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매미가 울면 매미가 운다고 쓰면 되는 거라고 언니는 내게 가르쳐주었다. 네가 보고 듣고 느끼는 걸 날마다 적어봐. 백지와 이야기 나누듯이 말이야.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걸. 언니가 노트를 건네주며 말했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 마지막에는 귓속말로 나직이 속삭여주었다. 뭐든 자세히 기록해두면 불리할 때에도 도움이 돼. ---「A코에게 보낸 유서」중에서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그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나를 망칠 수 없다는 것도. ---「A코에게 보낸 유서」중에서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라고 과연 확신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나는 그저 내가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일 뿐, 그것의 물리적 실체나 영혼의 구성이나 모두 지금의 나와 동일한 존재라고 여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나는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당신의 나라에서」중에서
자기 삶이 쉬이 불행해지진 않으리라는 확신과 세간의 오해를 뒤집어쓰고 삶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 사이에 서 있다. 이 확신과 저 불안이 모두 명료해서 너는 당황스럽다. ---「청순한 마음」중에서
그래, 그따위로 딸딸이나 치면서 살아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랑 내가 정말 잘못했다, 를 반복해서 뇌까리면서. ---「버드아이즈 뷰」중에서
오래가지 않을 가을 날씨였다. 그런 바람과 그런 볕, 마치 축복처럼 여겨지는 그런 날씨는 일 년에 몇 날 되지 않는다는 걸 설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코끝이 시리고 정수리는 뜨거운 가을날에 가슴 밑바닥부터 뭉클하게 올라오는 벅찬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설혜는 몰랐다. 빙긋 웃는 선의 얼굴이 기적처럼 여겨졌다. 선이 너무 예뻐서 설혜는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싶었다.
내가 몰랐던 나의 엄마, 아빠를 발견한다. 잊고 지낸 사촌언니, 중학교 선생님, 소식 끊긴 대학 선배, 기억하고 싶지 않은 동창을 발견한다. 세대와 시간, 공간을 과감하게 넘나들며 러시아 고려인이었다가 자이니치였다가 한국-일본 혼혈인으로 등장하던 그들이 어느새 2017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내가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방대하고 촘촘하다. 내게 이 책은 아주 예리하고 서늘한 ‘환상특급’ 시리즈다. _이경미(영화 [비밀은 없다] 감독)
『아내들의 학교』를 읽으며 당신은 이 소설집 속 여성들과, 이 소설집을 쓴 소설가와, 그해 죽은 여성들, 그녀들을 죽인 자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음을 재차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 한 권의 소설은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무서운 소설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최선을 다해 상황을 알려주는 소설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생전 한 번도 보지 못한 시선으로 앞장서 싸우려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박민정의 소설은 가장 빨리 도착한 지금 이 시대의 소설이자 가장 희망적인 종류의 소설이다. _김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