재길과 저 네 사람을 포섭하여 ‘세상 읽기’라는 시 동인을 결성하였고, 다섯 동인은 2권의 동인지만 내고는 각
자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20년 만에, 이번에도 윤승천 시인이 연락을 하여 우리는 원주에서 차로 30분은 더 들어가는 벽지에 집을 짓고 사는 원재길의 집에서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년 만에 만난 윤승천 시인은 시인이 아니라 건강신문사 사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전화로는 간간이 안부를 묻기도 했었지만 서울의 지붕 아래 살면서도 만나지 못했던 것은 윤승천이 출판 편집인 혹은 전문 언론인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윤승천과 저는 서울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저녁식사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시가 있는 편지’에 대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편지란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남에게 전할 수 있기에 좋은 것입니다. 저의 진심이 이 책을 읽는 여러분에게 전해지길 바랍니다. 제가 편지를 보냈던 분들, 즉 제 편지의 대상이 되었던 분들에게 일일이 연락 드려 미리 허락 받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를 드립니다. 편지란 원래 내밀한 것이기에, 책을 통해 만인에게 공개하는 이 일이 부끄럽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널리 헤아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 마음이 어느 날 편지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전해졌던 것처럼, 오늘 이 시간 이 책을 통해 또 한번 전해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한 권의 책을 묶습니다.
2017년 6월에
경기도 안성땅 내리에서
이승하 올림
---「책머리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