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약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열다섯 살 때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의 약. 효과가 지속되는 건 2시간 17분.” 꽤 꿈꾸는 소녀 같은 데가 있는 마유미는 때때로 까닭 모를 소리를 하곤 했지만, 지금 한 말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애매모호했다. “미안. 사실은 그냥 드롭스 캔일 뿐이야. 30년 뒤에 타임캡슐을 열었을 때, 우리 모두 ‘열다섯 살 때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의 약’이라고 생각하면서 사탕을 빨아 먹으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서.”
종이봉투 입구를 열고 안에 들어 있던 물건을 꺼냈다. 비닐에 둘둘 말린 사진과 카세트테이프. 뚜껑 부분을 접착테이프로 꼼꼼하게 바른 드롭스 캔. 그제야 생각이 났다. 사진과 테이프에는 나와 마유미의 이름을 함께 써 넣었고, 드롭스 캔은 마유미가 따로 이름을 쓰고 타임캡슐에 넣은 것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로 열다섯 살 때로 돌아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드롭스일 뿐인데. “설마. 정말로 ‘열다섯 살 때로 돌아갈 수 있는 마법의 약’이었단 말이야?” --- 본문 중에서
“너……. 나오코, 맞지?” 놀라움보다 공포에 가까운 표정으로 미치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 전체를 마구 매만지며, 다시 한 번 거울 속에 비친 소녀를 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열다섯 살 정도의 소녀였다.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헐렁헐렁한 티셔츠와 진 바지는 내가 입고 있던 것임이 분명했고, 얼굴 생김새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 모습은 바로 오래된 앨범 속에 있는 나의 열다섯 살 적 얼굴이었다.
“이거, 귀엽지 않아?” 미치는 교복치고는 너무 깜찍해 보이는 감색을 기본으로 한 체크무늬 플리츠스커트에 감색 니트 조끼, 연지 색 리본을 단 교복 앞에 멈춰 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세일러복만 입었으니까 이런 느낌의 교복도 한번 입고 싶었어. 넌 안 그랬어?” 미치가 뒤를 돌아보며 묻기에 나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도 내내 세일러복만 입었으니까 이런 느낌의 교복도 한번쯤 입어보고 싶었다.
“나오, 우리도 가서 노래 대회에 참가하자.” “뭐라고?” “나랑 나오가 나가면, 우승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이야.” 커다란 쇼핑백을 한쪽 팔로 껴안더니, 미치는 내 팔을 꽉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미치, 정말 나가게?” “물론이지. 겉모습뿐이기는 하지만 모처럼 열다섯 살로 돌아왔잖아. 이런 기회를 놓치면 너무 아깝지.” “난 싫어. 무대에 서는 건.” 싫다고 말하면서도 미치를 뿌리치지 못하고, 나 역시 행사장 쪽으로 향했다. --- 본문 중에서
정성스레 몇 겹이나 둘러싸 놓은 비닐 포장을 벗기고, 케이스에서 카세트테이프를 꺼냈다.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끼우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지지직거리며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조금 뒤 피아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옛날 카세트 플레이어로 녹음한 것인데다 27년 동안 밀봉되어 있어서 음질이 한층 더 나빠졌겠지만, 그럼에도 마유미의 뛰어난 피아노 실력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흘러나오는 곡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 도입 부분이었다.
얼굴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고개를 들고, 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눈을 감고, 뒤에서 내 등을 밀어 주는 든든한 소리에 힘을 얻어 계속 노래를 불렀다. 어느 틈엔가 눈앞에 관객들이 있다는 사실도, 콘테스트에서 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다 잊었다. 마음껏 소리를 지르다 보니 정말로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잊고, 오로지 노래만 불렀다. 그저 노래 부르는 게 즐거워서, 너무 즐거워서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유미의 피아노 소리는 온몸을 감싸듯이 울려 퍼지며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이건 먼 옛날에 녹음한 테이프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마유미는 분명 지금 여기에 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떨리게 만드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나도 어슴푸레한 홀 뒤쪽에 서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영어 발음만 외워서 불렀던 노래를 지금은 가사를 깊이 음미하며 불렀다. 사랑의 애절함과 슬픔……. 다치고 상처 입어도 여전히, 사랑은 생명과 같다는 것을. --- 본문 중에서
나는 처음 보는 척 “잘 부탁해.” 하고 인사를 했다. 아카네도 퉁명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라이브 하우스에 한번 와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고……. 요즘 우리 부모님이 날 방치해 둔 상태라서 때마침 놀러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무 감정 없이 말하는 아카네를 보고 나는 가슴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았다. 늘 아카네를 집에 두고 외출할 때마다 ‘차라리 없는 게 속 편해.’라는 듯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시라이시 선생은 의기양양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아카네는 웬일로 평소답지 않게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 이야기를 꺼낼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각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야단맞을까 두려워하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내겐 아카네를 야단칠 이유가 없었다. 나 역시 그때 그곳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한 공범자니까 말이다. 또 아카네가 불량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인이기도 했다.
“우리 엄마도 다른 사람이 파자마로 입는 옷을 평상복으로 입지 말고, 유행이나 코디 같은 걸 조금만 신경 쓰면 괜찮아 보일 텐데.” 그렇게 말하는 카나메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뜻밖에 너무 착해 보였다. 평소 카나메의 엄마로 카나메 앞에 있을 때는 보기 힘든 얼굴이었다. “히구치 선배, 보기보다 꽤 어머니를 생각하네요.” 한번 놀려 봤더니 카나메가 머리를 긁적이며 부끄러워했다. “그, 그렇지도 않아.” 허탈하게 말하는 카나메의 모습이 귀여워서 나는 쿡쿡 웃었다. 카나메는 점점 더 얼굴이 빨개졌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