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야흐로 21세기 초. 즉 내가 쓴 이 글 대부분을 읽는 존재는 '비인간(nonpersons)', 다시 말해 오토마톤(automatons)이나, 더 이상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무감각한 군중이라는 뜻이다. 내 글은, 세계 어딘가 멀리 떨어진, 종종 비밀스러운 장소에 있는 산업적 클라우드 컴퓨팅 센터에서 원자 단위로 세분화된 검색엔진의 키워드로 변모할 것이다. 또한 내가 쓴 몇몇 단어나 표현의 조각과 우연히 공명하는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광고를 보내도록 설계된 알고리즘에 의해 수백만 번 복제될 것이다. 재빠르지만 엉성한 독자들로 이루어진 군중에 의해 대충 읽히고, 재탕 되고, 잘못 전해져 위키(Wiki)에 올라가고, 자동 수집되는 무선 텍스트 메시지의 흐름에 뒤섞일 것이다.
내 글에 대한 반응은 점점 더 타락해 익명의 모욕적 언사와 거친 논란들로 굴비처럼 엮인 사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알고리즘은 내 글을 읽은 이들과, 그들의 구매 양식, 낭만적 성향, 그들이 진 빚,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들의 유전자 간의 상관관계까지 찾아낼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 글은 클라우드 컴퓨팅의 맹주임을 자임하는 몇몇 기업의 자산 축적에 기여할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확장되고 변모하는 내 글의 운명은, 거의 전적으로, 오직 정보만으로 가득 찬 무생명의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내 글을 진짜 사람이 읽는 경우는 여기서 극소수에 불과할 게다.
그럼에도 내가 내 글로 닿기를 희망하는 대상은 바로 여러분, 내 독자들 중 극소수에 불과한 그 '사람'이다.
이 책은 사람을 위해 쓴 것이지 컴퓨터를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이 말을 하고 싶다. 무엇인가를 공유하기 전에, 당신은 당신만의 독립적 사고와 의지를 가진 진짜 '사람'이어야 한다고.---저자 서문 중에서
You are not a gadget. 당신은 도구가 아니다.
재런 레이니어의 선언은 도발적이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한 말 같은데도 그 느낌이 사뭇 다르고 새삼스럽게 들린다. 그 이유 중에는 '디지털 기기'라고 번역한 영어 원문이 '툴(tool)'이 아니라 '가젯(gadget)'이라는 점도 포함될 것이다. 가젯은 툴보다 그 가리키는 범위가 훨씬 더 협소하고 구체적일 뿐 아니라 시사적 연관성도 더 강하다. 가젯은 '신기하고 기발한 소형 기계장치나 도구, 부속'을 가리킨다. 스마트폰,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전자책 리더 등이 모두 '가젯', 즉 통칭하여 디지털 기기다. 요즘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디지털 기기가 쏟아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 관심을 보이고 열광하는지 떠올린다면, 우리는 실로 디지털 기기의 사회, 디지털 기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혹시 우리 자신이 그 디지털 기기의 일부가 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혹시 우리가 디지털 기기의 종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레이니어는 이런 의문이 한낱 실없는 기우에 불과한 것이 아님을 다양한 차원과 각도에서 설명하고 경고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진화, 온라인 익명성의 빛과 그늘, 디지털 문화에 대한 무비판적 신봉과 그 위험성, 흔히 '웹 2.0'으로 뭉뚱그려지는 소셜미디어와 소셜네트워킹의 본색, 클라우드 컴퓨팅이 가져온 '집단적 사고(hive mind)' 의 반인간적 속성 등을 레이니어는 여러 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요즘의 유행어 중 하나인 '집단 지성', 혹은 '군중의 지혜'에 대해서도, 그 개념의 적실성은 인정하는 한편, 그에 대한 지나친 열광이 인간의 개인적 창의성, 더 나아가 인간성을 컴퓨팅의 하위 개념으로 격하시키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처럼 컴퓨터와 디지털 문화의 진보성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사람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는 논리를 레이니어는 '인공두뇌적 전체주의(Cybernetic Totalism)'라고 부른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로 대표되는 웹 2.0이 겉으로는 '열린 문화(Open Culture)'를 외치지만 실상은 인간의 개별적 창의성과 독립적 사고를 클라우드 컴퓨팅의 집합적, 전체주의적 문화에 봉사하는 일개 벌의 무뇌적 봉사로 위축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정보는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 (Information wants to be free)라는 말에 대한 비판에서도 레이니어의 우려는 잘 드러난다. "정보는 자유로워질 만한 자격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인공두뇌적 전체주의자들은 정보가 마치 살아 있고, 그 나름의 사상과 야심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정보가 생명이 없는 것이라면 어떡할 텐가? 아니, 생명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생각의 단순한 부산물에 불과하다면? 오직 사람만이 진짜이고, 정보는 그렇지 않다면?"
