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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종부 목사 산상설교

화종부 목사 산상설교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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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개신교)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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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12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596쪽 | 750g | 140*220*32mm
ISBN13 9788963602295
ISBN10 896360229X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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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복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이지만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복은 내세적이고 인격적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은 세상 중심이고 사람 중심인 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은 하나님 중심이고 하나님 나라 중심입니다. 세상은 소유나 행동의 관점에서 복을 정의하지만, 성경은 존재와 성품의 관점에서 복을 정의합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다울 때가 언제일까요?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으므로,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를 볼 때 비로소 사람다워집니다.
첫 번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것입니다. 성도의 우선적인 특징은 심령이 가난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기를 살펴볼 때 아무것도 소유한 게 없는 가난과 궁핍이 성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그러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고 복된 자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고 말할 때, 중요한 단어인 ‘심령’을 빼고 본문을 해석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를 좇으며 살아가므로 어리석은 이들은 또 하나의 극단을 추구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것처럼 가르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부와 가난 어떤 것도 그 자체로 미덕이거나, 복이나 선한 것, 유익한 것, 영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 1. ‘복 있는 사람_ 심령이 가난한 자’」 중에서

성도와 교회는 왜 이 땅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적극적인 대안이 될까요? 성도는 하나님을 믿으며 내면의 진실한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내면의 참된 변화입니다. 속사람이 새롭게 변화되므로 죄를 미워하고 거룩함을 추구하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그저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죄를 대적하고 죄를 거스르기를 원하는 백성이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선택하며 선을 행하는, 하나님을 닮은 새로운 백성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소금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소금처럼 녹아 세상으로 침투해 들어가서 세상의 부패를 막고 건전함을 보존하는 신실한 성도가 많이 나올수록, 세상은 부패와 썩음을 면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미약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면에서 한 사람의 성도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 6.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 중에서

조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이런 식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목사님, 당연히 하나님이 영광 받으셔야지요. 그게 첫 번째라는 것에 동의해요. 그런데 저도 하나님 덕분에 잘되면 더 좋잖아요?” 틈새를 비집고 자기가 들어갑니다. 절대로 내가 첫 번째라고 말 안 합니다.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며느릿감과 사윗감을 구할 때도 그래요. “목사님, 요즘 우리 아이의 배우자를 찾고 있는데요, 믿음이 1순위입니다. 진짜예요. 그런데 다른 것도 있으면 더 좋겠어요.” 늘 더 좋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좀 안 되어도 되고, 불행해도 되고, 가난해도 되고, 병들어도 되고, 실패해도 괜찮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잘되든 그렇지 않든 하나님만 기쁘시면 되고, 하나님만 드러나고 영광 받으시면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첫 번째라는 데에는 정답처럼 동의하지만, 항상 자기를 덧붙여서 하나님 덕분에 나도 잘되면 더 좋지 않냐고 말합니다.
그렇게 신앙의 본질을 다 어그러뜨리고, 자기를 기쁘게 하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칭찬하고 자기를 높이는 왜곡된 경향성을 보시고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가지고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중심이 전혀 변화되지 않은 그러한 인생은 하나님 나라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 8.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 중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자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말씀 앞에 성령의 도우심 안에 바르게 서 있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아도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주장해도 그런 자리에 있으면 가장 위험한 사람이에요. 하나님은 우리 중심을 아시고 보시는 분입니다. 내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합리화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의 실존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 12.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중에서

