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을 통해 발견하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회혁신의 열기를 온 사회에 불어넣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단체 뒤에는 중간 지원 기관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기관들이야말로 영국 사회에서 사회혁신이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중추적 구실을 한다. 사회적 기업들이 지닌 사회혁신의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돈을 대거나 재정 지원을 주선하고, 다양한 강좌와 교육, 훈련을 통해 그런 실천이 잘 진행되도록 돕고, 경영·기술·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적 노하우를 전달하면서 사회적 기업과 사회혁신의 노력이 성공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사회적 기업과 사회혁신이 가능한 분위기와 구조를 만들어내려면 이런 다양한 중간 지원 기관들이 먼저 활성화돼야 한다.---p.10

‘큰 사회’라는 개념은 우파와 좌파를 모두 겨냥한 개념이라고 한다. 보수당은 사회를 돌보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준 대처 시대를 염두에 두고 ‘사회’를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좌파를 향해서는 너무 비대해진 국가를 자원 봉사와 시민단체가 대체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캐머런은 마약이나 가족 해체 등 사회적 질병을 보수당 정부에서 풀뿌리 단체나 활동가들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캐머런은 작은 정부는 정부의 기능이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정부라고 말한다. 영국의 보수당은 이렇게 새로운 생각과 도전으로 거듭나고 있다.---p.78

크라이시스(Crisis)라는 노숙인 관련 전문 기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75퍼센트의 기업 담당 응답자들이 노숙인을 고용하지 않겠다고 답변했고, 이미 한 번 고용한 기업의 경우는 75퍼센트가 만족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것은 노숙인들이 일단 직업을 가지게 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리니티는 노숙인들을 고용해서 그런 직업 경력과 기회를 준다. 그렇게 해서 완전히 사회에 복귀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p.100

HARCA는 주택 및 재생 커뮤니티 협회(Housing And Regeneration Community Association)의 약자다. 이 단체는 사회적 소외가 심하고 경제적 박탈이 오래 지속된 포플러 지역에서 사회적, 도시적, 경제적 재생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법적으로는 비영리 단체고 등록된 자선 단체다. 이런 단체에 지방 정부가 자산을 넘겨 스스로 소유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게 신기하다. 지역 사회와 주민들을 위해 시민단체가 훨씬 더 효과적으로, 더 친밀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p.161

커뮤니티 링크는 학교에서 퇴학당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한 아이가 이렇게 퇴학당하면 그 가족의 평온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서 다시 학교로 돌려보내는 게 이 단체의 목표다. 작년 한 해 120여 명의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중 96퍼센트가 학교로 돌아가거나 대학에 진학했다고 한다.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지역 지식, 지역 이해(local understanding), 지역 협력(working with local people)이라고 답한다. 우문현답이다. 결국 지역에 해답이 있는 것이다. ---p.193

NESTA 운영의 핵심 원리 중의 하나는 늘 파트너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이다. 혼자서는 외롭고 약하다. NESTA의 사업은 주로 그 분야에서 최고의 평판을 가지고 있는 단체나 기관에 위탁하거나, 공동으로 진행한다. 기금 조성이나 운영도 독자적으로 하지 않고 반드시 기업이나 다른 재단들에게 참여 기회를 준다. 혁신 운동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단체와 넓은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형성한다. 이 단체들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NESTA의 주된 일이다. 그러나 돈만 주고 마는 게 아니다. 늘 함께 논의하
고 검토하고 평가한다. 상위 기관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일하는 작은 단체들도 중요한 동반자로 생각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단체들과 협력해 제3의 기관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혁신의 사이클을 만든다.---p.201

UKSIF의 핵심 활동은 회원들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일반 대중과 여론 주도층을 교육하며,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 책임을 부담하는 투자와 재정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반 투자 회사나 투자자들이라면 모두 도망갈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면 투자를 꺼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영국은 그렇지 않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사회 책임 투자 규모는 10억 달러 정도라고 한다. 불경기 이후 헤지펀드는 돈이 줄었지만 UKSIF는 오히려 돈이 늘었다. 그만큼 투자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투자에 세금을 감면해주는 영국 정부의 정책도 이런 현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p.250

