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학생들의 논술을 지도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상위권 대학에 논술시험을 쳐서 좋은 결과를 얻은 학생들의 상당수가 역사, 그 중에서도 테마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주제와 관련해서 그것의 탄생과 변화,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논술이 요구하는 문제 제시와 해결 능력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평범한 것들의 아주 특별한 역사》는 여러 가지 테마사를 한 권에 집약해 놓은 책입니다. 일반인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특히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조동기 (조동기 논술학원 대표)
너무 잘 알려진 것이어서
모르고 지나친 멋진 이야기들
세상의 모든 성공에는 성공담이 있고 실패에는 실패담이 있다. 이렇듯 뭔가 새로운 것이 출현할 때에는 그것의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평범한 물건에도 아주 특별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평범한 물건들이기 때문에 거기에 숨겨진 이야기가 특별한 것인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거나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이 책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제스처에서부터 이발소를 나타내는 빨갛고 하얀 줄무늬 원형간판에 이르는 상징적인 것과 작은 옷핀에서부터 최신 휴대전화에 이르는 아주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것까지, 우리가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흥미로운 '탄생설화'를 미니 에세이 형식으로 싣고 있다. 대부분은 '너무 잘 알려진 것들'이기 때문에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들이다. 사실 우리가 수시로 하는 동작이나, 항상 사용하는 물건들, 예를 들어 노크나 신호등, 혹은 지폐나 신용카드가 우리에게 어떤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 책을 펼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이제야 접하게 되었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아마 책을 읽어 가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의 바로 '눈앞'에 무릎을 치며 감탄할만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그것은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놀라운 이야기들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바지에 달려 있는 호주머니가 쌈지주머니나 지갑이 변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옷을 입든지 반드시 벨트를 둘렀다고 한다. 이 벨트에 귀중품을 넣은 쌈지주머니나 지갑을 매달고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소매치기들의 원조 격인 '지갑 도둑'이 기승을 부렸다. 사람들은 지갑 도둑들로부터 주머니나 지갑을 보호하기 위해서 겉옷에 구멍을 낸 후에 그 안쪽에다 귀중품을 넣어서 다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호주머니의 기원이다. 재미있는 것은 '겉옷의 구멍'이 오늘날과 같은 바지주머니가 되기까지, 그 오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은 여성들의 바느질 기술이었다. 그럼에도 바느질 기술을 가진 여성들은 변함없이 귀중한 물건을 쌈지주머니나 치마 속 깊숙한 곳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리고 오늘날 거리를 활보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왜 편리한 바지주머니를 두고도 지갑이나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헐렁한 옷보다는 몸에 꼭 맞는 옷이 여성복의 유행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과거에 비해 한층 더 안전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오랜 전통이나 긴 역사를 가진 물건과 풍습도 상당수 수록되어 있다. 그런 것들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전설이나 구전 지식을 다루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예를 들어 서구에서 가장 널리 행해지는 제스처 가운데 하나인 '손가락 교차하기'에 관한 글은 짧지만 훌륭하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손가락을 교차시키는 제스처의 뿌리가 기독교의 십자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훨씬 앞서는 이교도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라고 막연하게 짐작했던 것을 통째로 뒤집으며 상식 혹은 짐작이 얼마나 편견에 가득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현대적인 관습의 기원 또한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다. 이젠 누구나 아는 '평화의 상징'이나 '실리 퍼티'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읽으면서 상징적인 제스처나 혁신적인 장난감 등 모든 '사물'에는 그것이 출현한 시간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탄생설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평화의 상징'에 대한 글은 이 상징을 고안한 사람의 이름과 왜 이런 상징을 고안했는지 그 특별한 목적이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만약, 이 글을 읽지 않았다면 이 상징이 수기手旗 신호로 보내는 알파벳 N과 D를 겹쳐 놓음으로 해서 핵무장 해제를 의미하도록 만든 고심의 산물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또 다른 멋진 이야기는 기술자들이 '너티 퍼티' 라고 명명했던 '실리 퍼티'를 발견하게 된 내용이다. 이 재미있는 물건은 전쟁 시에 값비싼 고무를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되?다. 결국 '너티 퍼티'라는 신물질은 원래의 용도인 군사적인 목적으로는 사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여기에 '실리 퍼티'라는 아주 귀여운 이름을 붙인 후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장난감이 되었다. 실리 퍼티는 뭉쳐서 공 모양으로 만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높이 튀어 오르고, 이것을 만화책 위에 펼쳐 놓으면 형형색색의 이미지를 그대로 베낄 수도 있다.
