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영국의 상류 계급 출신으로 두 아이의 엄마이자 보석업계에서는 성공한 사업가이다. 그러나 사업과 가정을 동시에 돌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법.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사업과 가정을 넘어 그녀 자신의 삶조차 점점 피폐해져만 갈 뿐이었다. 무엇인가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딸처럼 여기던 캐머런의 삶과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캐머런의 죽음을 계기로, 그녀는 전쟁고아, 절대빈곤자, 약물 중독자를 돌보는 자선단체와 기독교 유적지를 탐험하는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성지로 알려진 메주고리예 방문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남겼다. 메주고리예는 그녀가 살고 있던 스코틀랜드에서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타고 장시간 버스를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을 방문한 이후 그녀는 프로젝트스코틀랜드라는 단체를 설립한다. 우여곡절 끝에 이 단체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2008년에는 2천 명의 스코틀랜드 청년들이 연 2백만 시간동안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이 일로 프로젝트스코틀랜드는 그해 ‘올해의 스코틀랜드 사회적 기업 상’을 받았다. 한 아이의 죽음이 그녀가 지속해오던 삶의 형태를 송두리째 변화시킨 것이다. --- 「첫 번째 이야기,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줄리아 오길비」 중에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영국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 고든 브라운의 정치적, 종교적 삶을 변화시킨 사건은 그의 딸 제니퍼로 인해 시작되었다. 제니퍼의 출생은 고든 브라운 부부에게 형용할 수 없는 행복을 주었다. “정말 기뻤습니다. 첫 아이, 딸을 처음 보았을 때의 행복감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제니퍼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출산 예정일보다 2개월 일찍 미숙아로 태어났기에,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아질 거란 희망도 잠시, 이내 그 희망은 사라지고 아이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아기는 태어난 다음 주 일요일에 유아 세례를 받은 뒤, 월요일 다섯 시에 생을 마감했다.
이 세상에서 10일 간의 삶을 살았던 제니퍼의 삶에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브라운 부부는 이렇게 고백한다. “제니퍼의 죽음은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열흘이 전부였는데, 그 열흘의 한 순간 한 순간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1분 1초도 절대 허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열흘 동안 부모는 아주 많은 걸 할 수 있습니다. 아기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아기는 부모의 목소리와 손길을 알고 있음을 부모는 느낄 수 있습니다.”
브라운 부부는 여느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식의 죽음 앞에서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좋은 일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제니퍼의 경우처럼 어린 아이들이 특별히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일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제니퍼 브라운 연구 재단”을 설립한다. 이 재단은 현재 임산부와 신생아들을 돕기 위해 연구를 하고 있으며 영국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질병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어린이들을 위해 백신을 접종하려고 한다. 제니퍼 브라운은 비록 두 손으로 꼽을 날만 살았지만, 이 지상에서 살았던 그 짧은 생은 전 세계 갓난아기들과 어린이들에게 강한 영향을 남겼으며 지금도 남기고 있다. --- 「두 번째 이야기, 사랑하는 제니퍼의 죽음, 고든 브라운」 중에서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스태포드 스미스는 어느 한 순간이 아니라 자라면서 주위의 영향으로 차츰 인생의 길을 바꾸어 간 경우다. 풍요로운 어린 시절, 조울증 환자이지만, 권위에 대한 저항의식을 가르쳤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급작스런 파산과 죽음. 마지막으로 인권변호사로서 사형수의 변호를 맡으며 그의 가슴속에는 소위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의식, 그리고 무언가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라났다.
“정말 이해 못할 이상한 일은, 우리가 있는 미국,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그 나라에서 사형수는 변호사를 얻을 권리도 없다는 겁니다. 사형수는 스스로를 대표해야 한다는 말이죠. 조니라는 사람이 기억납니다. 형제가 서른 명이나 있었지만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가족은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를 찾아간 첫 번째 사람이었죠. 조니는 정신지체아였습니다.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스스로를 대표해야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특히 사형 집행이 확정된 죄수들을 만나며 겪었던 일화들은 ?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킨다.
“사람들은 니키를 죽을 때까지 괴롭혔습니다. 사형 전날 밤까지도 사형 집행 유예 가능성이 있음을 교묘하게 말해주지 않았죠. 심지어 전기의자에 앉히기 전에 머리칼을 깎이는 모습을 그의 어머니가 보게 했습니다. 니키를 진짜 죽인 건 괴롭힘과 고문이었습니다. 니키는 죽기 전에 한 순간도 마음의 평온을 가지지 못했으며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듣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 사실에 엄청난 염증과 충격을 느꼈고 그 나라를 떠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일주일을 술독에 빠져 지냈죠.”
정신지체자에 대한 편견, 혹은 인종주의나 종교, 특히 무슬림에 대한 편견 등의 결과로 사형수에게 가해지는 온갖 불합리를 목격한 그의 의식은 점점 그런 사람들을 도와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결국 법 정의와 인명 구조를 모토로 하는 리프리브라는 단체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가 말하는 인생의 모습은 이 책의 주제 그 자체이다. 그것은 바로 절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실패할 수 없는 인생의 목표라는 것이다.
“내가 평범한 공동체보다는 사형수 감방에 있는 내 고객들과의 공동체에서 훨씬 많은 시간을 살았던 이유는 죄수들이 훨씬 더 흥미롭고 아주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죄수들이 원래부터 재미있고 좋은 사람으로 타고났다는 말이 아니라 끔찍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그런 일에서 인생을 제대로 보고 가치를 찾는 몫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 인생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처럼 아주 힘든 시기도 있지만 아무리 어렵고 고약한 삶에도 긍정적인 요소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짙은 먹구름 속에도 그것을 깨고 나오는 밝은 은빛이 있듯이, 불평의 반대쪽을 본다면 우리의 삶은 한결 좋아질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들려주는 한 마디. 그는 조울증 환자였지만, 그에게 인생의 멘토를 가르친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낸다.
“만약 인생의 목표를 재정립한다면, 현실의 척박함에 희망 없이 허덕이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목표를 다시 세울 때 그 사람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불의에 대항하기 때문입니다. 이게 아버님이 가르치신 위대한 교훈입니다.”
--- 「세 번째 이야기, 모든 권위에 질문하라, 클라이브 스태포드 스미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