이 재단은 청년들이 요리사가 돼서 자신의 삶을 바꿀 기회를 만들어준다는 제이미 올리버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2002년 영국의 방송사 채널4는 〈제이미스 키친(Jamie’s Kitchen)〉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15명의 빈곤층 청소년들을 요리사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뒤 제이미는 이 청년들을 견습 요리사로 고용해 식당을 여는 실험을 했다. ‘피프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레스토랑은 런던에서 가장 성공한 식당 중 하나가 됐다. 한 지역에서 레스토랑 피프틴이 문을 열면 그 지역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그 식당을 지원하고 요리사 수습 과정을 운영하기 위해 재단이 만들어진다. 식당의 수입은 재단으로 들어간다. 청년들이 수습 과정을 시작할 때부터 그 과정을 수료하고 취업하는 순간까지 이 재단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p.298

에드 로저슨(Ed Rodgerson)은 글래스고의 경찰관이다. ‘@hotelalpha9’이라는 트위터 아이디를 쓰는 이 경찰관은 블랙베리로 경찰 서비스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트위터에서 상당히 유명해졌다고 한다. 피드백을 통해 현장에서 개선되는 사
례들도 생겼다. 이런 좋은 변화는 대중이 경찰을 신뢰하게 하고, 시민과 경찰이 좋은 관계를 맺게 만든다. 공공 서비스에서 수요자, 소비자, 고객인 시민들의 목소리, 지역 풀뿌리 단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다. 듣는 것의
위대한 힘인 것이다. 어느 나라든 경찰을 비롯한 공공 기관의 조직 문화는 고루하고 관료적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를 바꾸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조직을 혁신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p.324

