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은 지금 어디에나 존재한다(omnipresent). 현대인은 삭막한 병원에서 태어나 아플 때마다 수시로 병원을 찾는다. 비싼 비용에도 불구하고 매년 건강검진을 받고, 첨단 기계에 의존한 채 생명을 연장하다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처럼 현대의학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다. 불과 수십 년 만에 40세에도 미치지 못했던 평균수명을 100세를 바라볼 정도로 연장시킨 공로가 바로 현대의학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이 과연 만병통치일까(omnipotent)? 현대의학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혹시 우리 몸을 더 해치고 있지는 않을까? 이 책은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담고 있다.
현대의학의 가장 큰 단점은 기계적인 진단 속에서 인간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100여 년 전만 해도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세균이 발견되면서 수십만 년간 인류를 괴롭혀오던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질환은 특정한 원인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특효 치료가 있다는 개념이 생겼다. 이로부터 비롯된 현대의학의 미시적 관점은 특정 질환에서 특정 원인만을 찾으려고 하는, 인간이 배제되고 기계적인 치료가 제공되는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세균이나 특정한 원인에 의해 병이 생긴다는 것은 지금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론이지만, 150년 전까지만 해도 전혀 낯선 가설이었다. 고대 이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질병은 대체로 몸 전체의 균형이나 조화와 관련된 문제였다. 18세기 중엽까지의 서양의학은 오늘날과는 달리 동양의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유래된 서양의학은 네 가지 체액의 균형 여부가 건강과 질병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 이론의 요체인 ‘4체액설’이 그 핵심이다. 4체액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 등 네 가지 체액의 균형과 조화가 잘 유지되는 것이 건강한 상태며, 이 균형이 깨지면 병이 생긴다는 학설이다. 당연히 병의 치료보다는 예방과 식이요법 등을 강조한다. 음양의 조화와 섭생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여기는 동양의학과 매우 흡사한 면이 있다.
환자의 치료도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것이 중요했다. 네 가지 체액의 균형과 조화를 회복시키는 데 치료가 집중된 것이다. 혈액이 부족하다고 진단되면 혈액을 만든다고 여겨지는 음식이나 약초를 복용하게 해 부족한 것을 보(?하게 하고, 혈액이 많다 싶으면 사혈(??로 과한 것을 덜어냈다. 또 점액이 부족하다 싶으면 점액을 만드는 음식이나 약초를 섭취하게 하고, 많다 싶으면 구토나 설사를 유도해 점액을 제거해 균형을 찾도록 했다. 다시 말해 서양의학도 동양의학처럼 전인적인 특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의학에서 인간의 소외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지금 새내기 의사들에게 청진기는 일종의 장식품일 뿐이다. 젊은 의사들은 환자의 안색을 살피거나 폐음이나 장음을 듣거나 무릎반사 등을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수련을 받아본 적이 없다.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물어보지 않으니 환자의 대답 속에 들어 있는 중요한 질병정보를 놓치기 일쑤다. 사람마다 병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한 가지 틀에 짜맞추려다 보니 오진도 많아진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기회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선 환자를 각자 고유한 개인으로 진단하고, 개개인에 맞는 처방을 내리는 전통의학의 관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육체와 정신, 개인과 환경이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전인적인 치료를 제공하는 보완의학의 장점을 현대의학에 접목시켜야 하는 것이다.
현대의학이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인류가 건강장수의 꿈에 바짝 다가선 건 지금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제도권 의학의 덕분이다. 하지만 현대의학이라고 무조건 맹신해선 안 된다. 과학적 근거가 희박한 것도 있고, 각종 진단기법이나 약물의 위험성이 무시 못 할 수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환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의학이 도움을 주는 측면과 현대의학의 위험성을 모두 인식하고, 치료에 동의하기 전에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무조건 병원을 찾기보단 먼저 자연치유력의 핵심인 면역기능을 강화하고, 각종 유해물질 등을 피할 것을 권유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갖고 있다. 과도하게 약에 의존하거나 이것저것 검사를 하다간 오히려 우리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충헌 (KBS 의학전문기자,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