우리 사회를 보십시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살 만한 세상이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에 얼마나 민감합니까? 이토록 자기 것, 자기 권리를 챙기는 세상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속옷을 위해 재판을 걸어 송사하는 사람을 만나거든 생존권에 해당하는 가장 중요한 권리까지 포기할 준비를 하고 상대의 해코지를 받아내라고 말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의무에는 둔감하고 자신의 권리에는 민감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기득권을 조금도 잃지 않으려 하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권리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누리며 살려 하다 보니 사회가 시끄럽고 어려운 것입니다. 다들 권리를 찾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세상에서 아무 권리가 없는 사람처럼, 겉옷과 같이 그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핵심적인 권리조차 언제든 포기하고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처럼 사는 것이 성도가 세상을 사는 방법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정당하다고 여겨지는 권리도 때로는 포기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자기 권리에 민감해서 할 말 다 하고, 요구할 것 다 하고, 작은 것 하나까지 양보하려 하지 않는 이 세상에서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권리조차 자발적으로 포기하며 사는 사람들이 성도입니다.
---「 13.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중에서

자기를 깊이 깨뜨리지 않으면 도무지 들어갈 수 없는 세계가 바로 기독교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자아에 대한 깊은 무너짐이 없이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세계입니다. 부부로 살아가는 동안 미숙할 때는 서로를 탓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흘러 영적으로 깊어질수록 배우자의 존재만으로도 고맙고, 짐승 같고 벌레 같은 나와 살아주는 것 자체가 미안하고 고맙게 여겨지는 것이지요. 자식이 말 안 듣고 속 썩이면 미워하기도 하지만 믿음이 성장하면 ‘어떻게 내 속에서 저런 애가 나왔을까?’ ‘나와 다르게 어떻게 저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애가 태어났을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 같은 눈은 성도가 아니면 절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을 향해 모든 관심을 기울이고 자기를 위해 살면, 평생 타인의 평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남을 경계하며 시기하고, 타인이 보이는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 자신의 삶이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중요한 문제로 생각하는 불행과 비참함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주신 참된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모른 채,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에 나의 판단과 행동이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성도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마음을 살피지만, 눈치를 보지는 않습니다.
나의 행동과 삶의 가치를 결정하는 동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행동과 판단을 나의 행동 기준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이 나의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는 준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행동과 판단의 준거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어떤 일을 한다 해도 나의 일과 행동과 판단을 결정하는 기준은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나를 선대했으므로 이웃처럼 사랑하고, 그가 나를 해코지했으므로 원수처럼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를 보시고 아시며 나의 삶을 받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14. ‘네 원수를 사랑하며, 위하여 기도하라’」 중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방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해도 내가 선하고, 훌륭하고, 잘 믿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통해 풍성히 드러나도록 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그 어느 곳이나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이 우리의 최종 재판관이심을 믿고 사는 것이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제일 중요한 자세입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종교 개혁을 하면서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듯 신앙인이 가져야 할 바른 삶의 자세는 남들 눈에 선하게 보이는가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바르고 참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시는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실패하면 우리는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칠순과 팔순을 맞는 영적 선배들을 뵐 때마다 늘 마음이 좋은 이유는, 꼿꼿한 것을 가슴에 품고 산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앞에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행동하려 하고,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옳지 않다 싶은 것은 말하기 어려운 것도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 마음에 감격이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그런 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그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주면 신앙인이 다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나고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시기만 하면 그 무엇이라도 아낌없이 지불하며 사는 것이 신앙의 요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그 삶을 꼭 기억하시고 상을 주신다고 성경은 약속합니다.
---「 16.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하지 말라’」 중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기도에 실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지도 듣지도 못하시는 것처럼 바리새인들이 하듯 사람들이 보는 데서 외식하며 형식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참되게 보고 들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십시오. 일상의 분주함을 잠시 접고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맞부딪치고 감정이 통하는 기도를 해보십시오. 기도의 자리에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그분께로부터 오는 기쁨과 즐거움, 평강, 안식 등을 경험하며 한결같이 골방을 사모하는 귀한 일이 성도에게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지상을 사는 성도가 누리는 최고의 복락입니다. 그것을 잃으면 신앙의 대부분을 잃는 것입니다. 어떠한 제목으로 기도했더니 응답을 받았다는 목록을 갖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골방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아는 비밀이 성도의 가슴속에 있어야 진짜로 예수를 믿는 맛이 나오는 것입니다.
---「 17. ‘바른 기도와 금식’」 중에서

