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9월 3일 샌프란시스코의 한 법정, 판사의 손에는 12명의 배심원들에게 전달 받은 평결 문이 들려 있었다.
“공의의 하나님,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신음처럼 기도가 저절로 나오는 긴장된 순간이었다. 드디어 판사가 입을 열었다.
“피고 이철수에게 배심원 전원 합의로 무죄를 평결합니다.”
방청객의 반 이상이 영어를 모르는 이민교포들이어서 다들 눈만 끔벅끔벅 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몇 분전까지만 해도 변호사로서 법정에서는 끝까지 정숙해야 한다고 말한 내가 먼저 벌떡 일어나 120여 명의 방청객들에게 달뜬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철수는 이제 무죄예요! 무죄!”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120여 명의 환호성이 폭죽처럼 빵 하고 터져 나왔다.
“우와~ 이겼다! 이겼어!”
다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기나긴 시간을 버티며 싸운 인내의 승리였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기적이었다. 처음엔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그동안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한 성경 말씀은 사실이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우리는 믿음으로 붙들었고, 아버지 하나님은 그 믿음의 증거를 우리 눈앞에 보여 주셨다.
6년이란 긴 시간 동안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 새 힘을 달라고 기도하며 다시 일어서곤 했다. 그 값진 결과가 드디어 나타난 것이다. 120여 명의 사람들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엎드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정말이지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이었다.
하루 종일 법정에서 기도로 응원하던 상항감리교회의 송종률 목사님이 감사 기도를 인도해 주셨다. 이철수가 누군지도 모르던 내가 이 기막힌 사건을 발견하고 덤벼들던 그때, 주님께서 내게 세미한 음성으로 들려 주셨던 그 말씀이 떠올랐다.
“죽음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구하고 죽임 당하게 된 사람들을 구해 내어라 만약 네가 ‘이것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가 없다’라고 할지라도 마음을 살펴보시는 분이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시겠느냐? 네 생명을 지키시는 분이 그것을 모르시겠느냐? 그분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지 않으시겠느냐?”(잠 24:11, 12). --- pp.14-17
고 김대중 대통령은 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우리 부부를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물론 정치 입문을 반대하는 아내를 설득하는 것이 목적인 자리였다. 하지만 막상 만남을 갖자 정치 얘기는 뒷전이고 영어, 역사, 신학,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특히 신학과 관련해서 풍성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와 우리 집사람이 천주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로 종파는 다르지만, 같은 하나님을 믿기에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하오.”
당시 이희호 여사는 기독교 신자로, 고 김대중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유명한 신학자인 나인홀드 리버, 하비 콕스, 본회퍼의 사상을 논하고 신앙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마침내 개인적인 간증을 나누게 되었다. 당시 고 김대중 대통령의 간증은 지금도 그 감격이 생생할 만큼 강렬했다.
1973년 일본 도쿄에서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납치되어 대한해협 바닷물에 던져지기 직전이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안대로 눈을 가린 채 밧줄에 목이 매달려 죽음이 코앞까지 왔을 때 기도밖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예수님, 제발 절 살려 주세요.”
생명을 건 간절한 기도를 하자마자 놀랍게도 예수님이 눈앞에 서 계시는 환상이 보이는 게 아닌가!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살려 주마.”
예수님의 온유하고도 평온한 말씀이 들렸다. 그 순간 엄마 손을 절대 놓지 않는 어린아이처럼 예수님의 소매를 꽉 붙잡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그를 구해 줄 미국 CIA 비행기가 나타났고, 그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예수님을 뵌 순간 동시에 펑 하는 소리가 났는데, 나를 밧줄에 묶던 정보부원들이 ‘비행기다’ 하면서 도망가더군요. 그 비행기가 정보부원들에게 버려진 날 구해 줬죠. 비행기 도착 시간이 단 몇 초만 늦었어도 난 바다에 던져져 물귀신이 될 뻔했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걸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지금도 확신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날 살려 주신 거라고 말이오.”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님을 만났기에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다’라는 생각에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후로도 수많은 고난을 넘길 때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이 간증은 우리 부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침묵하던 아내가 튺쑥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정치하세요. 이제부터 반대하지 않을게요.”
아내를 설득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난 식사 자리였지만 결과적으로 정치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아내는 순순히 정치 입문을 찬성한다고 뜻을 바꾸었다.
“그렇게 완고하더니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뀐 거요?”
뜬금없는 아내의 말에 놀라 내가 되묻자 아내는 그때까지도 감동 어린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오늘 그분의 신앙관과 간증을 들으면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하나님을 경외하시는 분이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그분을 믿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분과 함께라면 당신이 정치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사랑을 베푸셨던 분이니 예수님을 믿는 분과 함께라면 당신 역시 올바르게 정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내의 마음을 돌이키신 것 역시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지금도 생각한다. 만약 그날 고 김대중 대통령이 신앙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 입문을 위한 설득을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아내는 끝까지 찬성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움직인 건 남편인 나를 이끌고 정치를 해 나갈 인물이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란 확신 때문이었으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유재건이란 사람을 정치가의 길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근차근 인도하고 계셨다.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우리 부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평생 정치를 안 하겠다고 쓴 ‘서약서 파기식’을 했다. 그 약속을 깨 버린 날이었으니 말이다. --- pp.58-61
육신의 아버지를 대신해 차고 넘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육신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버지를 내내 원망했다.
