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은 이미 내게 진한 생채기를 남긴 도시다. 8년 전, 나는 런던에서 ‘유학생’으로 살아갔다. 음악이 아닌, 미술을 공부하는 유학생. 그 시절 나는 헤매고 있었다. 음악이라는 숲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어쩌다 숲속을 벗어나도 돌아가야 할 곳이 내겐 보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뮤지션으로 살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건만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내 안의 ‘나’라는 아이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듯한 기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내가 원하는 삶의 원형이 자리하고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너무도 많다. 죽기 전에 가야 할 장소들이 우리의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그곳들 가운데 내가 다녀간, 그리고 지금 머물고 있는 런던이라는 도시는 창조적 영혼들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받아들여주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주는 곳이기에 더욱 아름답다. 나는 분명 남들과 달라, 라고 마음속으로만 외치는 그대여,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드는 곳을 외면하지 마시라. 그곳이 혹 런던이라면 더 이상 고민하지 마시라.
대중에게 내 음악을 선보인 지 어느덧 20여 년. 나는 아직도 내게 꿈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해한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것, 그리고 지금은 모르지만 내 노력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이상은의 경쟁력으로 10년 정도 문을 두드린다면 그토록 견고해 보이는 서구 선진국 문화 장벽에 구멍을 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몽상은 모든 예술 창조의 전제 조건이라고. 예술 하는 사람은 어떤 걸 차지하겠다는 욕심에 앞서, 그 존재 이유만으로도 꿈을 꾼다고.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영원히 꿈꾸는 자로 살아갈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웠던 그 시간, 소호 특유의 개방적이고 즐거운 분위기가 나의 끔찍했던 8년 전의 고독을 나긋나긋하게 녹여주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 시간으로 인해 나는 ‘다름’과 ‘차이’의 미학을 알 수 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탐구하고 음미하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덕분에 내 마음의 키도 훌쩍 자랄 수 있었다. 자신 혹은 집단이라는 이름이 정한 삶의 공식과 조금만 달라도 폭력의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 런던의 소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분법적 삶의 논리에 끼어들지 못해 희생된 삶의 또 다른 가치가 우리 곁에는 지금도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이 대를 이어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정신성’에 있다. 4명의 노동자 계급의 청년들, 마치 선언문을 연상시키는 듯한 노랫말, 아마추어적인 연주 실력을 상쇄하고도 남는 허무주의적이면서도 무정부주의적인 메시지는 당대의 청춘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고, 오늘날 거역할 수 없는 역사로 살아남았다. 정신성과 다양성의 조화. 나는 국내 인디음악이 지속가능한 생명력을 가지려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노래방에서 즐겨 불리는 레퍼토리가 될 정도로 ‘뜨는’ 것도 좋지만, 그 순간 자신의 음악을 사랑하던 마니아들이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워킹 타이틀은 런던의 도시적 미학을 성취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워킹 타이틀이 영화 속 무대로 즐겨 잡는 런던은 비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승화되어 우리의 동공을 자극한다. 재기발랄한, 그래서 언제든지 분기탱천할 수 있는 청춘의 사랑이 아닌, 세상이 조금씩 무서워지기 시작한, 해서 앞으로 나갈 일보다 한 걸음씩 뒤처지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 든 도시남녀의 너무도 평범한 사랑과 현실이 모두 ‘런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고, 단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는 우리의 소박한 바람이 어그러질 때 워킹 타이틀의 영화를 보아서는 안 된다.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사회적 의무를 팽개치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라타고 싶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건 분명 고통스러운 일 될 테니까 말이다.
런던의 영혼은 곧 자연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자연보다 영국을, 그리고 런던을 제대로 묘사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 순간 8년 전 런던을 헤매던 이상은이 눈앞에 나타났다. 곡을 만들기 위해 나무 그늘을 찾던, 몇 알의 사과와 물을 챙겨 하루 종일 나무 아래에서 뒹굴던 내 모습이 새록새록 뛰쳐나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8년 전 런던에서의 이상은도 행복했다는 것을. 내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퍼져 나갔다. 천로역정의 성스러운 종착지에 도착한 순례자가 된 것 같았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기분, 8년 전의 나와 8년 후의 내가 하나가 되는 기분. 그때나 지금이나 런던을 나를 맞아주었고, 안아주었고,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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