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2009년 8월 14일, 우리는 하나같이 엉성한(?) 모습으로 10시 반에 서울 창동역 하나로 마트 앞으로 모였다. 3차 심사에서 만나 낯이 익은 친구들도 꽤 있었지만, 반 이상은 처음 보는 듯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무엇보다 세면도구와 수건이 필요 없을 거라는 얘기에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허걱, 산속에는 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페트병에다 담아 가야 한단다. 그러니 씻을 물이 없는 건 당연한 일. 배낭에다 물이 든 페트병을 담아 갈 생각을 하자, 가능한 한 짐을 모조리 빼고 싶어졌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등을 짓누르는 배낭을 메고 미친 듯이 햇빛이 내리쬐는 도로로 걸어 나갔다. 우리가 받은 주의 사항은 단 두 가지! 첫째는 체력의 한계를 측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라는 것, 둘째는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말라는 것이었다. 정 힘이 들면 차라리 뒤로 처지라고 했다.
10시 정각, 드디어 첫 산행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지옥 훈련이었다. 태양은 우리를 태워 죽이려고 작정한 듯이 열에너지를 마구마구 발산해 대었다. 정말이지 땀이 집중호우처럼 무자비하게 쏟아져 내렸다. 내 몸은 마치 압력밥솥이라도 된 듯이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스팀이 차올랐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고 숨은 정수리까지 차오르고 정신은 혼미해지고?…….
더 이상은 도저히 못 걷겠다고 머릿속으로 수백 번도 더 생각하면서, 내 것 같지 않은 다리를 기계적으로, 아니 거의 본능적으로 이동시켰다. 땅만 보고 묵묵히 걸으면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했다.
한편으로는 지금쯤 학교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책상 앞에 앉아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친구들이 떠올랐다.
‘참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구나.’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는 생각은 이때뿐만 아니라 훈련이 끝날 때까지 힘들 때마다 내 머릿속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주문처럼 나는 그 말을 외치고 또 외쳤다. 요즘 들어 부쩍 공부가 힘들고 짜증스러웠던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 일인지 몇 번이나 가슴속에 새기고 또 새겼다.---pp.32~34
chapter 2. 내 발길 닿는 곳이 바로 길이다
얼마 후, 우리는 백운대 근처의 백운 슬랩으로 향했다. 백운 슬랩은 백운대에서 인수봉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경사가 45~60도 정도로 암벽 타기의 걸음마를 뗄 때 오는 곳이라고 했다. 암벽을 어떻게 타야 하는지, 대장님과 지도 선생님들이 시범을 보여 주었다.
두 명씩 암벽 타기를 시작했다. 어느새 내 차례가 왔다. 나는 “4기 박주나, 출발 준비 완료!”를 외친 뒤 출발을 했다. 그야말로 줄 하나에 의지해서 암벽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언뜻 봐서는 줄 당기기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나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막상 줄을 잡고 위로 올라가자, 팔 근육이 장난 아니게 당겼다. 게다가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의 목숨이 내 두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 보니 겁이 더 나기 시작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부지런히 줄을 당겼다. 차 대장님이 알려 준 대로 올라가려고 무진장 애를 썼지만, 마치 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게다가 한 발을 떼면 뒷발이 미끄러져서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았다.
경사가 높았다. 발아래에 있는 대원들을 보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렸다. 다리가 엄청나게 떨리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이대로 내려가고 싶었다. 아니 내려갈 수도 없었다. 이게 꿈이기를 바랐다. 매달린 채로 눈을 뜨면 땅에 닿아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절대로 한눈팔지 말자.’
그런데 아뿔싸, 이게 웬일일까? 내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더 이상 못 하겠어요!”
로체 청소년 원정대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금기어나 마찬가지의 말인데, 내가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결국 차 대장님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차 대장님한테 의지한 채 가까스로 암벽 위로 올라갔다. 고소 공포증이 정말 미웠다.
차 대장님의 도움을 받아 위로 올라가긴 했지만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내가 허공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절대로 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내가 울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높은 곳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pp.85-88
chapter 3. 텐트도 없이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고?
아침 운동을 잽싸게 마친 후, ‘아름다운 동행’이 진행될 팔공산 진남문 입구까지 차량으로 이동을 하였다. 차 안에서는? 아무 말 없이 잠을 잤다. 기록을 하기에 좋은 시간이었는데, 로체 청소년 원정대에서는 엉덩이를 대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잠이 쏟아졌다.
모세는 팔공산의 유명 인사였다. 이상윤 선생님과 차 대장님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이 모세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를 볼 때마다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이상윤 선생님을 보고는 “털보 아저씨!”라고 외쳤다. 그 외에도 원숭이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등 모세만의 호칭이 따로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누구세요?”라는 말을 먼저 했다. 해마다 보는 사람들인데도 모세에게는 기억되지 못하고 있었다.
“모세야, ‘누구세요?’라고 묻기 전에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 보면 어떨까?”
“왜?”
“누군가를 만나면 인사를 먼저 해야지. 게다가 네가 작년에 만났던 사람들이잖아.”
