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입장과 관점을 생각하라
늑대는 다른 늑대에 대한 우월감이나 꾸지람의 표시로 상대의 머리나 등을 누른다. 또 서열이 높은 늑대는 서열이 낮은 늑대의 주둥이를 물기도 한다. 입에 재갈이 물린 개가 풀 죽은 듯 보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다른 개를 밟고 올라서는 행동은 자신의 서열이 더 높음을 나타내는 신호다. 밑에 깔린 서열이 낮은 개는 위에 선 개의 체중에 눌리는 느낌을 받는다. 비옷은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따라서 비옷을 입히는 것은 비에 젖는 것을 막아주기보다 자신의 서열이 낮다는 비참한 기분이 들게 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개에게 비옷을 입혔을 때 보이는 행동이 이 해석을 뒷받침해준다. 그들은 ‘제압’당한 듯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목욕 후 물에 흠뻑 젖은 개를 닦아주기 위해 수건으로 몸을 감싸면 갑자기 얌전해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개가 비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는 데 얌전히 협력한다 해도 이는 개가 비옷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서열이 더 높은 우리 인간에게 순응하는 것에 불과하다. --- p.31
개는 왜 ‘뽀뽀’를 좋아할까?
나는 개가 나를 핥아주는 데서 애정을 느낀다. 하지만 개는 정말 애정 표현으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먼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다. 늑대, 코요테, 여우 등의 갯과 동물들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새끼들이 사냥터에서 돌아온 어미의 얼굴과 주둥이를 핥는 이유는 구토를 유발해 아직 소화되지 않은 고기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펌프는 아무리 핥아도 토끼 고기를 뱉어주지 않는 내게 얼마나 실망했을까.--- pp.43~44
순종 개는 존재하는가
애완견을 입양하기 위해 순종 개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면 귀 모양에서 기질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사양 못지않은 복잡하고 세부적인 설명을 접하게 될 것이다. 다리가 길쭉하고 털이 짧으며 턱이 발달한 개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레이트데인이 적합하다. 코가 뭉툭하고 피부에 주름이 있으며 꼬리가 말려 올라간 개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퍼그가 어울린다.
어떤 견종이 좋을지 선택하는 것은 마치 선택사항이 포함된 의인화 패키지 상품을 구입하는 것과 같다. 단지 개 한 마리를 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품 있고 도도하며 찌푸린 표정에 냉정하고 콧대 높은’ 사람(샤페이), ‘활발하고 상냥한’ 사람(잉글리시 코커 스패니얼), ‘과묵하고 낯을 가리는’ 사람(차우차우), ‘까불대는’ 사람(아이리시세터), ‘거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페키니즈), ‘덤벙대고 산만한’ 사람(아이리시테리어), ‘침착하고 한결같은’ 사람(부비에데플랑드르), ‘알고보면 개인’ 사람(브리아르)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pp.66~67
킁킁거리는 개의 보습코
인간 코에는 거의 600만 개 정도의 감각 수용체가 있고, 양치기 개의 코에는 약 2억 만 개, 비글의 코에는 3억 만 개 이상이 포진해 있다. 개에게는 후각세포 코드화의 임무를 맡은 훨씬 많은 유전자, 훨씬 많은 세포, 그리고 온갖 종류의 냄새를 감지할 수 있는 훨씬 많은 ‘종류’의 세포가 있다. 그것이 냄새를 경험하는 데 있어서 인간과 개의 차이점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러니 그들 옆에 서면 우리는 완전히 후각상실자나 마찬가지다. 인간도 커피에 들어간 설탕 한 스푼 정도는 냄새로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는 올림픽 수영 경기장 두 개를 합쳐놓은 크기의 물웅덩이에 설탕 한 스푼을 풀어놓아도 냄새를 감지해낼 수 있다.
