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0년 1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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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14쪽 | 1482g | 160*232*40mm |
ISBN13 | 9788937483288 |
ISBN10 | 8937483289 |
발행일 | 2010년 1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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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914쪽 | 1482g | 160*232*40mm |
ISBN13 | 9788937483288 |
ISBN10 | 8937483289 |
서론 1부 대(大) 열차 충돌 1 제국과 인종 2 오리엔트 특급 3 단층선 4 전쟁의 전염 5 민족의 무덤 2부 제국 국가 6 계획 7 이상한 민족 8 우연히 생긴 제국 9 변호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기 10 유감스러운 평화 3부 살육의 현장 11 번개 같은 진격 12 거울 유리를 통해서 13 살인자와 협력자 14 지옥문 4부 더럽혀진 승리 15 전쟁의 삼투 현상 16 결딴난 도시 에필로그 : 서양의 몰락 부속 : 역사적 관점에서 본 세계 전쟁 자료와 참고문헌 감사의 글 |
이 책은 시기적으로 주로 1914년부터 1945년까지를, 소재로는 인종 학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20세기 전반기에 전세계를 휩쓴 폭력의 배경으로 19세기 말 유럽 제국의 붕괴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말까지 유럽의 주요 국가들의 지배층은 복잡한 친족관계로 서로 얽히고 섥혀 있었다. 그래서 이들 사이에 주요 가족모임이라도 있게 되면 흡사 유럽의 정상회담이라도 열리는 듯했다. 왕족의 혈연관계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유럽 제국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자본과 노동이 ‘세계화’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14년 1차 세계대전과 함께 모든 것이 변해 버렸다.
1차 세계대전은 특히 동유럽에서 다인종 제국과 다인종 사회 집단으로 구성된 구체제를 해체시켜 버렸다. “서로 부딪칠 줄 알면서도 맹렬한 기세로 달리는 기관사들처럼, 유럽 제국들은 1914년 대열차 충돌을 일으켰다. 그 결과 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열 개의 민족 국가가 탄생(p. 287)”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역에서는 민족 국가라는 이상과 다민족 사회라는 현실이 충돌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오래된 왕조 제국의 느슨한 구조에 의해 다양성이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시절은 가 버렸다(p. 263).” 왕가의 느슨한 연결관계에 생긴 균열을 비집고 민족국가가 출현했다.
1차 대전 직후 국가간 경계선이 확정되고 강화되어 감에 따라, 이전까지는 별다른 생각 없이 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던 소수민족들은 새 국가에 복속할 것인지 떠날 것인지 선택을 강요 받았다. 당연하게도 전범국 국민인 독일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패전국 독일은 “두 개의 제국을 잃고, 이제는 일곱 개가 넘는 나라들에 이주민들이 흩어진 데다가 두 공화국으로 나뉘기까지(p. 288)” 했다. 일부 독일인들은 새로 정해진 독일 국경선 안으로 되돌아갔지만 대다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프랑스 국민, 폴란드 국민, 루마니아 국민, 체코슬로바키아 국민 등이 될 것을 강요 받았다. 그러한 강요는 폭력과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독일인에게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모국을 떠나 있던 우크라이나인, 헝가리인 등도 새 국경 속에 갇혔고,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고 싶어하듯이 특히 유대인이 그러했다.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등의 소수인종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더 극단적인 형태로, 즉 인종청소의 형태로 나타났다. 여러 민족이 뒤섞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오던 유럽, 특히 동유럽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민족간 혐오에 휩싸이게 되었다. 유대계 독일 작가 알프레드 되블린이 말했듯이, “오늘날의 국가는 민족의 무덤(p. 289)”이 되었다.