주일에 꼬박꼬박 교회를 나온다고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다스리심과 통치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분이 나를 다스리시도록 나 자신으로부터 그분께로 주권을 완전히 이양해야 비로소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평생 자기가 왕 노릇을 하거나 세상 임금이 왕 노릇을 하는 자리에서 살아오다가, 주님을 영접한 후 그 심령에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리심이 임하여 주권자가 바뀌는 것이 성도 됨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수십 년간 교회를 다녔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아직 성도가 아니지요. 아무리 좋은 교회를 다니고, 교회에서 손꼽힐 만한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받아도 그런 것을 모르면 아직 성도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성도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따라 인생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압니다. 성도는 회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생의 주인으로 삼고, 중심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주님이 이루신 모든 공로를 믿음으로 받아들여 그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사람입니다. 주님을 바르게 믿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삶 속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왕권을 인정하며 사는 것이 성도 됨의 중요한 표지 중 하나이지요.
저는 지난 30년간 목회를 해오면서 교회 안에는 있으나 성도가 아닐 수 있는 사람을 숱하게 봤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바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좋은 교회를 다닌다는 것, 그리고 목사의 설교를 들을 때 이따금 가슴이 찔리면서 경험하는 감동이 성도라는 표시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삶에서 주인이 바뀌고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있는가 하는 것이 성도의 핵심 증표입니다.
---「 19.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Ⅱ’」 중에서

예를 들어 공동체에서 지체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보며 “그렇게 하지 마시고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 바르게 행하지 못할 때는 바르지 못하다고 사랑으로 말해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이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라고 판단하며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지요. 우리는 지체의 말과 행동에 대해 판단하고 분별하며 말할 수는 있지만 마음을 판단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면의 동기까지 추론하며 분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내게 모욕을 주는 사람을 향해 ‘이 사람이 하는 것을 보니, 나를 우습게 여기고 내 인격을 무시하는구나’라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 말과 행동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사람은 나를 아무렇게나 대하는구나’라고 그 사람의 동기나 내면을 판단하려 하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저 사람은 우리 교회에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다”라고 말해서도 안 되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어떤 사람의 나쁜 행실에 대해 말할 수는 있지만 내면의 동기나 마음 중심, 인격을 평가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조국 땅에서 목회하는 동안 제일 마음 아픈 것은 이 부분입니다. 조국 사회와 교회는 이러한 것을 분별하려 하지 않아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근거 없는 인격 모독과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고 행합니다. 나를 상하게 하는 사람에게 그 이상의 나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지요. 하지만 성도는 사람의 가치를 평가한다든지 사람 자체를 비난하거나 판단하는 일을 절대로 하면 안 됩니다. 판단은 하나님 고유의 영역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는 오직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만 매기시는 것입니다.
---「 24. ‘비판하지 말라’」 중에서

저는 조국 교회의 성도들이 자꾸 세상의 본이 되려 하면서 세속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본이 되는 것만이 우리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에서 버림받고 핍박받고 욕을 듣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본만 되면서 이 땅에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 거예요. 이제 그렇게 사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기독교는 보편적인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보편과 대중을 바르게 끌고 가야 하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마음과 생활의 절제를 함과 동시에 주님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하고 싶은 수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웃을 위해 우리의 자유를 반납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대목까지 내려놓으며 좁은 길로 가는 것입니다.
---「 28.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중에서

