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닫기
사이즈 비교
소득공제
기독교를 생각한다

기독교를 생각한다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정가
14,500
판매가
13,050 (10% 할인)
구매 시 참고사항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322쪽 | 564g | 150*224*30mm
ISBN13 9788935208562
ISBN10 893520856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관대한 정통신앙이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강의실과 교과서, 컨퍼런스를 넘어 기독교 공동체의 삶과 조직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관대한 정통신앙이 분열된 신학 대신에 이 포스트 기독교(post-Christian) 시대의 진정한 신학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데 관대한 정통신앙에 관한 비전이 현실로 이루어지려면 많은 자원이 준비되어야 한다. 다행히 벌써 적잖은 자원이 준비되었다. 나는 이 책이 그런 자원의 하나라고, 아니 정말 중요한 자원이라고 믿는다.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진정으로 관대한 기독교 정통신앙을 매력적이고도 도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포스트모던 에큐메니컬 선교적 기독교 신앙을 얻고 실천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는 관대한 정통신앙을 탐구하는 데 특히 중요한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둔다. (……) 둘째, 예수님의 중심되심이 관대한 정통신앙 특유의 열린 태도와 결합되어 있다. (……) 셋째, 이 책의 분위기는 솔직하고 진실하며 자기비판적이다. (……)

마지막으로, 관대한 정통신앙은 열린 마음으로 성령과 세상의 소리를 들을 줄 안다. 그래서 이 책은 대화를 끝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끝없는 대화를 추구한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특정 입장을 고수하지 않는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분명한 경계를 유지하되 우리가 살아 움직이고 숨을 쉬며 믿음의 경이와 불가사의를 탐구할 수 있도록 경계의 범위를 광대하게 넓힌다. 관대한 정통신앙의 시각에서 지속적인 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 지속적인 대화 속에서 성령이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끊임없이 인도하시리라. 이 책에서 브라이언은 올바른 대화의 정석을 보여준다. 그는 최종 결론을 내놓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솔직히 인정한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교회 안팎의 여러 목소리와 대화할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대화를 끝내는 것이다. 그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분을 위해 대화의 바퀴를 계속해서 굴리길 원한다. 많은 독자가 이 책 곳곳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브라이언은 “도발적이고 장난스럽고 불분명한” 책을 쓰겠다고 처음부터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독자들의 사고를 자극하여 그들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관대한 정통신앙이란 용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한스 프라이의 말을 늘 명심하라.
“정통적이지 않은 관대함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관대하지 않은 정통은 더더욱 아무것도 아니다.” --- 「존 프랑케 박사의 추천사_변해버린 세상과 교회의 변화」 중에서

한편, 나의 가장 큰 열정은 교회 사람들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관심이 쏠렸다. 나는 그들을 초대하고 싶다.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삶과 사명으로 인도하고 싶다. 하지만 그들을 교회로 데려올 때마다 전염병에 걸린 의사와 간호사의 병원으로 부상자를 태우고 가는 앰뷸런스 운전자의 심정일 때가 많았다. 이런 심정을 아는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가 전염병을 몰아내서 본래의 치유 기능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우리 종교와 우리 삶을 그분 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도 좋고 세상에도 좋다. 기독교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부한 종교다. 기독교가 활기를 잃고 타협하고 퇴보하고 혼란에 빠지고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으로 흐르면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모두 지는 것이다. 기독교가 옳은 태도와 분명한 비전을 품을 때 모두가 이긴다. 나는 미력하나마 교회가 건강과 비전을 회복하는 데 나의 온몸을 던질 생각이다. 하지만 내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당신의 도움, 그리고 물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 「프롤로그_당신은 어떤 기독교인인가」 중에서

정통신앙을 ‘실천’과 연결시킨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사실, 정통(복음에 관한 옳은 생각과 옳은 의견)과 정행(正行, orthopraxy)을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선택과목인 정행에서 D학점을 받아도 정통에서 A학점만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정통에서만 높은 점수를 맞아도 얼마든지 좋은 대학원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여태껏 정통을 정립하고 논의해 온 학자나 성직자 중 자신의 정통대로 살지 않은 사람이 너무도 많다. 정통 옹호자들은 농구선수보다는 심판에 가까웠다. 그들은 패스하고 드리블하고 슛할 줄은 모르고 그저 줄무늬 셔츠를 입고 휘슬을 불어 반칙을 지적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 모두가 경기장에 있다고 가정한다. 우리 모두는 선수다. 그래서 이 책은 심판의 정통과 선수의 정행 사이의 구분을 흐려놓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이 책은 정행을 얻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으로 정통을 본다. 우리가 규칙을 알려는 것은 심판으로 휘슬을 불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수로서 반칙을 하지 않으면서 패스하고 어시스트하고 3점 슛과 레이업 슛을 하며 경기를 즐기기 위해서다. 요컨대 이 책은 정행을 정통의 지향점으로 본다. 이것 역시 매우 비정통적인 개념이다. 또 얼마나 많은 독자가 지금 당장 이 책을 내던질지 모르겠다.