구(舊)제국의 몰락한 자리를 메웠던 민족국가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제국에 휩쓸렸다. 러시아에서는 구(舊)제국을 몰아낸 사회주의혁명이 더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다. 독일은 감당할 수 없는 1차 대전 배상금 때문에라도 다시 제국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독일과 더불어 일본과 이탈리아는 경제적 요구 때문에 제국으로 나아갈 소지가 다분했다.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식량이나 원료가 한정된 상태에 인구 밀도까지 높”았기 때문이다(pp. 400-401). 아직 구(舊)제국의 공백은 다른 것으로 완전히 메워진 것이 아니었다. 잠재된 갈등을 잠재우기엔 아직 더 많은 피가 필요했다. 인종 학살이 재개되었고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될 때까지 전보다 더 큰 규모로 학살이 자행되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인 인종간 폭력은 구(舊)제국의 붕괴 및 민족국가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 모든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저자는 일반화나 인과관계를 구성하는 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지만, 적어도 대량 학살의 시작을 민족의 발흥에서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 지도가 그려지기 위해서 지난 세기 초반의 유럽사는 민족간 갈등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현대 민족국가의 탄생기에 국경선 내 정치적, 인종적 동일성을 위해서 소수민족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폭력이 이루어졌다. 구(舊)제국의 몰락에서부터 오늘날의 크고 작은 민족국가가 자리잡기까지 말이다. 에릭 홉스봄이 1914-1919년을 ‘극단의 시대’라고 부른 것을 염두에 둔 듯, 저자는 여기서 주로 다루는 1914- 1945년을 ‘증오의 세기’(history’s age of hatred, 직역하자면 ‘증오의 역사시대’)라고 부른다. 후에 다른 책에서 퍼거슨은 이러한 증오를 인간의 본성이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부제로까지 붙어 있지만, 본문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니얼 퍼거슨은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유럽의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를 설명한다. 20세기 전반기 내내 여기저기에서 학살이 꾸준히 이어진 탓에 만약 이 책을 영화로 구현한다면 스크린은 내내 피칠갑을 할 것이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붙잡는 것은 인종 학살이라는 소재이다. 그러나 ‘증오’와 그로 인한 학살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태도는 모호하다. 그의 접근법은 휴머니즘도 아니고, 역사변동론도 아니고, 사회사(social history)도 아니며, 정치경제학도 아니고, 민중사관은 더더욱 아니다. 저자의 강조점은 자본주의의 출현도 아니고, 민족국가의 탄생도 아니며, 세계대전 그 자체도 아니다. 홉스봄과 달리 저자는 구조변동에 관심이 없으며, 아마도 역사학자라는 출신적 한계(?) 때문인지 인과관계의 구성이나 일반화에 대한 욕심도 없어 보이며, 본인의 정치적 입장 때문인 듯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때문에 원서의 부제이자 번역본의 큰제목인 ‘증오의 세기’라는 거창한 일반화는 공허해 보이기까지 하다. 저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종 학살을 다루고 있을 뿐인데 이것은 지나친 소재주의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舊)제국의 몰락과 민족국가의 출현, 인종간 충돌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니얼 퍼거슨은 이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흥 부르주아지, 노동자, 농민에 대한 언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식의 접근법도 가능하지 않을까? 부르주아지가 성장하면서 기존의 왕족을 대체할 정치권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들이 좀더 쉽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민족)국가라는 틀 안에서 정치력을 동원하다 보니 배제와 폭력이 발생한 것으로 말이다. 그 속에서 노동자, 농민 등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쉽사리 폭력에 동원되었다고 부르주아지는 민족국가의 틀이 어느 정도 확립되자 자신들의 세력을 더 확장하기 위해 제국으로 나아가는 무리수를 둔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 싶은 것은 저자는 인종간 갈등의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인종의 밈(race meme)이라는 개념을 갖다 썼는데, 이러한 추상적이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념을 전제로 삼는 것은 논지의 뼈대 전체를 취약하게 만든다. 서론에서 저자는 인종의 밈이 경제 활성화와 제국적 야망과 결합되면서 인종적 차이가 정치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본문 전체를 관통하지 못한다. 1차 대전 이후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제국으로 나아간 이유를 설명할 때에만 약간의 유효성을 지닐 뿐이다. 또한 이것이 누구의 ‘경제 활성화와 제국적 야망’인가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자본가? 국가 관료? 아니면 이름없는 대중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이해관계에 따라 인종 폭력에 연루되게 된 것일까?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경제 활성화라는 변수와 인종 갈등이라는 변수가 그저 병렬적으로 나열되고 있을 따름이다. 오히려 본문을 읽다 보면 민족국가의 대폭발을 인종 학살의 직접적인 계기로 보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그렇지만 민족국가의 어떤 측면이 왜 그러한 학살을 가져왔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니얼 퍼거슨의 주장이 좀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자본가의 성장, 구(舊)체제의 모순, 민중의 각성, 민족(인종) 의식의 성장, 민족 이데올로기, 경제적 경쟁,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공백과 대중의 불안심리, 국가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의 변수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종의 밈 같은 증명될 수 없는 요소를 주요 변수로 삼는 것은 설득력도 떨어질 뿐더러 위험부담도 크다.