모세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모세가 알아들었다고 여겼다. 그 뒤부터 모세의 첫마디가 “안녕하세요? 누구세요?”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세에게 ‘형’이었다. 모세한테서 가장 많이 불렸을 나의 자랑스러운 이름?…….
“형, 끝말잇기하자. 형, 그거 뭐야? 형, 얼마나 남았어? 형, 그 배낭 뭐야? 형, 왜? 형, 오이 나 줘.”
모세는 확실히 활발한 성격이었다. 그러한 성격이 모세와 더 친해지게 했고, 또 힘겨운 산행에서 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었다. 〔……〕
‘모세야, 어느 산에 오르든 너를 꼭 기억할게.’---pp.135-136
chapter 5. 나마스테, 네팔
드디어 비행기가 네팔 공항에 도착했다. 네팔 공항은 벽돌로 된 단출한 건물이었다. 벽돌로 된 건물을 처음 본 순간, 마치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9와 3/4 정거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첨단 시설로 지어진 인천 공항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이런 고풍적인 분위기의 공항도 나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카트만두 거리는 꽤 충격적이었다. 21세기의 첨단 문명과 완벽하게 단절된 모습이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쓰레기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마치 온 도시가 쓰레기 매립장 같았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으며 부지런히 손을 흔들었다. 그러다 한 순간, 나의 손짓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아이들은 손이나 막대기로 쓰레기를 휘저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것을 곧바로 입에 넣기도 하고 뒤에 있는 바구니에 담기도 했다.
TV에서 가난한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음식물이나 팔 만한 물건을 찾고 있는 장면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지나쳤는데, 그런 광경을 실제로 보고 있으려니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버스에 타고 있는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알 수 없는 감정이 내 속으로 흘러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삐질 흘렀다. 배낭 안의 간식을 조금이라도 나눠 줄까? 조금 전까지 버스 안에서 태연하게 간식을 까먹고 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만일 저 아이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창 유치원에서 뛰어놀 나이인데?…….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새삼 온몸으로 와 닿았다.
그사이에도 버스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머릿속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못한 채 호텔에 닿았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도, 잠들기 전에 샤워를 할 때도 버스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내가 지금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pp.213-216
chapter 7.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김성태 박사님의 검진을 마친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준비해 간 옷을 나눠 주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을 때, 기다랗게 줄을 서 있는 아이들을 보자 가슴이 설레었다. 아이들은 낯선 우리들에게 망설임 없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아이들의 미소를 보자 이내 긴장된 마음이 풀렸다.
의료 봉사를 받은 아이들에게 옷을 나누어 주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며 골라 주는 대로 받아들고 돌아가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원하는 옷을 적극적으로 고르기 시작했다. 현지 아이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눈에는 눈곱이 잔뜩 끼어 있었고, 누런 콧물은 얼굴 여기저기에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두 볼과 이마에는 새까맣게 땟물이 흐르고,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기름때가 두껍게 끼어 있었다. 우리를 향해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귀여우면서도 마음 한쪽이 짠했다.
봉사가 끝나 갈 때쯤, 할머니와 남자아이가 다가왔다.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와 손자 둘이 사는데, 이 마을에서 가장 가난하다고 귀띔해 주었다. 할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손은 나무껍데기처럼 거칠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겨울용 점퍼를 입고 있었는데, 이 남자아이는 얇은 스웨터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
옆에 있던 현지인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아이가 가진 옷이 달랑 그것 한 장뿐이라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나는 날마다 거울 앞에 서서 어떤 옷으로 입을지 고민을 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유행에 맞춰서 옷을 사곤 했는데?……. 지금 이 아이는 옷을 고르는 고민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사치를 부렸는지 절실히 알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줄은 아직도 길었지만 준비해 간 옷이 동이 나서 더 이상 나눠 줄 수가 없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옷을 나눠 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받은 것보다 주는 기쁨이 몇 배나 더 크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 소중한 날이었다. ---pp.263-265
chapter 8 드디어 정상을 향한 도전
드디어 로프 설치가 끝났다.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며 정상으로 올라갔다. 숨을 쉬기조차 힘든 거센 바람에 눈도 못 뜰 지경이었다. 정상을 코앞에 두고 안전벨트가 엉키는 바람에 가까스로 다시 멨더니, 이번에는 아이젠이 로프에 끼어서 발을 떼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상에 도착했다. 야호!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올랐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물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해 줄 말이 별로 없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얼떨떨했다.
‘그래도 왔구나. 결국 내가 해냈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을 뿐이다. 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탄식 어린 한숨도 함께 나왔다.
함께 올라오지 못한 대원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로 정상에 올라오고 싶어 했던 막내 시후를 대신해서 끝까지 올라왔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만약 중간에 포기했다면 대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나와 경남이가 아닌 우리 대원들 모두가 힘을 합쳐서 여기까지 온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나 혼자서 히말라야를 올랐다면 과연 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 절대로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올라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자만심과 거만한 마음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고산병에 시달리지 않았고,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누구보다 강렬했으니까.
하지만 곁에서 ‘힘내! 할 수 있어!’라며 이끌어 주는 힘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 내지 못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로체 원정대 스무 명이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을 응원하고 배려했기 때문에 히말라야 정상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pp.315-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