납북되는 그날까지 얼굴을 뵌 것이 손에 꼽을 만큼 나한테나 어머니한테 몹시 인색하게 구신 아버지, 평생 바람만 피우며 불쌍한 어머니를 돌아보지 않던 아버지, 자기 욕심을 위해 가정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던 아버지, 재산 한 푼 물려준 게 없어 한국전쟁 이후 어린 나와 어머니에게 가난의 짐을 지운 아버지…. 아버지를 미워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셀 수가 없지만 신기하게도 그 ‘원망과 미움’이 어느 날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래. 육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나 유재건이 있는 것이고, 아버지를 닮아서 좋은 머리와 좋은 목소리를 물려받은 거겠지. 아버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테니까 아버지한테 감사하자.’
평생 미워해도 절대 분이 풀릴 것 같지 않던 아버지를 용서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 받지 못해 갈기갈기 찢기고 상처 입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며 아버지를 용서하게 하셨고 오히려 감사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도 아버지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내가 잘나서 유학을 가고 변호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교만할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가난은 모면했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받았을 설움과 원망과 상처로 인해 남을 괴롭히는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가난 중에도, 실패 중에도 깨닫는 것이 없어서 세상과 타협하며 망하는 길로 갔을 것이다. 그런 내게 용서와 감사를 가르쳐 주신 하나님께 두 손 벌려 감사의 박수를 드린다. --- pp.78-79
변호사 자격시험을 처음 보고 나서 낙방을 했다. 시험을 보는 동안에도 자신이 있었고 당연히 붙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낙방을 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였지만, 다들 한 번쯤은 떨어지니까 나 역시 다음번에는 붙겠지 하며 낙심하지는 않았다.
시험에 떨어진 날, 나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더 이상 ‘탈락’은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두 번째 변호사 자격시험을 봤다. 이번에는 꼭 되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결과는 또 낙방이었다.
‘이게 웬일인가. 내가 두 번이나 떨어지다니….’
두 번째 떨어졌을 때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까지 낙방이란 없던 인생에 어떻게 변호사 자격시험에서 두 번이나 미역국을 마신단 말인가. 더구나 이제 제대로 가장 노릇을 해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는데 식구들 낯을 어떻게 본단 말인가. 낙심되고 미안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마음으로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어머니와 아내는 ‘다음번에는 꼭 되겠지’ 하며 위로해 주었지만 내심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어서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붙으리라, 마음을 다잡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다. 세 번째 시험까지 보면 1년 반이란 세월을 허송해 버리는 셈이니 반드시 세 번째로 끝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세 번째 시험을 보았다. 그런데 결과는 또 낙방이었다. 이번엔 아내가 실망하여 아예 머리를 싸매고 드러누웠다. 낙심되고 괴로웠지만 나는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고 죽을힘을 다해 공부했다. 그러나 한두 번 시험 보면 합격할 줄 알았? 변호사 자격시험은 네 번, 다섯 번, 그 후로도 계속 탈락해 무려 아홉 번이나 떨어졌다.
시험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아내는 머리 싸매고 드러눕고, 나는 바로 도서관으로 직행해서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웃지 못 할 진풍경이 벌어졌다. 그렇게 아홉 번을 떨어지는 사이 무려 5년이란 시간이 흘러 버렸다. 로스쿨 3년 공부에, 변호사 자격시험 5년, 8년이란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나이는 어느 새 마흔 살이 돼 버렸다. 어머니와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다.
미국의 다른 아빠들은 토요일이면 아이들과 야구도 하고 보이스카우트를 하면서 함께 놀아 주는데, 나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고 있으니, 미안하고 민망하고 정말이지 너무나 괴로웠다. 특히 나 대신 가장 노릇을 하며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는 아내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볼 때마다 교인 분들이 날 위해 중보기도 해주셨는데, 5년 동안 계속 떨어지기만 하니 부끄럽고 창피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게 하시는 겁니까? 아버지께서 저를 로스쿨에 기적적으로 보내 주신 것이 아닙니까? 변호사가 제 길이 아닌가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게 아버지의 뜻을 알려 주십시오. 세밀한 음성을 들려주시옵소서.”
아홉 번의 실패를 겪는 동안 저절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가장 노릇도 제대로 못 하고 시간은 시간대로 지체하니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괴롭고 힘들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내게 두 가지를 알려 주셨다.
“사랑하는 아들아, 더 좋은 변호사, 실력 있는 변호사가 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자꾸 낙방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붙자마자 제대로 변호사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낙방시키신다는 것이었다.
--- pp.146-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