참되고 바른 선생은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기에 오래 참습니다. 상황으로 인한 실망스러움이 있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써 오래 참습니다. 또한 참된 선생이 지니는 특징은 충성입니다. 오늘날의 사회는 능력, 신분, 학벌로 사람들을 평가하는데, 목회하면서 배우게 된 것은 사람이 지니는 최고의 덕목이 충성스러움이라는 것입니다. 재능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닮은 성품이 묻어나는가 하는 것이지요. 거짓 선생은 우선 당장에는 있어 보이나 그 속을 조금만 지켜보면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 거의 없습니다.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나를 높이고, 나를 기쁘게 여기도록 하는 것은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이 주는 특성이지요. 우리 마음속에 적의와 시기, 분노와 방종의 열매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다 거짓 선생입니다. 그들이 지니는 특성이 적의와 시기와 분열이지요.
잘 가르치는 것 같지만 너무 거만해서 그 곁으로 가까이 갈 수 없는 경우에는 가르치는 사람이 거짓 선생일 확률이 높습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뭐라고 딱 짚어 말하기 어려운 불일치가 있어요. 그가 하는 그럴듯한 말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고 안 어울립니다. 외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거짓 선지자는 신앙과 삶의 괴리와 함께 쓸데없는 율법주의의 경향을 갖고 있습니다.
이 땅에 몸담고 살아가는 우리는 육신을 기쁘게 하는 교훈에 길들어졌습니다. 예수도 잘 믿고 공부도 잘하면 더 좋아요. 예수도 잘 믿고 돈도 많이 벌면 더 좋아요. 예수도 잘 믿고 높은 지위에도 오르면 더 좋습니다. 예수도 잘 믿고 좋은 혼처로 시집 장가도 가면 더 좋지요.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함정입니다. 예수를 잘 믿고 바르게 알면 그만이지, 거기에 뭐 하나가 더해지면 더 좋다고 가르치는 것은 거짓 교훈입니다.
---「 29.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중에서

신앙은 어떤 정통적인 교리를 믿거나, 교회에 다니거나, 의롭고 바르다고 여겨지는 일을 행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받으시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 요체입니다. 기독교는 어떤 교훈의 묶음을 따라 그것에 동의하며 살면 된다고 가르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 무엇보다도 먼저 부활하셔서 살아 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의 사귐과 교통이 있어야만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사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범사에 주님과 동행합니다. 단 한 순간도 주님과 떨어져 사는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게 되지요. 그분이 없는 삶을 원하지 않고, 그분이 함께하지 않는 일은 어떤 것도 기뻐하지 않고, 그분이 함께하시기만 하면 어떤 고통과 불이익이 있더라도 어디든 갑니다.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도 그분이 계신 곳이면 그 어디나 천국이라고 생각하고, 세상은 아무리 찬사를 보내도 주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그 어떤 가치와 의미도 없다고 여기는 것이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 31. ‘하늘에 계신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인가? Ⅱ’」 중에서

예수님은 선지자와 율법을 왜 완전케 하실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는 의인이나 선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윤리 도덕적인 수준이나 재능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오십보백보입니다. 모두 똑같지요.
의인도 없고 선인도 없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는 이 땅에 주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우리는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의롭지도 않고 선도 행하지 못하는 죄인과 병자입니다.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피할 길을 주고자 오신 것이지요. 우리가 죄와 행실과 악함 가운데 멸망하지 않도록, 예수님은 그분의 공로와 은덕으로 용서하시고 생명을 얻는 구원을 베푸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도무지 의를 행할 수 없는 우리 같은 죄인과 병자에게 예수의 공로에 힘입어 의롭다 여김을 받는 생명의 영광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날마다 듣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 사람은 꿈을 꾸고,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인간의 역사와 인생이 이룬 과학기술 문명을 보라.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리고, 과학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키는 사람은 얼마나 위대한가.” 세상은 이같이 외치지만 우리 인생은 자기가 씨름하고 고통 하는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외부로부터 도움이 와야 합니다. 그 문제를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바로 그분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우리를 대신하여 이 모든 일을 행하실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우리의 죄와 죄가 만든 모든 질고를 이기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33. ‘산상설교의 결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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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같은 시대에 보기 드물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대로 전달하기를 소원하는 화종부 목사는 산상설교 33편을 통해 가뭄에 쏟아지는 단비와 같은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산상설교 60편을 읽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 있느냐며 주위 사람들에게 도전을 많이 했는데, 그 못지않게 명쾌하고 우리 상황에 더 적절히 적용하는 그의 설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또 하나의 버킷 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정근두 (울산교회 담임목사)

