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씨빠끼라(Zipaquira)라는 마을. 예전부터 이곳은 소금을 채취할 수 있는 거대한 광산이었는데, 일년 내내 소금을 캐내느라 어두운 지하에서만 생활하던 광부들은 오랜 시간동안 조금씩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땅 속 깊숙한 곳에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완성한 소금성당이다.
난 적어도 아직까지는 무신론자다. 하지만 가끔씩 신앙의 위대한 힘에 경탄을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신의 믿을 수 없는 기적의 힘이 아니라, 신을 절실하게 믿는 믿음의 힘. 그것은 태초에 인류가 생긴 이래 언제나 그 역사와 함께 해왔다. 비록 전쟁, 변질, 타락, 탄압 같은 부정적인 면이 있을지라도 수많은 유적과 종교 건축물들을 비롯,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볼 수 있듯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엄청난 힘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 힘은 오롯이 어떠한 대상을 향한 믿음의 힘이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가이드와 함께 소금광산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기 시작한다. 같이 동행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영어가이드의 설명은 너무 빨라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야만 했다. 4개월 전 비행기에서 흘러나오는 영어 안내방송을 단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던 천둥벌거숭이 같았던 조영광이, 지금은 콜롬비아 땅에서 통역을 한단다. 물론 아직도 절반정도 밖에 안 들린다. 한참 가이드가 떠들어 대고 난 후 대충 몇 개 단어만 듣고, 그걸 또 내 나름대로 정리해서 친구들한테 전하니 점점 양이 줄어들 수밖에. 친구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뒤통수에 따갑게 꽂히는 게 느껴지지만, 난 천연덕스럽게도 「나홀로 집에」에 나오는 꼬마 주인공 같은 표정으로 유창하게 잘도 지어낸다.
"이 소금성당은 100% 소금으로 지어졌습니다. 벽을 핥아보세요! 진짜 소금맛이 날테니깐요! 하하하~"
진짜로 핥아봤다.
다른 사람들은 소심하게도 손가락으로 벽을 조금씩 찍어 맛보는 정도지만 난 과감하게도 구석에다가 머리 처박고 할짝할짝 혀로 열심히 핥았다. 너무나 짜릿한 짠맛으로 머리가 빙글빙글 돌 정도였지만 어디서 이런 진귀한 구경을 하겠는가 싶어서 핥고 또 핥았다. 한참 그렇게 하고 있는데 아차 싶다. 이 성당에 와본 사람들이 한두 명이겠는가? 이름난 관광지답게 한해만도 수백만 명이 다녀갈 텐데 오는 사람들 모두 한두 번씩은 손가락으로 문질러보지 않았겠나? 가이드 안 보게 침 퉤퉤 뱉고 똥 씹은 표정으로 길을 재촉할 뿐이다.
--- '씨빠끼라 소금성당에서 엉터리 통역을 하다' 중에서
국립공원 내에서는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절대로 차에서 내려서는 안 되고, 총기류 휴대 금지, 먹이를 주는 행위 금지, 주변에 동물이 있을 경우 절대 정숙 유지 등의 몇 가지 규칙들이 엄격하게 요구되고 있다.
솔직히 아프리카에 오기 전까진 '사파리' 하면 광활한 대지 위에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는 수만 가지 야생동물들 사이로 지프차를 타고 흙먼지를 휘날리며 질주하는 모습만을 상상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아프리카 나름대로의 규칙이 존재하고 있고, 동물들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에코 투어리즘(Ecotourism)'이라고 하여 아프리카 생태관리 시스템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정신으로서, 자연을 파괴하거나 훼손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관광지화 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말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에코 투어리즘이야말로 하루라도 빨리 우리나라의 동물원들이 배우고 받아들여야만 하는 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에토샤에는 정말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 멋진 무늬를 자랑하며 떼를 지어 다니는 얼룩말(Zebra) 무리들은 처음 봤을 때는 무지 신기했지만, 그 개체수가 워낙 많았기에 나중에는 "에이~ 또 얼룩말이네!"하면서 그냥 무시해 버릴 정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얼룩말들을 "사자 밥"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그 외, 커다란 코끼리 가족들과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기린들, 폴짝폴짝 잘도 뛰어다니는 스프링복, 긴 뿔을 자랑하는 오릭스, 진짜 야수처럼 생긴 와일드 비스트와 수많은 이름 모를 새들까지, 내 눈에 비친 사파리의 모습은 치열한 생존경쟁의 틈바구니가 아닌 지극히 평화로운 모습 그 자체였다. 물론 조금은 잔인한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이미 사냥을 마친 암사자 한 마리가 배부르게 뜯어먹고 난 얼룩말 사체 옆에서 늘어지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 주위로 몇 마리의 쟈칼들이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여간해선 사자가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 제법 인상적이다.
--- '에토샤 샤파리, 얼룩말은 신기한 축에도 못 낀다' 중에서
이렇게 선발된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는 약 14세까지 살아있는 신으로서 떠받들어지게 된다. 매년 한 번씩 네팔의 국왕이 직접 쿠마리를 찾아와 큰절을 올린다고 하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심지어 신은 절대로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해서 잠깐 어딘가로 이동할 때조차 남자 가족 중의 한사람이 정성껏 안아서 이동한다고 하니 말 다 했다. 하지만 이후 여신의 자리에서 쫓겨난 쿠마리는 그녀와 결혼한 남자를 일찍 죽게 만든다는 속설 탓에, 평생토록 천대를 받으며 결국 매춘 굴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현실이란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네팔에서는 오로지 자신들의 부와 영광을 위해 딸을 쿠마리로 만들려는 수많은 가족들의 안타까운 노력들이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고 한다.
쿠마리는 일 년 내내 더르바르 광장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집 안에서 삼엄한 경계 속에 보호받으며 지내게 되는데, 일 년에 딱 여섯 번(!)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끄는 커다란 가마에 태워져 불과 몇 시간 동안 이리저리 골목을 돌아다니는 게 전부이지만,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 탓에 더르바르 광장 주변은 일시적으로 마비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그 쿠마리가 밖에 나오는 올해의 마지막 여섯 번째 날이란다! 이 정도면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 알겠지?
아침부터 카트만두는 도시 전체가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들썩들썩 거리는 것이 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오후 5시경에 쿠마리가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낮 2시부터 명당을 차지하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건만, 그녀는 도통 코빼기를 내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결국 5시간 반을 꼬박 기다린 끝에 사람들의 엄청난 함성과 함께 등장한 쿠마리! 화장을 떡칠해놔서 그런지 작디작은 꼬마임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봐도 왠지 모를 기품 있는 표정과 함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마저 엿보였다.
---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를 만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