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사로 문학을 가르치면서 마음 한켠에는 늘 아쉬움이 남았다. 대학 입시를 위해서 가르치는 문학은 언제나 반쪽짜리였다. 아이들에게 오히려 문학을 읽는 즐거움, 사고하는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은 아닐지 늘 염려스러웠다. 인간의 본능인 언어를 인위적으로 규정화하여 천편일률적이게 가르치며 느낌과 감상의 능력을 말소하는 교육이 아쉬웠다. 삶과 이어지지 못하는 국어 공부, 답을 맞히기 위한 국어 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문학은 삶이다. 문학을 가르치거나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과 문학의 수많은 접합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고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수업시간에 하지 못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적었다. 이 책은 시인의 목소리로 고백하는 나의 삶이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어린 나에게 언니는 손자에게 오디 열매를 따 주던 시 속의 할머니 같은 존재였는지 모른다. 옥상에서 쳐다보던 큰 바위 얼굴 같던 산봉우리와 하얀 빨래가 널려 있던 옥상, 반질거리던 장이 놓인 방은 어린 나에게 ‘외할머니의 툇마루’였는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손때가 묻어서 반질거리던 시 속 공간인 툇마루는 언니가 매일 닦던 장과 닮았다. 어린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언니와 함께 있는 순간에는 어머니의 꾸지람은 따라오지 않았다. 늘 화를 내던 아버지도 고함소리로 들려오지 않았다. 호기심과 동심만이 낭낭하던 곳이었다. ---「제1장 당신을 만나고 싶은 날」중에서
어머니는 어느 순간이건 강했다. 재수하던 오빠가 정신병이 걸려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에 와 있는 동안, 어머니는 오빠를 데리고 억척스럽게 살았다. 오빠는 증세가 악화되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발작을 했다. 칼을 빼들고 달려들었기 때문에 부엌에 있는 칼이란 칼은 모조리 숨겨야 했다. 오빠를 말리다가 수없이 발길에 채이면서도 어머니는 결코 오빠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오빠는 정신이 들면 어머니에게 아기처럼 기댔다. 병든 오빠를 20년간 살게 한 힘은 어머니로부터 나왔다.
어머니는 오빠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온 날 어김없이 울었고, 오빠가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 날에는 어김없이 몽둥이며 칼이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숨겼다. 오빠는 어머니에게 너무나 가혹했던 크나큰 혹이었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에게 오빠는 40세에 허무하게 죽을 때까지도 여전히 잘생긴 큰아들, 똑똑하던 큰아들, 자신을 끔찍이 위했던 가장 귀한 큰아들이었다.
오빠를 화장하던 날 흰 눈처럼 무너져 내리던 어머니.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제1장 당신을 만나고 싶은 날」중에서
그 후 3학년에 올라가서도 현민이는 늘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은 여전히 하위권이었다. 수능을 치른 뒤에 한번 찾아왔는데 재수할 거라는 말을 했다. 머리가 좋지 않은 것 같고, 집안 형편도 아는 터라 재수하지 말라고 만류하고 싶었지만 “너는 언제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재수하면 잘 할 수 있을 거다.”고 격려를 하였다.
일 년 후 현민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지방 국립대 일어교육과에 합격을 했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때문에 시간 내기가 힘들어 찾아 가질 못하나 조만간 찾아뵙겠노라 했다. 현민이의 성적을 알고 있었던 나는 국립대 일어교육과에 갔다는 말을 듣고는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믿기지 않았다.
해마다 정초에 안부 문자를 잊지 않고 보내던 현민이는 군에 가기 전에 인사한다며 찾아왔다. 많이 의젓해졌고, 여자친구도 있다 했다. 제대 후 대학교에서 주는 학비로 일본에 유학도 갈 거라고 했다. 현민이가 가기 전에 한 말.