번잡한 도시를 떠나 깊은 산 속을 산책하고 난 느낌이다. 아무도 없는 산길, 이른 아침에, 큰 나무들이 가득 모여 이룬 숲길을 걷다 온 느낌이다. 복음의 진수를 심오한 학문이 아닌 이처럼 쉬운 언어로, 잡다한 세속적 이야기 없이 풀어낼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약 30년 전, 내수동교회에서 저자가 수요일마다 했던 같은 주제의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은 기억이 새롭다. 그때보다 더욱 깊이가 생겨 농익은 여름 과일과 같은 저자의 산상설교가 신앙과 세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많은 이들에게 바른길을 보여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 김남준 (열린교회 담임목사)

산상수훈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루기를 원하는 ‘큰 바위 얼굴’이지만 설교자에게는 거룩한 부담이 아닐 수 없는 단순하고도 힘든 말씀입니다. 말씀이 가진 영광스러움의 무게에 의해 설교자의 온전치 못한 인격이 압도당할 때의 고통은 감당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화종부 목사는 본문이 주는 내면의 치열한 고뇌를 소화하여 진솔하고 호소력 있는 설교로 승화시켜 이 책을 펴냈습니다. 저자의 깊은 묵상과 예리한 통찰, 그리고 오랜 목회 경험에서 우러나온 영혼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빚어낸 이 귀한 책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된 모든 이들이 꼭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추천합니다.
- 손희영 (행복을 나누는 하나교회 담임목사)

저자는 기독교 윤리의 대헌장인 산상수훈과 관련하여 가장 탁월한 강해서를 냈다. 그는 산상수훈을 해석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인 중세 기독교적 공로주의나 유교적 도덕주의에 바탕 한 해석의 틀을 벗어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지녀야 할 윤리라는 관점, 즉 마음 중심으로부터 예수님을 사랑하고, 닮아가고, 드러내는 윤리 해석을 하고 있다. 성도들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의 현장을 상세히 아는 그는, 외과 의사의 메스보다 날 선 적용의 칼로 성도들의 마음과 삶에 있는 신앙의 비본질적 요소를 제거한다.
이 책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기독교 교리의 본질로 돌아가는 다음 과제인 기독교 윤리의 본질을 회복하는 ‘아드 폰테스’(Ad Fontes, 근본으로 돌아가라)의 매뉴얼을 제공한다. 그의 강해서를 읽는 동안 문자가 아닌 강력한 목소리가 나의 가슴을 때리는 감동을 느꼈다. 저자와 36년째 우정을 이어오는 나는 그의 진실한 인격과 삶에서 묻어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 박성규 (부전교회 담임목사)

지금의 한국 교회는 물질적인 복에 정신이 팔린 세속주의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산상수훈이 말하는 진정한 복에 관해 다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화종부 목사는 한국 교회에 침투한 세속주의에 도전하는 성경의 진리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시종일관 선포해왔다. 세속주의와 뒤섞인 복음을 들으며 혼란을 겪은 성도들이 있다면,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목청으로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설교해온 저자의 신선한 통찰력이 살아 있는 글은 독자에게 큰 감동을 제공할 것이다.
- 황원선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좋은 설교는, 본문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 얻어진 객관성, 해석한 말씀을 구체적인 삶으로 적용하는 영적 통찰, 설교한 말씀 그대로를 살아내는 설교자의 인격적 진실함을 담고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면에서 화종부 목사는 세 가지를 모두 구비한 귀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교제해온 그를 떠올리면 치열한 성경 연구, 기도의 골방, 조국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헌신이 생각난다. 화종부 목사는 내수동교회 대학부 시절부터 복음만이 조국과 조국 교회를 살리는 길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성도들에게 영광스러운 복음의 본질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해왔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 진리를 담은 산상수훈을 화종부 목사의 설교로 대할 수 있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조국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일에 이 책이 귀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관형 (내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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