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믿음은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뛰어드는 행위는 언제나 어두운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대한 순종, 즉 “마음 놓고 점프해! 내가 잡아 줄게”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애매한 낙관주의나 인생에 대한 종교적 접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지 나사렛 예수 안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런 부분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볼 때 그 부분에 대해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이 새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 사실을 확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 아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대답하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믿음이 아니라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믿고, 그 위에서 행하는 것에서 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고 또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먼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 왔음을 기억하는 사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을 주는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물어물 살아 온 사람, 내일 하루와 다음 일주일의 삶을 위한 힘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서 얻어야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또한 아직 하나님을 신뢰해 본 적이 없는 모든 사람과 그 결과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급박하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열려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모두에게 온다. --- pp.41-42
때로 믿음은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뛰어드는 행위는 언제나 어두운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대한 순종, 즉 “마음 놓고 점프해! 내가 잡아 줄게”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애매한 낙관주의나 인생에 대한 종교적 접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지 나사렛 예수 안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런 부분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볼 때 그 부분에 대해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이 새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 사실을 확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 아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대답하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믿음이 아니라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믿고, 그 위에서 행하는 것에서 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고 또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먼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 왔음을 기억하는 사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을 주는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물어물 살아 온 사람, 내일 하루와 다음 일주일의 삶을 위한 힘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서 얻어야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또한 아직 하나님을 신뢰해 본 적이 없는 모든 사람과 그 결과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급박하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열려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모두에게 온다. --- pp.112-113
때로 믿음은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뛰어드는 행위는 언제나 어두운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대한 순종, 즉 “마음 놓고 점프해! 내가 잡아 줄게”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서 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애매한 낙관주의나 인생에 대한 종교적 접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지 나사렛 예수 안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첫째, 하나님이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잘 안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생애가 그런 부분에 대한 의심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죽음을 볼 때 그 부분에 대해 의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님이 새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 사실을 확증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대단한 믿음이 아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겨자씨만한 믿음이라고 대답하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큰 믿음이 아니라 크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믿고, 그 위에서 행하는 것에서 온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고 또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먼저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 왔음을 기억하는 사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생명을 주는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물어물 살아 온 사람, 내일 하루와 다음 일주일의 삶을 위한 힘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서 얻어야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또한 아직 하나님을 신뢰해 본 적이 없는 모든 사람과 그 결과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급박하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열려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모두에게 온다.
--- pp.164-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