“선생님 그때 선생님이 저한테 한 말 기억나세요? 저더러 부반장 중 최고라 했잖아요? 그 말 때문에 저는 포기하지 않게 됐어요.” ---「제2장 커피 향 가득한 날」중에서
땅끝은 누구에게나 아픔임에 틀림없다. 찾아 나선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수시로 파도가 달려드는 땅끝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그 위태로움에 홀로 서 있다 보면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내 삶의 기반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숨 쉬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신의 축복이며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온 뒤 파랗게 갠 하늘,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며 넘어가는 해,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 신이 내게 허락한 선물들이다.
땅끝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땅끝이 지나가고 난 뒤 내게 남게 될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자.
그곳에서 발견한 조약돌 하나가 두고두고 살아갈 힘이 될 터이니까 말이다. ---「제2장 커피 향 가득한 날」중에서
사람에 따라서는 ‘상처적 체질’이 아니어서 훌훌 잘도 털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더라도 아니면 자신이 털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알게 모르게 타인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마음 속 깊이 딱지처럼 앉고, 또 그 위에 앉고 하는 것이 아닐까. 더더군다나 ‘상처적 체질’인 나로서는 교사로서, 부모로서, 아니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헤어날 수 없는 상처를 매일 받으며 살아가는 쪽이다. 이름을 부를 수도 없는 상처들로 인해서 매일 다치면서 상처의 거듭된 폐허를 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에서의 상처들이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고, 그 상처들이 나를 아프게 하였지만 또한 나를 깊게 하고 넓게 하였음을 인정한다. 마치 찬란한 채찍처럼 말이다. ---「제2장 커피 향 가득한 날」중에서
잘 하는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아들이지만 음악이 주는 감동을 알아간다면, 상쾌한 아침의 나뭇잎 새로 비치는 햇빛의 부드러움, 비가 그친 뒤의 뜨락에서 풍겨나는 치자나무 향기의 부드러움을 음악 속에서 만난다면, 노력과 땀으로 이룬 화음의 성취감 속에서 꿈을 꿀 수가 있다면…….
북한 김정은도 겁나서 못 쳐들어온다는 대한민국의 무서운 중2지만,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아들이,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좋다!’ ---「제3장 가슴 뛰는 날」중에서
나는 시인이 ‘참 좋은 말’에 대한 시를 쓴 것에 감사를 한다. 독이 될 수 있는 말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보니 의식적으로라도 좋은 말에 대한 글을 더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매일 좋은 말을 구호처럼 외쳐야 할 일이다. 온갖 독설과 거친 말에 익숙해 있는 혀에 재갈을 물려야 할 것이다.행복과 위로를 주는 말, 용기를 주고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 이 세상에는 독설과 저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참 좋은 말’이 훨씬 더 많다. ---「제3장 가슴 뛰는 날」중에서
‘지금, 나는 당신이 너무 그립습니다. 나는 당신이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오늘도 그러하고, 어제도 그러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먼 후일 당신을 잊을 날이 오겠지요?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먼먼 후일입니다. 지금은 못 잊어서 너무 아프답니다.’
이렇게 설명을 해도 이 시가 왜 슬픈지 잘 모르겠다는 아이들과 시 패러디 쓰기를 해 보았다.
먼 후일 당신이 찾으시면 / 그때에 내 말이 대학 갔습니다.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 실컷 자다가 대학 갔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 게임하다 지쳐 대학 갔습니다.
올해도 작년에도 아니 가고 / 먼 후일 삼수해서 대학 갔습니다.
말이 안 되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의 시가 나름 진솔하지 않은가. 지금 못 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하는, 또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써 보자고 하니 이런 반응들이 나온다. 지금 고등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이 잘 나타난다.