그것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시각적 세부사항들이 각각 특정 냄새와 일치한다고 상상해보자. 장미 한 송이에 달려 있는 여러 꽃잎의 향도 멀리 있는 꽃에서 날아와 꽃가루 발자국을 남겨놓고 간 곤충 냄새 때문에 각각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단 하나의 꽃가지에도 지금까지 그것을 손에 들었던 모든 사람의 흔적과 그것을 본 시각에 대한 단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 화학물질의 분출 흔적이 남아 있고, 나뭇잎보다 통통한 꽃잎이 한 장 한 장 서로 다른 향기를 품고 있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나뭇잎의 접힌 부분에도 향기가 있고, 가시에 맺힌 이슬방울에도 향기가 있으며, 그 모든 향기 속에 시간의 흐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가 꽃잎이 시들어 갈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개는 그 부패와 시간의 흐름을 냄새로 맡을 수 있는 것이다.--- pp.92~93
개에겐 나뭇잎과 잔디가 필요해
우리는 너무 자주 개를 목욕시킴으로써 그들의 더러워질 권리를 박탈하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열정으로 집안뿐 아니라 개 침대까지도 말끔히 청소해버리는 인간의 문화적 성향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깨끗하게 느껴지는 냄새는 인공 화학적 청결제의 냄새일 뿐 전혀 생물?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아주 약하게 남아 있는 세제 향기조차도 개에게는 후각적인 공격이나 마찬가지다.--- p.110
다양한 몸과 꼬리의 언어
개는 입으로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입을 닫았다 열고 다시 편안히 힘을 풀거나 입 꼬리를 올린 채 입을 벌리거나, 혹은 주둥이를 모으거나 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개가 입을 다물고 ‘미소 짓는 것’은 복종의 의미다. 흥분했을 때는 입을 벌린다. 이를 드러낸 표정은 공격적이다. 이를 드러내지 않고 하품하듯 입만 크게 벌리는 것은 인간의 하품처럼 지루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불안, 초조, 스트레스 등을 나타내고, 개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개를 진정시킬 때 주로 짓는 표정이다. 귀가 보이는 표정 역시 많이 다르지 않다. 쫑긋 세우거나 편안하게 내리거나 머리 옆에 바짝 붙여둘 수 있다. 다른 개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위협이나 공격의 몸짓이다. 반대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복종을 나타낸다. 자기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거나 다른 개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한 시도다.--- pp.140~144
온통 흐릿한 개의 시야
개의 망막 중심부에 몰려 있는 추상체는 낮은 조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해질녘이나 밤에는 낮에 비해 반응 횟수가 줄어든다. 즉 색을 감지하는 세포 수가 더 적어지고, 따라서 뇌에 신호를 전달하는 세포 수도 더 적다. 가까운 주변 세계는 약간 납작해 보인다. 여전히 어떤 색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빛과 어둠도 인식할 수 있지만 다채로운 색의 향연은 음미하지 못한다. 색들 간의 차이가 줄어들고 선명함도 덜해진다. 개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항상 어둑한 오후처럼 보인다.
