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공간은 현실적인 기능은 조금도 없는, 병원과 처음 조우한 손님들에게 잊을 수 없는 시각적 체험을 주기 위해 마련된 백일몽 같은 공간이었다. 이 아름다운 공간을 거쳐 상담실장을 만나 계약까지 간 이들이 계약 내용을 실행에 옮기고 난 뒤 마주치게 될 실제, 즉 붓고 멍든 얼굴, 엄청난 통증, 부작용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미심쩍은 증상들과는 너무나 다른, 그러니까 미래에 있을 고난의 행군에 미리 뿌리는 성유와도 같은 공간이었던 것이다. --- p.36~37
조성환은 여자의 가슴을 멀리서 지켜보더니 가까이 다가와 가슴을 한쪽씩 양손으로 감싸 쥐고 조이듯 압박했다. 그러곤 다시 몇 걸음 물러나 지켜보았다. 형태나 위치가 잘 잡혔는지 보기 위해 최종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거 다음에 또 뭐 잡혀 있지 않아” 수술이 끝났음을 알고 긴장이 풀린 간호사들이 귀엣말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 건 연속이야. 쌍꺼풀하고 턱.” --- p.222
그대로 있으면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게 될 것 같았다. 극한의 추위에 몸을 내맡기면, 정처 없이 쏘다니면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낯선 곳을 싸돌아다니다 오면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상태가 되어 있을 거라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손발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극심한 추위에도, 알 수 없는 아파트 단지 상가의 낯선 아침 풍경에도, 영상은 그치지 않고 상영되었다. 본능에 압도당해 신음을 내지르며 몸을 떨던 남자, 남자를 받아들이며 억지로 기쁨을 연출해 내던 여자의 몸. 못난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