비영리 단체의 최대 약점이 회계와 재정 분야다. 망고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고 강화하기 위해 1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망고가 돕는 단체는 크고 작은 모든 비영리 단체, 그리고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비영리 단체를 포괄한다. 기본적으로 망고는 비영리 단체의 직원들에게 회계·재정에 관한 교육을 해준다. 회계·재정 전문가들에게도 교육을 하지만 주된 대상은 일반 직원들이다. 일반 직원들은 막연하게 회계나 재정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다. 예산을 어떻게 계획하고 실행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 운영의 리스크는 무엇인지 가르친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세상을 요리한다<br/>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이 들려주는 사회혁신 레시피!<br/>정부가 못하는 일, 우리 힘으로 한다 ―<br/>장애인 고용을 해결하는 친환경 비누 회사,<br/>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에너지 자립 마을,<br/>사회적 기업을 돕는 로또 기금에서 범죄와 싸우는 디자이너까지,<br/>세상을 움직이는 지역과 시민의 힘을 만나다.<br/><br/><b>제이미 올리버, 도마 위에서 세상을 요리하다</b><br/><br/>쉽고 즐거운 요리법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인기 스타가 된 영국의 훈남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 그런데 제이미 올리버는 음식만 요리하는 게 아니란다. 음식이 아니면 무엇을, 어떻게 요리한다는 걸까?<br/>올리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피프틴. 피프틴의 요리사는 모두 저소득 가정 출신의 청소년이다. 빈곤 계층의 아이들이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게 교육하고, 이 아이들의 취업을 돕는 것이다. 피프틴은 세계 각국에 지점을 두고 벌써 몇 년째 젊은 요리사를 길러내며 영국 사회의 빈곤층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제이미 올리버는 자신의 영역에서 음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요리하고 있는 것이다.<br/><br/>영국 사회에는 지금, 이런 ‘사회적 요리사’들이 활약하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정부의 구실로 여겨온 빈곤 해소, 사회 통합 등의 문제를 시민사회와 지역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하고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 발전을 주도해온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이 크고 작은 시민사회부터 정부, 재단, 기금과 언론까지, 새로운 영국을 요리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 ―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의 영국 사회혁신 리포트》는 영국 사회의 변화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혁신 사례를 들려준다.<br/><br/><b>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새로운 영국을 이끄는 ‘사회적 요리사’들을 만나다!</b><br/><br/>영국 사회혁신의 심장부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하고 있는 것은 단연 시민사회와 지역 사회다. 박원순이 가장 먼저 찾아간 ‘영 파운데이션’ 같은 단체가 바로 영국 시민사회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곳이다. 이 단체의 성격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영 파운데이션은 연구와 조사를 통해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진단하기도 하고, 스스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벌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며, 다양한 사회적 기업과 시민단체가 탄생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실도 한다. 사회혁신의 싹을 틔우는 인큐베이터인 셈이다.<br/>박원순은 이런 큰 단체의 지원을 받아 꾸준히 생겨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지역 사회의 실천에도 주목한다. 영국 생수 산업 4위에 오른 친환경 생수 기업 벨루, 시각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비누 회사 클래러티 등 일반 기업 못지않게 큰 규모의 사회적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은 주로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자기가 사는 지역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형태의 활동을 하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함께 예술 활동을 하며 노인 세대와 어린이들이 어울릴 기회를 만들어주는 매직 미, 노숙인 자립의 기회를 마련하는 트리니티, 시민들 스스로 자기 동네의 도로나 시설에 생긴 문제를 공공기관에 신고해 수리하는 픽스 마이 스트리트 같은 단체는 지역 사회 기반의 사회적 기업들이다. 그리고 이런 수많은 소박한 상상력이 모여 영국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br/><br/>영국 사회의 크고 작은 풀뿌리 실천 사례 뒤에는 이런 활동을 지원하는 여러 기관과 재단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다. 로또 기금의 기부를 받아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NESTA,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행정 서비스를 개혁하는 싱크 퍼블릭, 기부 문화 발전을 독려해 사회 변화를 이끄는 CFN, 다른 곳에서 지원을 받기 쉽지 않은 사회혁신 활동에 손길을 뻗는 에스메 페어베언 재단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중간 지원 기관과 재단들은 크고 작은 사회적 기업과 시민사회 활동이 꽃필 수 있게 넉넉한 토양을 만들어주는 구실을 한다.<br/><br/>박원순은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손잡으려 하는 정부의 변화에 관해서도 언급한다. 영국 총리인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은 당선 전부터 ‘작은 정부, 큰 사회’를 주창하며 시민사회와 지역 사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런 영역의 활동가들과 함께 일할 것을 다짐했다. 보수당의 이런 선언에 의구심을 품고 정권 교체 뒤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영국의 시민사회는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 정권 교체 한 번에 일희일비해야 하는 한국과 달리, 영국은 이미 시민사회를 뒷받침하는 여러 지원 기관과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풀뿌리 실천’의 중요성에 합의하고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힘쓸 때, 영국처럼 다양한 아이디어와 실천이 뛰노는 사회적 기업의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br/><br/><b>새로운 상상력으로 세상을 요리하는 사회혁신 레시피</b><br/><br/>《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는 사회혁신의 에너지가 활발하게 흐르고 있는 영국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국의 시민사회와 사회적 기업, 지역 사회 활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정부, 재단, 시민사회 등 각 영역이 따로 놀지 않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갈 때 사회혁신의 원동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정부와 재단이 밀어주고 시민사회와 단체들이 당겨줄 때, 어느 하나 앞서가지 않고 사회 전체의 합의가 형성될 때 작은 기업과 재기발랄한 개인들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영국 시민사회를 구석구석 돌아다닌 저자 박원순이 이 책에서 그려내는 영국 사회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한다. 지금 여기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세상을 요리하려는 사람들은 《올리버는 어떻게 세상을 요리할까?》를 펼쳐보자. 한발 먼저 시작한 영국의 동료들이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알려주는 레시피를 전해들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