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해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해 준 아름다운 실천가 비노바 바베. 간디의 제자이자 간디 사상의 진정한 계승자로서 그와 함께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사회개혁가, 교육자로 손꼽힌다. 인도 카스트의 최고 계급인 브라만으로 태어났으나 인도의 독립과 가난한 이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사회가 천시하고 경멸하는 온갖 노동을 실천하는 육체노동자가 되어 평생을 헌신하였다.
비노바는 영적인 진리와 실천적인 행동을 구체적으로 담아 낼 수 있는 삶의 길을 찾던 중 간디를 만났고, 인도의 독립과 재건을 위한 그의 활동에 합류하였다. 그리하여 간디와 함께 1940년 비폭력 '생명평화운동(사티아그라하)’을 이끌었다. 간디 서거 후 명상과 사회혁명을 위한 삶을 살다가 1951년 당시로서는 혁명과 같았던 ‘토지헌납운동(부단운동)’을 시작했다. 13년 동안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지주들에게 땅이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6분의 1의 토지를 나누자고 호소했다. 그는 부자들에게 “도둑질은 범죄이지만 많은 돈을 쌓아놓는 것은 도둑을 만들어 내는 더 큰 도둑질입니다. 돈이 많다는 사실로만 존경받는 자리를 내주면 안 됩니다. 만약 당신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면 땅 없는 가난한 이들을 여섯 째 아들로 생각하고 그를 위해 소유한 땅의 6분의 1을 바치십시오!"라고 말하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부자의 이기심은 벽과 같지만 그 벽에도 작은 문은 있습니다. 벽을 깨고 들어가기보다 문을 찾아 들어가십시오. 부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선함’의 문을 찾아 들어가려면 먼저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야 합니다”라고 호소했다. 이런 그의 호소와 헌신에 많은 이들이 깊이 감동하여 마침내 약 500만 에이커를 헌납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단운동 이후 그는 자신이 세운 여성공동체 ‘브라마비디야 아쉬람’으로 돌아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며 기도와 명상수행, 교육활동을 펼쳤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깨닫자 모든 곡기를 끊고 단식으로 명상 중에 조용히 생을 마쳤다.
영적인 진리 추뢱, 비폭력의 실천 의지, 아름다운 노동의 가치, 세계의 평화와 평등의 신념을 주장한 비노바는 “사랑과 사상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없다. 조직도·정부도·이념도·경전도·무기도 사랑과 사상을 당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랑과 사상이 진정한 힘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모든 경계를 허무는 사랑만이 변혁의 힘이라고 믿었던 그의 삶의 길과 인격적인 모범, 깊은 정신세계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해 준다.
1951년 9월 12일 비노바 바베의 부단운동에 참가하게 된 구탐 바자이는 당시 열두 살 소년이었다. 비노바의 여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라며 어머니가 건네 준 작은 카메라로 비노바의 모습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 평생 비노바 바베와 동행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사진들은 1951년에서 1982년 사이에 촬영한 것들로, 부단 운동과 아쉬람에서 비노바의 행적을 사진에 담았다. 구탐 바자이는 온 세상에 사랑의 메시지가 퍼져 나가기를, 사람들의 마음이 한데로 모이기를 바랐던 비노바의 희망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사재를 털어 이 책을 출판했다. 현재 그는 파우나르 비노바 바베 아쉬람에서 지내고 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종교 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인도 교환학생 시절 인도와 연을 맺은 후 지금껏 그 연을 풀어가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인간의 통전적인 영성을 기반으로 하는 평화운동에 있다. 현재 인도 중부 간디와 비노바 아쉬람에 근접해 있는 와로라(Warora) 지역에 간디와 비노바 바베의 정신을 이은 ‘씨알 아쉬람’을 개원했다. 저서로는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함석헌 명상집: 너 자신을 혁명하라』『30분에 읽는 예수』『피할 수 없는 만남 : 종교간의 대화』 『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외에 다수의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