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퇴전에는 4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염불퇴念不退」이니, 무명을 타파하고 불성이 드러나 곧바로 실보장엄토에 왕생하고 상적광토를 부분적으로 증득함을 말한다.
둘째 「행불퇴行不退」이니, 견사번뇌가 이미 떨어져 나가고 진사번뇌까지도 또한 완전히 타파하여 방편유여토에 왕생하고, 궁극적인 불과를 향해 계속 나아감을 말한다.
셋째 「위불퇴位不退」이니, 업을 지닌 채 범성동거토에 왕생하여 극락세계 연꽃에 몸을 의탁해 퇴전하는 인연을 영원히 떠남을 말한다.
넷째는 「필경불퇴畢竟不退」이니,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든 산란한 마음으로 염불하든, 왕생하겠다는 마음으로 염불하든 그런 마음 없이 염불하든, 정토법문을 이해하고 염불하든 모르고 염불하든 상관없이, 아미타부처님의 명호이든 육방제불의 명호이든 이 경의 이름이든 상관없이 귀에 한번 스치기만 하면 가령 천만겁 지난 후라도 필경 이 인연으로 해탈하게 된다. 이는 마치 독을 바른 북 소리를 듣게 되면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모두 죽게 되며, 금강석을 조금이라도 삼키면 결코 소화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업을 지닌 채 동거정토에 왕생하여 위불퇴를 증득하면 모두 다 일생보처一生補處 보살들과 함께 하며, 또한 모두 일생에 반드시 부처의 후보 자리에 오르게 된다.
무릇 상선인上善人들과 한곳에 모여 산다는 사실로 보아 비록 동거정토에 왕생하긴 했지만, 이는 곧바로 횡으로 상위 세 가지 정토에도 왕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생에 부처의 후보에 오르는 보처보살이 된다는 사실로 보아 비록 위불퇴에 해당하지만, 이는 곧바로 세 가지 불퇴를 이미 원만히 증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불가사의한 역용은 수많은 경전과 논서에서 일찍이 설한 적이 없다. 화두를 참구하여 심성의 정인正因을 단박에 깨닫는다 하더라도 이는 겨우 티끌번뇌를 벗어난 첫 단계일 뿐, 깨닫고 난후 세세생생 물러나지 않고 끊임없이 닦아야만 비로소 부처님의 계위에 오를 수 있음을 기약할 수 있는 저 참선 수행법과 비교하여 보면 어찌 같은 말로 정종의 수행법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종승과 교승의 정사들은 어찌 이를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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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원하옵건대, 『요해』의 한 문구 한 글자가 모두 왕생의 자량이 되고, 한 번이라도 보거나 듣는 이들도 함께 불퇴전지에 오르며, 믿거나 의심하는 모든 이들도 도의 종자를 심고, 찬탄하거나 비방하는 등 모든 이들도 돌아가 생사를 해탈할 수 있도록 하옵소서. 우러러 생각하옵건대, (이 법문에 대해서) 제불보살님께서도 섭수ㆍ증명하여 주시고, 동학우인께서도 수희ㆍ가피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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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대사의 『미타요해』는 과거 인광대사께서 “설사 아미타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아미타경』을 주해하신다 할지라도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 주해서를 극찬하셨습니다. 나아가 이 주해서는 아미타부처님께서 자신의 의사를 완전히 표현하신 것으로 조금도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까지 인정하셨습니다. 인광대사께서는 서방극락세계의 대세지보살께서 다시 오신 분(再來人)입니다. 이것이 인광대사의 신분이라고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우익대사의 신분은 드러내신 적은 없지만, 그분도 당연히 다시 오신 분입니다. 결코 범부로는 일평생 이러한 성취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익대사께서는 구경에 어떤 분이신가? 대세지보살의 화신인 인광대사를 비추어 보면 우익대사는 아미타부처님께서 다시 오신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의 화신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세지보살께서 이처럼 찬탄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이 주해서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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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르침은 아가타약으로 만병을 다스리는 총지이며, 절대 원융하고 불가사의한 법문이며, 화엄의 심오한 법장이자 법화의 비밀스런 정수이며, 일체 제불의 심요이자 보살만행의 나침반으로 모두 이 경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를 상세히 찬탄하려고 하여도 겁이 궁진하도록 찬탄해도 다하지 못하나니,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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