[덧붙임] 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H.G. Wells의 The War of the Worlds(1898)에서 따왔다. 다만 이 책에서 World에 복수형(s)이 붙지 않는 것은, Wells의 책에서는 우주인과 지구인의 두 세계가 싸웠지만 퍼거슨의 책에서는 유럽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자신들끼리 싸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인종간 갈등을 바라보는 안타까움이 베어 있는 작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우리는 고도로 발달된 과학문명과 안정적인 정치이데올로기의 산실인 민주정(아직도 일부에서는 진행중이고 체득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을 바탕으로 물질적인 기준만으로 보면 풍요로운 21세를 살아가고 있다. 물론 지금 21세기의 이러한 일련의 발전된 모습의 뿌리는 당연히 20세기의 산물임을 논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럼 1900년으로 시작된 지난 세기 20세기는 현재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시기이기도 하고 현재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근원적인 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정작 지난 20세기에 대한 명확한 자리매김을 하는데는 주저할 수 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통계수치와 외관적인 현상으로만 제단할 수 있는 20세기는 제2의 물결이라는 산업화의 물결과 제3의 물결로 불리우는 디지털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류역사상 가장 커다란 변혁을 가져온 세기이다. 그야말로 인류가 탄생하고 진화해온 지난 수십세기를 다 합친 변혁들을 들이대더라로 20세기의 변혁을 제단하기란 그리 녹녹치 않을 정도로 지난 20세기는 인류에게 있어 거대한 변곡점을 가져온 세기라는 점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 과연 이러한 일련의 표현들이 20세기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거의 전 대륙에 걸쳐 자행된 전쟁과 학살이라는 어두운면을 애써 외면한다면 맞는 표현들일 수도 있다.
<증오의 세기>는 보통 사람들의 뇌리속에 잠재되어 있는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의 해석을 거부한 새로운 20세기를 평가하고 있는 저서이다. 우선 책 제목부터가 짙은 회색빛을 감지하게 하는 [증오]라는 단어를 채택하면서 20세기 전반의 색깔을 미리 짐작하게 한다. 저자가 지난 20세기를 증오의 세기로 명명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인류간의 끔직스러운 학살이 난무했던 시기가 바로 우리에게 그토록 부의 폭발을 가졌왔고 거대한 패러다임의 기폭제였던 20세기에 발생했고 이러한 전쟁과 학살은 인류역사상 가장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가장 공개적으로 뻔뻔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증오]라는 단어이외에는 달리 어떠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20세기를 단적으로 증오의 세기로 규정하고 있다.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크고 작은 충돌을 겪으면서 왔다. 씨족이나 부족체간의 전쟁과 학살 나아가 민족의 개념에서 근대국가라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전쟁과 학살은 지금도 진행중에 있다. 저자는 왜 이처럼 인류사와 전쟁은 수레바퀴처럼 함께 진행되어왔는데 전쟁과 학살이 유독 지난 20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모토로 그 상징성을 부여해야 할까라는 점에 의구심을 갖게된다. 로마제국에서 칭기스칸까지, 그리 멀리가지 않더라도 우리의 삼국시대등 인간에게 전쟁은 역사를 퇴보시키기도 하고 발전의 촉매제 역활을 하면서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것이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세기의 전쟁과 학살의 양상은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전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게 된다. 우선 지난 전쟁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의 세계양차대전을 통해 8200만명이라는 인명이 사망을 했다는 점만으로도 그 인적피해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이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규모의 피해는 존재하지 않았을뿐더러 일부민족간의 충돌을 떠나서 세계대전으로 그 대상자가 늘어난 경우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성을 띠고 있다는 측면에서 분명 지난 세월의 충돌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전쟁당사자인 군인들의 피해보다 민간인들의 피해가 더 컸다는 점 그리고 오히려 민간인의 피해를 조직적으로 조장하고 실행했다는 점에서 인류사를 통틀어 지난 20세기에 발생했던 전쟁들의 참혹성은 그 어떠한 세기보다 컸다는 점이다. 이는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살상무기의 집적화와 고도화로 인한 살상의 용이성이 증대한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몇가지의 숨겨진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저자가 주목하는 바이다. 