개들은 다양한 색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특정한 색을 선호하는 일도 드물다. 당신이 아무리 촌스러운 색의 목줄을 골랐다 해도 개는 전혀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p.164
인간 행동을 읽는 개
컴퓨터 앞에 앉아 양손을 키보드 위에 올린 채 세 시간을 보냈다고 치자. 갑자기 고개를 들고 양팔을 위로 올려 스트레칭을 하는 것은 그들 눈에 변신이나 마찬가지다! 당신 주의가 다른 곳을 향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산책을 가고 싶어 하는 개라면 이것을 쉽사리 산책의 전조라 여길 것이다.--- pp.209~210
개의 시간 체험
당신 개는 심심해하는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마법처럼 양말이나 신발, 혹은 속옷이 본래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널려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어제 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한 입 크기로 잘라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답은 ‘당신 개는 심심해한다’이지만 동시에 ‘최소한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씹어대던 한 시간 동안은 심심하지 않았다’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아이가 투덜대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이것이 바로 홀로 남겨진 개들 대부분의 심정이다. 할 일이 아무 것도 없이 남겨진 개는 무언가 할 일을 찾아내기 마련이다. 개의 정신 건강과 당신 양말을 위해서라도 해결책은 필요하다.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두는 것이다.--- pp.267~269
옳고 그름에 관한 개의 생각
가벼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개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있다. 개를 키워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펌프처럼 쓰레기통을 뒤지다 걸리거나, 음식 찌꺼기를 입가에 잔뜩 묻히고 발견되거나, 소파 속 스펀지나 솜 부스러기를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 나타난 개가 취하는 행동을. 귀를 뒤로 젖혀 머리에 바짝 붙이고 꼬리를 빠르게 흔들다가 다리 사이로 감추고 몰래 방을 빠져나가려 한다면 자신이 방금 현장에서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 따라서 개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안다는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는 아마도 자신의 행위가 나쁘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다. 개가 보이는 죄책감은 두려움이나 복종의 표현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니 애완견에게 버릇을 들이느라 심하게 고생하는 주인이 그리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개가 아는 것은 주인이 불쾌한 표정을 짓고 나타나면 곧 체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일종의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법을 알 뿐이다.--- pp.283~289
개의 본질을 인정하라
개와 산책하는 것이 개를 위해서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내가 매일 아침 일찍 눈을 뜨는 것은 펌프에게 목줄을 매지 않고 함께 공원을 걷기 위해서다. 일을 하다가 집에 들러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도 그 애를 위해서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천천히 산책을 하는 것도 그 애를 위해서다. 하지만 정작 개는 자기를 위해 산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인간이 정의한‘산책’의 의미에 맞게 행동할 때가 많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우체국까지 갔다 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제대로 산책을 하기 위해 온갖 냄새에 이끌려 자꾸 걸음을 멈추는 개의 목줄을 홱홱 잡아당긴?.
개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데 관심이 없다. 그러니 개가 어떤 산책을 원할지 한번 생각해보자. 펌프와 나는 각양각색의 산책을 즐긴다. ‘냄새 맡기 산책’을 하면 한 발짝 전진하기도 힘들지만 그 애는 알 수 없는 온갖 매력적인 냄새 분자들을 들이마신다. ‘펌프가 결정하는 산책’도 있다. 이 산책을 하면 교차로가 나올 때마다 우리가 갈 발향을 전부 펌프가 고른다. ‘꾸불꾸불 산책’이라는 것도 있다. 펌프가 목줄을 맨 채로 내 왼쪽 오른쪽을 왔다 갔다 하며 나를 끌고 다니는 산책이다. 펌프가 더 어렸을 때는 관심이 가는 개를 만나면 펌프는 그 개 주위를 돌고 나는 펌프의 주위를 돌면서 함께 뛰어다니는 산책을 하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는 심지어 ‘걷지 않는 산책’이라는 것도 했다. 힘들면 아무 데나 앉아서 쉬다가 다시 일어날 마음이 들면 이동하는 것이다.--- pp.352~353
개의 특성을 주시하라
내가 거의 매일 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쟤가 왜 저러지?’다. 하지만 대개는 개가 하는 모든 행동에 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고 결론 내릴 때가 많다. 개가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당신을 보는 것은 그냥 앉아서 당신을 보는 것일 뿐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모든 행동이 항상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개의 행동에 의미가 있다면 그 행동은 동물로서, 갯과 동물로서, 그리고 특정 품종으로서 개의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 p.355
개의 일상을 배려하라
우선 개에게서 개 냄새가 나도 참을 수 있는 만큼은 참아라. 어떤 개들은 규칙적인 목욕으로 심각한 피부질환을 앓기도 한다. 그리고 자기 몸에서 자기가 들어갔던 목욕통 냄새가 나는 것을 좋아하는 개는 없다.
--- p.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