내가 염두에 둔 주요 독자층은 이 책에서 제기하는 이슈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기독교인(혹은 기독교인이었던 사람)이다. 그들이 복음주의자인지 자유주의자인지 가톨릭교도인지는 전혀 상관없다. 또다른 타깃 독자층은 예수님께 끌리지만 소위 기독교 안에 자신들의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예수님 외에 추가로 많은 것을 받아들여야 ‘회원’으로 받아주는 ‘기독교’ 집단이 많다. 그 많은 것이란 필수적인 정통신앙이 아니라 교리적 차별 요소(정통이라는 계약서의 세부 조항)이다. 이런 요소들이 복음 자체보다도 중요해지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들에게 떠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떠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여러분을 위한 자리가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대부분의 기독교 집단 내에 그들의 자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한 말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자리는 별로 없다.
이 말에 마음이 아프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 --- 「0장_이 위험한 책을 읽기 전에」 중에서

최근까지도 각 교파는 예수님에 대한 한 가지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머지 이미지는 과소평가해 왔다. 그러지 말고 이 다양한 강조점을 전체 홀로그램의 여러 면으로 보면 어떨까? 이 여러 면을 합쳐 예수님에 대한 풍성하고 다차원적 비전을 완성하면 어떨까?
이 모든 이미지를 즐기는 게 어떨까? 여러 문화의 음식을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주에는 태국 음식, 다음주에는 중국 음식, 이어서 이탈리아 음식과 멕시코 음식, 캄보디아 음식을 차례로 즐기면 좋지 않은가? 중국 음식은 좋지만 멕시코 음식은 독이라고 말해봐야 무슨 유익인가? 각 전통에서 뽑아내야 할 영양분과 기쁨(과 즐거움)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여러 요리를 믹서에 넣고 섞어 이도저도 아닌 죽을 만들자는 말은 아니다. 이런 식의 짬뽕은 맛도 없을뿐더러 몸에 좋지도 않다. 내 말은, 각 교파의 독특하고 훌륭한 요리들을 식탁 위에 모두 올려놓고 관대한 정통신앙의 만찬을 즐기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왕이면 온 세상을 위해 그런 만찬을 베풀자는 것이다. --- 「1장_내가 만난 일곱 교파 예수」 중에서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주님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님 없이 그저 구원자 예수님만으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진짜 주님이 혁명적 왕이자 스승이요 선생으로 오셔서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면 필시 우리는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며 그분을 가짜 예수님 취급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자 ‘친구 예수님’은 이미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며 ‘우리의 필요’를 꼬박꼬박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들여지고 낭만화되고 추상화된 예수님을 정통적인 예수님으로 삼았다. 그래서 다른 예수님은 이단적이고 낯설며, 심지어 위험하고 무가치하게까지 보인다.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예수님은 물론이고 많은 비기독교인이 무용지물로 여길 법한 종교다. 실제로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말씀하신 바 있다(마 5:13~16; 7:21~23). --- 「3장_예수라면 기독교인이 되었을까」 중에서

이런 선교적 접근법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솔직히 이 접근법이 일으키는 변화를 나도 다 모른다. 아직 이 접근법을 파악하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이 접근법을 따르면 ‘복음주의’와 ‘사회적 행동’ 같은 낡은 이분법이 불필요해진다. 두 요소가 세상에 구원의 사랑을 표현하는 일로 통합된다. 기독교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하면 된다. 기독교인이 되지 않으려는 사람은 사랑하고 섬겨주면 된다. 하나님과 함께 그 사람의 선과 복과 평안을 추구하면 된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목회’(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는 일)와 ‘선교’(우리가 교회 밖에서 하는 일)의 구분이 사라진다. 사실, 목회와 선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인격을 기르려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해보다는 선을 끼치기 위해서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선교사’와 ‘선교 현장’ 같은 단어도 불필요해진다. 따지고 보면, 모든 기독교인이 선교사며 모든 곳이 선교 현장이다. --- 「5장_나는 왜 선교적 기독교인인가」 중에서

관대한 정통을 상상하려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모두의 영웅적 모습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생각하면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모두 되고 싶다. 한편으로 두 진영의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 그들의 실수를 생각하면 어느 범주의 틀에도 갇히고 싶지 않다. 두 진영은 더 높은 길을 찾기 위해 위를 바라보고, 현 상태를 넘어 지평선 끝까지 뻗어 있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의 땅을 발견하기 위해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 포스트 보수주의나 포스트 자유주의 같은 용어가 당분간은 유용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이면 양극화된 용어가 아예 사라지는 날을 상상해 본다. --- 「8장_나는 왜 자유주의자이자 보수주의자인가」 중에서