청바지에 관한 내용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청바지의 유래는 인도와 관계가 깊고 직물은 프랑스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이 청바지를 비지니스 아이디어로 완성해 성공시킨 장소는 캘리포니아이다. 16세기 뭄바이 인근지역에는 당시 '동가리'라는 요새가 위치하고 있었다. 이 지역을 지나던 선원들은 인디고블루(감색)의 두꺼운 면 원단을 구입했다. 이 원단은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당시 비슷한 원단을 수출하던 제노바 지역의 직물산업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이 원단은 블루 드 젠느bleu de G?nes, 즉 '제노바 블루'라고 알려졌고 이 원단으로 만든 바지를 '블루 진', 즉 청바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를 수입한 주요 국가 가운데 하나가 프랑스였는데 프랑스에서는 원단을 수입한 항구의 이름을 따서 세르쥬 데 님serge de Nimes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데님'이라는 용어의 유래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친 사업가는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였다. 그는 내가 뉴욕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입었던 무명바지 '덩가리스'를 만든 사람이다. 당시에는 물론이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그 이름이 리바이스 청바지의 아주 먼 기원인, 인도의 한 지역에서 나온 원단을 일컫는 말인지 알지 못했다. 뉴욕 출신인 나와 는 달리 시골에서 자란 나의 아내는 그녀가 '진'이라고 하는 것을 내가 '덩가리스'라고 부르는 이유를 항상 궁금해 했다. 이제는 그녀에게 이 책에 실린 내용을 읽어줌으로써 내가 쓰는 용어가 더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반영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 수록된 짧은 글은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의 진수를 보여준다. 이 책은 자전거나 연필, 지퍼와 같은 이미 잘 알려진 물건들의 역사에 대해서도 단 두 세 단락으로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이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누군가에게는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각각의 본질을 잘 요약하고 있으므로, 역사의 요지와 함께 핵심을 파악하는 확실한 요약본으로 그 가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문화적 유물'을 통해 조상들의 창조성과 재능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이 문화적 유물들을 창조하고 발명하고 개발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물건들은 말하자면 '일상적인 공학기술'의 결과물들이다. 기술사회를 살아가는 중에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대의 기술자들처럼,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이 고안하고 수정한, 그래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문화적 유물'들은 모두 문명화 과정 자체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세상을 보다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어깨를 으쓱하는 제스처가 '가장 본능적이며 어디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이고, 손바닥을 위로 올리는 동작은 말을 하지 않고도 '모른다'라는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어깨를 으쓱하는 동시에 눈썹을 치켜뜨고 입술을 꽉 다물면 '생각해 보겠다'는 의미라는 것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설명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동작의 의미나 이유, 그리고 미묘한 의사소통방법에 대해 재고해 보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사람에 따라서 책을 읽어나가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이 책도 책을 읽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에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도 좋다. 하지만, 이 책은 여느 책과는 달리 아무 곳이나 무작위로 펼쳐서 읽을 수도 있다.
다 읽은 후에도 책장에 두었다가 만우절의 기원이나 복층주택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때 다시 꺼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정보도 풍부하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독창적인 사고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도 소개되어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옛 것에 대한 추억과 오늘날의 것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명저라고 불리는 많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세상과 사람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물건의 탄생이 사람들의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확인하면서.
헨리 페트로스키 (듀크대학교 도시공학과 및 역사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