저자는 20세기 전쟁의 원인을 근대민족국가의 출현, 경제변동성(호황/위기), 호전적 종교간의 갈등, 인종/민족 대립, 제국의 쇠퇴에 주목하면서 각 원인별로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동기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생활공간'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동원하여 전쟁의 조짐에서 확산에 이르기까지의 양상을 설명하고 있으며 경제적 변동성은 파시즘등의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낳고 이는 곧 전쟁으로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20세기의 전쟁을 크게 두 부분으로 규명하고 있다. 저자의 표현를 빌리자면 50년 세계전쟁과 제3세계 전쟁으로 규명된다. 1904년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쟁으로 끝맺는 1953년까지를 50년 세계전쟁으로 그리고 이후 발생하는 국지전의 양상을 띤 전쟁들을 제3세계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세계2차대전의 발발시점을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시점은 극히 유럽적인 시각이고 실질적인 시점은 1937년 7월 7일 일본 중국을 침공했던 시점을 그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번 저서에는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의 비리, 케인스의 2차대전 발발 예측,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반지의 제왕]의 탄생배경등 읽을거리 또한 소소하게 보이고 있다. 특히 한반도와 관련하여 일본종군위안군과 징집병문제에 대해선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으나 제3자의 시각이 어떠한가에 대한 냉철한 판단을 필요케 한다.
<증오의 세기>는 최대 1억8000만명의 묵숨을 앗아간 지난 20세기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아메리카등 사망자 수 만큼이나 광범위 하게 지구 전 대륙에서 자행되었던 정규군을 포함한 비정규군과 민간인들이 자행하는 학살의 배경에 무엇이 있었으며 과연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정당했는가에 대한 냉철한 의견을 제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케 한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억울하게 아니 왜 죽어가야하는 이유조차 모르고 죽어간 이들의 주검을 발판으로 또 다른 세기를 맞이하여 살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에겐 지난 세기 굴곡의 역사적 산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혁명적인 산업화와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문명의 이기로 인해 인류 역사상 그 어느때 보다 많은 풍요로운 해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면엔 지난 세기 왜곡된 이데올로기와 비뚤어진 우생학이 낳은 전쟁과 인종학살로 인한 상처 역시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20세기는 어쩌면 화려하고 눈부신 발전만을 기억하고 싶어하는 인자가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항상 전쟁과 학살로 인한 상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종보다 빨리 잊어버리는게 바로 인간이라는 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류는 전쟁과 학살을 되풀이 하면서 진화해왔을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전쟁과 학살은 아마도 없어지지 않을 지도 모르는 등식과도 같은 존재로 남을지도 모르고 발달된 과학기술로 인해 그런 가능성이 갈수록 더 높아질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들이 어쩌면 인류에게 새로운 해답을 제시할 수 도 있다는 역논리가 강하게 대두될 시점으로 보인다. 금세기에 다시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더 이상 인류에게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공감대와 더불어 이제는 전쟁과 학살의 기억들이 새로운 인류발전의 기폭제로서 상기되어야 하고 반성하면서 상호 모색의 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분쟁으로 인한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어쩌면 20세기의 한축이었던 제3세계 전쟁의 연장선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겐 공존과 상생의 길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에 지금 이 시각에도 분쟁으로 인한 전쟁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하지만 금번세기는 뭔가는 달라져야 한단는 절박한 시기에 와닿아 있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수 도 없고 물러나서도 안되는 지점으로 가고 있다. 공존과 상생의 길은 상호 존중이라는 아주 작은 실천에서 시작하고 작은 실천이 모여서 증오의 시대를 마감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914페이지의 무거운 책!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게 된 책!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발생 과정을 알게 된 책!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해 알려 준 책!
영국, 프랑스, 독일, 소련, 일본, 그리고 미국에 대해 알게 된 책!
한국 전쟁이 일어난 과정과 이유를 알려준 책!
제 3차 대전에 대해 언급해 준 책!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알려준 책!
이 외에도 이 책에서 더 많은 지식과 세계를 보는 다른 관점을 알려준다.
니얼 퍼거든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 해 주는 듯했다.
세계사에 대해 아는 것 없이 읽게 되었지만
840페이지까지 다 읽고 난 뒤 터질 듯한 앎과 두려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