기독교 역사에 수없이 많았던 딱딱하고 편협하고 강압적이고 비판적인 정통신앙들과 달리, 관대한 정통신앙은 교만하지 않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겸손하며 너무 많은 것을 주장하지 않고 스스로 불완전함을 인정한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정통을 산문 학자들(신학자들)만의 배타적 영역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체스터튼처럼 시인과 신비주의자들을 포용한다. 심지어 거의 입을 열지 않거나 아예 침묵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환멸이나 의심에 빠진 사람들까지도 포용한다. 이들의 침묵은 하나님의 위엄을 훌륭하게 표현해 낸다. 오히려 인간의 그 어떤 말보다도 낫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사랑과 연민을 품은 행동가와 인도주의자들을 포용한다.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에 관해 글이나 설교, 개요, 심지어 시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 「9장_나는 왜 신비주의자이자 시인인가」 중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성경적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시기는 우리가 선한 사람이 되려는 목적으로 성경을 사용했을 때다. 남을 지적하고 위협하는 무기요 세상살이에 필요한 답을 얻기 위한 수단이며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성경을 사용했을 때 우리는 쇠퇴하고 방황했다. 사도 바울은 제자 디모데가 성경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길 원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성경을 가장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성경의 본래 목적은 까마득히 잊은 채 성경을 이런 식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가톨릭·정교회·자유주의·보수주의·은사주의·그 어디에 속했든) 진정으로 성경적인 기독교인들, 성경의 올바른 목적을 이해한 기독교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그들은 안락한 고향과 고국을 떠나 세상 구석구석까지 찾아가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그들은 몸을 치유하고 마음을 강건하게 해줄 병원과 학교를 지었다.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주면서 자신은 기꺼이 수입의 90퍼센트, 아니 그 이하로 살아갔다. 그들은 인종과 국적, 계급의 장벽을 넘어 모든 사람을 형제요 자매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믿음을 배반하거나 남들을 고통에 빠뜨리느니 스스로 고난을 받는 편을 택했다. 그들은 헨델의 <메시아>에서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과 유럽의 대성당, 셰이커 교도의 주방 의자에 이르기까지 고상하면서도 실용적인 예술을 창조해 냈다. 그들은 교사와 농부·벽돌공·간호사·학자·자동차 정비공·판매원·공무원·과학자·건축업자·택시 운전사·요리사로서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이처럼 그들이 평범한 삶에서 충실히 해낸 일들도 ‘선한 일’에 속한다. 그들이 농장이나 사무실·집·교실·공장 등지에서 한 일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하고 신성한 소명의 엄연한 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성경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해 이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도 복음을 전했다. 물론 그들도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이 내가 성 프란체스코·마더 데레사·빌리 그레이엄·우리 할아버지와 부모님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전통을 따라 성경적인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이유다. --- 「10장_나는 왜 성경주의자인가」 중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길은 출발하기도 전에 철학 조건과 정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심지어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모르더라도(히브리서 11:8에서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모험을 실제로 떠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 그 모험을 떠나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도서관이나 교회당에 앉아서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 먼저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실제 삶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도서관과 교회당을 찾게 된다. 사랑의 모험을 떠나지 않은 사람은 절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아무리 말로 하나님을 정의하고 기술한다 해도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쿇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 「12장_나는 왜 근본주의자이자 칼뱅주의자인가」 중에서

관대한 정통신앙이 이와 같다. 관대한 정통신앙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고 깊은 회개로 나아가 하나님의 온전한 치유를 얻는 것이다. 관대한 정통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좋은 씨앗을 뿌릴 때마다 원수가 잡초의 씨앗을 뿌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잡초를 뽑으면 좋은 식물도 뽑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판단을 보류하고 그저 좋은 씨앗이 자랄 때마다 기뻐하는 것이 관대한 정통신앙의 길이다. --- 「15장_나는 왜 가톨릭교도인가」 중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의 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친구가 되어야 한다. 다른 종교들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적에 맞서는 동지요 다른 유산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 원래 예수님은 율법의 폐지가 아니라 완성을 위해 오셨다. 나는 오늘날 예수님이 (악 말고는) 그 무엇도 파괴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오시지 않는다고 믿는다. 내가 믿는 예수님은 구속하거나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뭐든 구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오신다.
당신의 반문이 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잖아. 다른 종교에는 악이 너무 많잖아.”
맞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종교에도 악이 정말 많다. 그래서 나는 (0장에서 말했듯이) 다른 종교들의 눈에서 티끌을 빼려고 하기 전에 우리 종교의 눈에 박힌 들보부터 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마 13:24~30에 기록된 예수님의 비유를 근거로) 세상 종교들의 가라지를 모두 뽑으려고 하지 말고 우리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좋은 씨앗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말하고 싶다. 곡식과 가라지를 분류하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게 어떤가? 왜냐하면 오직 그분만이 둘을 분간하실 수 있으니까.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이웃을 대접해야 한다. 따라서 다른 종교를 가진 이웃이라도 장점은 인정하고 배울 점은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내 종교의 좋은 점을 제시하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것은 믿음의 타협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의 표현이다.

