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아들을 닮아가게 하는 과정을 시작하신다(롬 8:29). 우리가 그분의 아들을 닮아가는 과정은 매일 진행되며(고후 4:16), 우리의 존재 전체와 결부된다(롬 12:1).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 개인적인 신앙과 교회활동을 형성할 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생활과 일터 그리고 이웃과 지역사회에서의 언행과도 연결되기를 원하신다. … 예수님의 사명은 유일무이했다. 예수님의 핵심 사역(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속죄)은 우리가 모방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수님이 행하신 방식은 우리가 본받을 수 있다.
---「1. 나는 간다」 중에서
현재 지구에서는 왕이신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시다. 성경은 교회를 그의 몸이라 지칭한다.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활기와 힘을 얻는 놀라운 유기체다. 교회는 주님의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주님의 관점을 지닐 수 있다. 이웃의 궁핍함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민족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복음의 좋은 소식을 선포할 수 있는 입이 있고, 상처 입은 자에게 걸어갈 수 있는 다리가 있다. 고통 중에 있는 자를 안을 수 있는 팔이 있으며, 어려움에 처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손이 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신 왕을 위해 물집 잡힐 수 있는 발과 채찍에 맞을 수 있는 등이 있다. 교회로 불리는 이 몸은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건물을 짓거나, 예산을 늘리거나, 지식을 습득하거나,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안건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해져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열정은 온 땅을 그리스도와 복음과 그의 나라로 채우는 것이다.
---「 2. 나는 간다 … 교회와 함께」 중에서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달리 사마리아인의 첫 반응은 자기방어나 본능적인 회피가 아니라 긍휼이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의 설명(36-37절)으로 끝난다. 예수님이 29절의 질문을 뒤집으신 것이 교훈적이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묻지 말고 “내가 누구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으라는 것이다. “누가 내 이웃인가?”는 그릇된 질문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인종과 나라와 사회적 경제적 신분이 어떠하든, 우리의 이웃이 아니라며 배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이 비유는 이웃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이웃으로서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내용이다.
이것은 우리의 이웃이 누군지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지에 대한 내용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가 누구든 그의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 3. 나는 간다 … 이웃에게」 중에서
구원자는 여럿이 아니라 한 분이며,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복음도 여럿이 아니라 단 하나이며, 그것은 바로 왕이신 예수님의 복음이다. 열방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메시지다.
“복음은 제 때 필요한 곳에 있을 때만 좋은 소식”이라고 말한 유능한 감리교도 정치가이자 신학자인 칼 F. H. 헨리(Carl F. H. Henry)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다. 선교사 존 팔코너(John Falconer)가 “내게는 생명의 양초가 한 자루뿐이며, 나는 그것을 빛으로 가득한 땅에서 보다는 어둠으로 가득한 땅에서 밝히기를 원한다”고 선언한 것도 바로 이 사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열방은 어둠으로 가득한 땅이다. 복음의 불빛이 필요한 곳이다. …
---「 4. 나는 간다 … 열방으로」 중에서
때로 우리는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최고의 기회를 발견하기도 한다.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는 한, 직업은 하나님의 각종 은혜 공급의 통로 역할을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임을 잠시 숙고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 일하셨다고 말하며, 그분을 행복한 노동자, 만족해하는 예술가, 즐거워하는 건설자로 묘사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기에, 우리를 노동자로도 지으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 중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닌 일은 없다. 레크리에이션마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어야 한다.
… 우리는 종교를 구석으로 좁은 방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 되며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행동, 어떤 장소로 제한해서도 안 된다.
…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일 수 있도록.”
---「 5. 나는 간다 … 일터로」 중에서
요셉은 자신의 일을 소명으로 보고 그 일을 주께 하듯 했다. 요셉은 자신의 일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한 방법으로 보았고, 다른 사람의 아내가 성적으로 접근해 오는 것을 거부했으며, 또 해고당하며 감옥에 갇히는 것을 포함한 삶의 힘든 기간을 견뎌냈다.
… 다니엘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비추어 행하고자 했다. 하루에 최소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과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의 일을 신실하고 탁월하게 해낼 힘과 용기를 얻었다.
… 바울은 계속해서 장막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 장막을 만들어 생계를 해결함으로써, 바울은 교회를 개척하거나 목회자의 멘토 역할을 하는 것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또 바울이 방문했던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일원이 되고, 그 공동체의 복지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 하나님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전략적으로 편성하신다. 우리의 21세기도 예외가 아니다.
---「 6. 나는 간다 … 직업을 활용하여」 중에서
우리는 언제나 사명 수행 중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로서,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대변해야 한다.
교회에 출석하거나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일하거나 집에 있거나 지역사회에 있을 때도 우리는 ‘근무 중’이다. 국제적인 선교사나 목사인 경우만이 아니라, 주부나 과학자나 사업가인 경우에도 우리는 ‘근무 중’이다.
그리스도인이 ‘근무 중이 아닌’ 상황은 없으며,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투자해야 한다.
---「 7. 나는 간다 … 어디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