'오직 사람만이 진짜'라는 말이야말로 레이니어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어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뢺인다. 부제가 그 성격을 뚜렷이 규정하듯, 이 책은 '선언'이다. 사람이 기술에 종속되고, 사람이 컴퓨터보다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고, 사람이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벌집의 일개 벌로 격하되는 이른바 '웹 2.0' 세상의 함정과 허상을 깨야 한다는 레이니어의 '인간 회복 선언'이다. 밖으로 내세운 '열린 문화'라는 구호와 달리, 실제로는 개개인의 독립적 사고와 의지를 '군중의 지혜'나 '집단 지성'이라는 개념 속으로 녹여버리는 벌집형 이데올로기에 대한 해부이자, 익명성으로 무장한 온라인 정글의 비정하고 비인간적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번역은 쉽지 않았다. 머리로는 명징하게 이해되는데 정작 글로 풀어내면 모호한 횡설수설처럼 변해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 부족한 번역 솜씨와 모자라는 한글 어휘력이 물론 가장 큰 주범이었다. 적절한 한글 표현을 아직 갖지 못한 영어의 기술적 용어가 많다는 점도 만만찮은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레이니어의 글은 내게 일종의 '개안(開眼)'이었다. 웹 2.0이나 소셜미디어/네트워킹에 대한 신간의 8, 9할이 어떻게 하면 이를 기업 경영에 활용할지, 또는 어떻게 그로부터 큰 돈을 벌지를 소리높이 외치는 '실용서'인 현실의 대세를 용감하게 거슬러, 과연 웹 2.0과 소셜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문화에,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탐구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레이니어의 글은 큰 충격이었다. 레이니어가 마치 웹 2.0이라는 광야의 예언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페이스북이 비콘(Beacon)이라는 앱으로 낭패를 본 뒤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를 예견한 다음과 같은 글은 레이니어를 '예언자'라고 부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비콘의 낭패 뒤에도,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들에 돈을 쏟아붓는 흐름은 둔화되지 않고 계속되었다. 비즈니스적 시각으로 본 소셜네트워킹 사이트들의 유일한 희망은 프라이버시와 인간적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 용인되도록 하는 어떤 마법같은 공식을 찾아내는 것이다. 비콘의 사례는 그것이 지나치게 빨리 나타날 수는 없음을 증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제국이 그러한 프라이버시와 존엄성 침해를 서서히 수용하는 쪽으로 꼬드겨질 수 있는가이다."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페이스북과, 그것이 차용한 '친구'라는 단어에 대한 레이니어의 지적은 또 어떤가. "나는 수천 명의 친구를 페이스북에서 모았노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을 꽤 많이 알고 있다. 대부분 젊은 층이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우정에 관한 정의를 희석시켰을 때만 맞다. 진짜 우정은 서로에게 자기 안에 있는 예기치 못했던 괴짜스러움을 보여주어야 성립된다. 각각의 지인은 이방인이며, 상상할 수도 없고, 오직 진실된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우리 경험에서 아직 탐구되지 않은 다름의 원천이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걸러지는 소셜네트워크에서의 우정이란 그보다 확실히 더 왜소한 것일 수밖에 없다." 내가 느낀 것과 같은 공감과 충격을, 이 책의 독자들도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