관대한 정설을 추구하는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자신이 불교도나 이슬람교도 ‘위’가 아닌 ‘아래’ 있는 종이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와 그들은 ‘동등한’ 이웃이요 형제다.
나는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사랑하고 이해할 것이다. 내가 발견한 좋은 것들 중에서 그들이 받아들일 만한 것들을 전해줄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준 선물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세상을 즐기고 그들과 함께 웃고 먹고 일할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서로의 아기를 안아주며 서로의 결혼식에서 춤을 추고 서로의 만찬을 즐길 것이다.
나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의 이웃이 될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면 그들이 내 메시지를 믿기는커녕 존중할 이유도 없다고 ‘우리 주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지속적인 대화 가운데 나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의 영으로 변화되기를 원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고 세상에 더 많은 복을 전해주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추구할 뿐 강제로 세울 생각은 없다.) --- 「17장_나는 왜 성육신적 전도자인가」 중에서

앞 장에서 말했듯이 예수님은 기독교 종교를 포함해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러 오시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다. 나는 분명 그렇게 믿는다. 물론 기독교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독교는 분명히 필요하며 여러 모로 유익한 점이 많다. 나는 기독교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으며, 나 역시 기독교 안에 있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기독교 종교’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다. 이것이 하나님의 꿈이며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바람이요 소원이다. 이것은 사랑하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꿈과도 같다. --- 「18장_나는 왜 낙심했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가」 중에서

관대한 정통신앙의 길을 걷는 것은 마침내 진리를 완벽히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윤리)의 공동체 안에서 진리(교리)를 찾아 선교(맥클렌돈의 표현을 빌리자면, 증거)의 길을 걷는 것이다. 우리를 이 모험의 길로 보내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가 진리를 완벽히 얻었는가? 물론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진리를 찾고 있다. 우리가 전진할 의욕을 잃지 않도록 늘 충분한 진리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이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통이다. 보고 찾는 과정, 사는 과정, 생각하고 사랑하고 배우는 과정, 진리 곧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에 점점 더 근접해 가는 과정이 바로 정통이다.
‘최종 결론’을 얻고자 이 책을 폈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나의 정통신앙은 매우 실망스러울 것이다. 옳은 교리의 목록이 아니라 ‘생각’이나 ‘의견’을 찾고자 이 책을 폈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평생에 걸쳐 하나님에 관한 생각과 의견의 범위와 깊이를 더하는 과정이 기쁨이자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통은 단순히 올바른 결론이 아니라, 늘 더 나은 결론을 찾아가는 과정, 곧 올바른 과정을 의미한다. 정통은 옳은 목적지가 아니라 옳은 수단과 태도다. 그것은 옳은 답이 아니라 더 나은 답을 찾기 위해 늘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이런 종류의 정통은 열정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 「20장_나는 왜 끝을 모르는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진정으로 관대한 기독교 정통신앙을 매력적이고도 도발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포스트모던하고 에큐메니컬하고 선교적인 기독교 신앙을 얻고 실천하려는 모든 이에게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한다.
- 존 R. 프랑케 (하트필드 신학교 교수)

지금 이 시대는 풍랑이 이는 바다와 같다. 나는 마르틴 루터에게 16세기 유럽을 꿰뚫어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우리를 위한 망원경이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손에 들려 있다.
- 필리스 티클 (『탐욕 : 우리를 지배하는 7가지 욕망의 심리학』 저자이자 강연자)

절대주의자와 상대주의자 중에 누가 옳은가? 누가 틀렸는가? 브라이언 맥클라렌은 두 관점 외에도 다른 관점들을 인정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좋아할 사람도 있고, 싫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당신의 생각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 로버트 웨버 (『젊은 복음주의자를 말하다』 저자)

브라이언 맥클라렌의 『기독교를 생각한다』는 흔히 올바른 사고를 논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독단성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그리스도 중심의 진정한 신앙을 제시한다.
라이언 베일러 (《소저너스》 웹 에디터)

회원리뷰 (1건) 회원리뷰 이동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2,500원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  모바일 쿠폰의 경우 유효기간(발행 후 1년) 내 등록하지 않은 상품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모바일 쿠폰 등록 후 취소/환불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절판 상태입니다.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