---「제3장 가슴 뛰는 날」중에서
아이는 계속 떠나가고 부모는 기다리고 맞이하고 또 떠나보내는 일을 반복한다. 떠나가고 찾아오는 길 위에서 흘러가는 게 삶인 것 같다. 열정적으로 떠나가는 순간이 있다면 언젠가는 힘들고 지쳐서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날도 있을 것이다. 비록 며칠 못 머물고 또다시 떠나가야 하지만, 한 번씩 고향으로 찾아가 고향의 힘을 공급 받아야 다시 타향에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법이다. 돌아오는 길과 떠나는 길을 누구나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우리는 살고 있다.
떠나는 길 위에 선 내 제자들의 모습, 한편으로 섣달 그믐날 눈 내리는 밤에 막차를 기다리는 시 속의 사람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힘차게 떠나갔지만 언젠가는 지친 몸을 안고 돌아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인생은 길 위에 있고, 그 길 위에서 때로는 쓸쓸함과 낯섦, 말 못 할 침묵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
막차를 기다리는 심정을 아이들은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떠나가는 아이들이 대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뒷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제4장 눈물 흐르는 날」중에서
존재의 이유. 이 세상에서 저들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천에서피고 흔들리는 풀무더기 속에 핀 꽃들은 여리고 아름답고 안타깝다. 꽃들이 남긴 여운은 질기게 가지를 뻗어 살아있는 자들을 휘감는다. 내 나이가 먹을수록 기억 속의 그들은 현재의 나에 비해서 너무 어린 존재들이 돼 간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직업이 선생이라서 나는 오늘도 수많은 오빠와 세월호의 아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속에 내 오빠가 있고, 세월호의 아이들이 있다. 선생으로 살아가기가 버거운 까닭이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제4장 눈물 흐르는 날」중에서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 서민들이 향유했던 문학이다. 예나 지금이나 민초들의 삶은 한숨과 시름이 가실 날이 없다. 오죽 답답하면 가슴에 창을 내고 싶다고 할까. 임이 보고 싶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날에 마음의 창문을 열어젖히고 싶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한숨, 어떻게 해서라도 한숨이 못 오게 막고 싶다. 문이란 문은 쇠 자물쇠로 꼭꼭 채워 걸어 잠그고, 병풍, 족자까지 다 동원해서 방어막을 친다. 한숨이라는 놈은 나의 이 노력을 비웃기라도 한 듯이 어느 틈에선가 스며든다. 잠 못 드는 번뇌의 밤이 길기만 하다.
두 편의 시조 모두 마음이 답답한 사람들의 노래이다. 하지만 여유가 있다. 시를 읽고 있으면 빙그레 웃음이 난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조적 자세에서 지혜가 묻어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설정한 발상이 기발하다. 고통스러운 가슴에 구멍을 뚫었으면 하는 생각, 한숨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최선의 방어막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기발함과 가상함 속에 여유가 있다. ---「제5장 문득 달리고 싶은 날」중에서
1학년 때 눈 똥그랗게 뜨고 선생님 시선을 피해서 재잘대던 아이들이 이제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음지에서 피어오른 꽃들처럼 지친 표정들이다.
힘들 때 내밀던 누군가의 손수건 한 장, 그 온기와 사랑 속에서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도 그 외로움에서 비켜서지 않는 법을 배운 대견한 아이들이다. 그들이 서로에게 받은 위로와 사랑이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기를 바란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들. 무수한 가락을 흐르며 만든 아이들의 노래가 다순 화음으로 어울려서 그들이 가는 길에 등불이 되기를 기도한다. ---「제5장 문득 달리고 싶은 날」중에서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교사로 살아가는 나의 평범한 일상이 한 순간에 엄청난 비극의 현장으로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생으로서 나의 역할에 대해 수없이 자문을 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더없이 귀한 존재로 다가왔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이 마지막까지 내가 보듬어야 할 귀중한 존재였다. 모두가 귀중한 생명이고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이었다.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나의 가족, 동료, 이웃들 모두 나와 함께 가는 소중한 이들이었다. 크고 화려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범한 존재들이지만 그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에는 의미 없이 지나칠 사연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상념들이 글을 쓰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마치는 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