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내 몸을 더듬었다. 왼쪽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다리치곤 너무 짧은 살덩이가 나무 뿌다구니처럼 툭 달려 있고, 그 끝에 콩알 같은 발가락이 톡, 톡, 톡 세 개가 나 있을 뿐이었다. 오른쪽 다리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 pp.33-34, 「태어난 순간, 가족」 중에서
“엄마……, 왜 나는 팔과 다리가 없어?” 나는 책상 아래에 웅크리고 앉아 반입속말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엄마는 이 장면을 수없이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연습했는데도 너무 급작스레 당하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하튼 추호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이 엄마의 머릿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니. 엄마는 아무 상관없다고 보는데? 아미는 손이랑 발이 없어도 남은 한쪽 발로 못하는 게 없잖아. 그리고 건강하고 착한 아이고 말이야.”
엄마는 짐짓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준비해둔 말은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지금 나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다만 그때 ‘내 손과 발에 대해 어른에게 물으면 그 사람이 난처해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 일이 있은 뒤 나는 내 몸에 대해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묻지 않았다. --- pp.61-62, 「왜 나는 팔과 다리가 없어?」 중에서
머리를 요리조리 돌리면서 밀어붙여 옷 속으로 겨우 들이밀자, 이번에는 머리가 전부 나오기 전에 걸이에서 끈이 벗겨졌다. 나는 옷을 뒤집어쓴 채 계속 허우적거려야 했다.
당시에는 딱히 훈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단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었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신선한 체험이 즐거웠을 따름이다. 무엇보다도 이전까지 못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엄마가 환한 얼굴로 칭찬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가슴이 뿌듯했다. --- pp.71-74, 「엄마의 특별훈련」 중에서
의수는 무게가 2킬로그램이나 나가기 때문에 의수를 단 채 글씨를 예쁘게 쓰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괴발개발이었던 글씨가 마침내 네모 칸 안에 가지런히 들어가게 되었다.
“요것 봐요, 선생님. 잘 썼죠!”
갈수록 솜씨가 늘자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글씨 연습을 했다. 여하튼 무엇이든지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그만두지 않았다. 지는 것이 정말 싫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해나가는 동안 어느새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명랑한 성격이 생겼다. --- pp.77-80, 「토끼 발과 돼지꼬리」 중에서
나는 도깨비가 아냐. 나는 도깨비가 아냐. 나는 도깨비가 아냐!
지금까지 가슴 아픈 경험을 숱하게 했지만 그중에서도 “저 아이, 너무 불쌍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슬펐다. 나는 절대로 불쌍한 아이가 아닌데 말이다. --- pp.87-89, 「도깨비가 왔다!」 중에서
다람쥐 반 아이들이 놀이방에서 바구니 공 넣기를 하고 있을 때 아미가 왔었죠. 아미는 왼발로 능숙하게 공을 붙잡아 바구니 속에 넣으려고 했지요. 그런데 잘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은 전혀 도와주지 않고 그저 “아미는 할 수 있지.” 하며 응원해줄 따름이었습니다.
결국 아미는 어머님 말씀대로 공을 바구니에 멋지게 넣더군요. 이 첫 만남은 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던 쓸데없는 감정을 말끔히 사라지게 했습니다. 장애를 지닌 아미에 대한 동정심 같은 감정들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순간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 p.98,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중에서
드디어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세일러복 칼라가 달린 감색 원피스를 꿰어 입고, 노란 모자를 쓰고 란도셀을 등에 메었다. 의족을 했으니 언뜻 보면 평범한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우뚝 서 있었고 왠지 언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 p.100, 「초등학교 입학 성공!」 중에서
어느 추운 겨울날 아침, 전교생이 다 함께 운동장을 뛰었다. 나는 엉덩이를 질질 끌며 이동하는 아미식으로 쭉쭉 달려갔다. 곳곳에 서릿발이 서고 땅바닥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차가운 한기가 운동복을 뚫고 엉덩이 깊숙이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동무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었을 뿐이었다. 모두와 함께 뛰자 저절로 신바람이 났다. --- p.106, 「일본 최고의 모녀」 중에서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하다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되는 법이다. 몸이 유별난 만큼 공부만이라도 다른 아이들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활기차고 적극적인 아이’와 ‘교만하고 기가 센 아이’는 사실 늘 종이 한 장 차이뒿다. 나는 그 경계선을 넘나들며 학교생활을 보냈다. --- p.126, 「끊임없는 도전」 중에서
용기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 사실을 난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친구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타인의 입장을 살피게 되면서, 고민을 안고 있는 친구들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유일한 구원의 빛이었다. --- pp.136-137, 「소심해진 마음」 중에서
드디어 마지막 율동이다. 이 무대의 마지막 순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내 순서를 기다렸다.
만면에 빛나는 웃음을 띠며 약동하는 동료들의 몸. 그들의 몸이 하늘을 난다. 3년 동안 함께 땀 흘려온 동료들의 박진감 넘치는 연기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이런 멋진 동료들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다! 모두와 함께 춤을 출 수 있다! 내가……. 이런 내가……. 가슴이 뜨거워져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 들었던 음악의 마지막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다. --- pp.175-176, 「최고의 동료들」 중에서
어렵게 용기를 내어 들어간 치어리딩부.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치어리더’라는 말 속에는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치어리더의 정신’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웃음, 밝음, 활기, 배려, 책임감, 예의 등 치어리더가 본래부터 지녀야 하는 정신을 말한다. 직접 치어리딩부에 뛰어들어 치어리더의 정신을 몸으로 느꼈을 때, 그것이야말로 치어리딩의 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신은 나에게 손과 발을 선물해주지 않았다. 그 대신 치어리더의 정신을 선사해주었다.
인간은 누구나 역할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신에게서 받은 치어리더의 정신을, 그리고 웃음 띤 얼굴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자. 그것이 틀림없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일 테니까.
삶에 절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록 내게는 손이 없지만 내 마음의 손을 내밀어주고 싶다. 비록 내게는 발이 없지만 제일 먼저 달려가 곁에 있어주고 싶다.
장애가 있다고 해서 특별히 강해질 필요는 없다. 단지 누구에게라도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모두의 발밑을 밝게 비쳐주는 햇살 같은 웃음으로.
그래도 단 하나 신께서 내 소원을 들어준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그의 체온을 느끼고 싶다.
바싹 다가가 내 발로 나란히 걸어가고 싶다. 단지 그뿐이다.
만약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떠올리기 바란다. 손과 발이 없어도 밝고 활기찬 치어리더가 있다는 사실을.
--- pp.185-186, 「치어리더, 손과 발 대신 받은 선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