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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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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5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72g | 153*224*30mm
ISBN13 9788991402515
ISBN10 899140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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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광일
서울 하왕십리에서 태어났다. 유소년기에는 박정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박정희를 ‘훌륭한 정치지도자’라고 생각했다. 비판사회과학(정치학)을 접하면서 박정희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인간적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는 그 결과물이다. 경계의 외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 그들과 함께 하는 이들의 몸짓을 학문과 글쓰기의 이정표로 삼고 있다. 저서로는 이 책의 후사(後史)이기도 한 《좌파는 어떻게 좌파가 됐나: 한국 급진노동운동의 형성과 궤적》(메이데이, 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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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억압’은 서로 밀접한 관계 속에 있는 것 아닌가. 따라서 만일 이러한 발상에 동의한다면‘한강의 기적’, 즉‘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것에 대해서는 좋게 평가할 수 있지만, 유신체제라는 반인권, 억압의 독재정치를 한 부분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평가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결국 이것은 분리론에 입각한 박정희체제에 대한 평가들 또한 발본적인 재고의 대상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 p.18

“근대 이후 그것의 핵심인 민주주의의 개념에 대한 재설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박정희 정권에 대한 두 가지 평가들이 근거하고 있는 발상에 대한 비판적 입론의 구축을 의미한다. 흔히 모든 사회관계들 안에 이미 권력관계가 내재해 작동한다고 할 때, 그리고 그 관계들의 현존하는 모습이 비대칭적이고 부당한 관계들이라고 할 때, 그 관계들의 해소 및 극복, 즉 대안의 모색을 포함한 목적의식적 행위로 간주되는 정치 또한 모든 영역에 현존해 있다고 말할수있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하는 것은 곧 권력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의 핵심이 민주주의의 실현이라고 할 때, 그것은 바로‘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동일성’, 곧‘인민의 자기지배 실현’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는 단순히 제도 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정당정치로 상징되는 정치 - 이른바 제도정치 - 는 앞에서 언급한 정치개념이 근대적 지배-권력관계를 매개하며 특정한 제도양식으로 축소되어 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선거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발상은 이러한 흐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 p.23

“이러한 논의들이‘유신체제의 붕괴’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들 논의의 방점은‘박정희의 살해 원인’에 두어져 있다. 제반 사회관계들, 혹은 그 안에 내재되어 작동하는 권력관계들의 측면에서 본다면, 박정희의 죽임은 ‘유신체제’의 붕괴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러한 논의들은 그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박정희=유신체제’라는 인식이 얼마나 뿌리 깊게 각인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으로 이는 ‘박정희신드롬’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가를 간접적으로 다시 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하다.”
--- p.36

“이런 맥락에서 진정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착취와 수탈, 배제와 억압, 차별의 부당성을 인식하는 것에 있다기보다 그것의 대상이 항상 동일하다는 사실이다. 즉 왜 노동자, 농민 등 하층의 생산하는 자들만이 항상 그러한 고통들을 져야만 하는가이다. 그렇기에 정치의 문제, 따라서 그것의 핵심인 민주주의의 문제를 매개하지 않는 논의들은 외견상 아무리 현상을 잘 설명, 분석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 문제들에 대해 답하지 않는 이상 결국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
--- p.44

“5.16군부쿠데타세력은 그 정당성의 확보를 적극적인 반공정책과 민주당 정권의 정치지도력 부재 및 민생고의 해결에서 구했던 만큼 4.19민주혁명의 쁘띠부르주아적 요구를 수용하여 내자위주의 내포적 공업화 정책을 통한 자립경제의 실현과 민생고 해결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군사쿠데타세력의 계획은 50년대를 경과하면서 구조화된 미국으로의 한국경제의 포섭, 국가권력과 관료독점자본의 유착, 차관도입의 부진 및 화폐개혁을 통한 내자동원의 실패 등으로 현실화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쿠데타세력은 4.19혁명의 계승을 공공연히 표방하였음에도 4.19혁명의 대중적 힘을 국가발전에 이용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억압하였으며 그것은 역으로 미국과 관료독점자본의 이해가 관철되어 가는 것을 의미하였다.”
--- p.56-57

“유신체제 등장 전후의 전반적인 계급분화는 주변계급의 누적 확대 및 비생산적 산업의 확장이라는 주변화론의 견해와는 달리 한국사회의 계급분화가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계급분화 양상을 반영하여 생산적인 노동자층의 성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참고로 4.19혁명이 발발했던 1960년의 계급구성을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농민층이 약 65% 정도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비농非農 반프롤레타리아층을 포함한 비농쁘띠부르주아계급이 10.3%, 주변적 무산자층이 10.6%의 비중을 보인 반면, 노동자계급은 10.3%만을 차지하였고 그중 산업노동자는 단지 5.6%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계급구조는 50년대 말의 광범위한 쁘띠부르주아지계급의 존재 및 그들의 생활상의 요구와 이에 대한 지식인, 학생의 동의가 맞물리면서 표출된 4.19민주혁명의 발발과 그 귀결의 객관적 지표를 제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비교할 때, 60년대 쓈반 노동자계급의 급격한 성장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사회 계급분화의 추이는 50년대와는 달리 독점자본의 급속한 지배력 강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유신체제 출범 시기 국가권력의 파시스트화 경향의 객관적 근거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pp.74-75

“이 지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쿠데타 주도세력이 최소한 반미/용공주의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후, 미국은 상이한 카드로 쿠데타세력의 행보를 통제하면서 자신들의 동북아전략을 관철시키는데 진력을 다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은 쿠데타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그 이후 구조적 규정력과 직접적 압력으로 군정의 성격을 규정했던 것이다. 이것은 쿠데타세력을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길들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군정 초기에 실시하고자 하였던‘내포적 산업화 전략에 근거한 경제개발계획’의 수정, 한일협정의 체결 과정에서의 미국의 개입은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 p.92

“6.3항쟁이 국민적인 투쟁으로 발전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굴욕적인 한일회담’인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5.16쿠데타 이후 점차 노골화하는 지배세력의 정치적 반동화, 개선되지 않은 대중의 민생고와 당시 대중들 속에서 주요 비판의 대상이었던 ‘구악舊惡을 능가하는 신악新惡’-증권파동, 새나라자동차 사건, 워커힐 사건, 빠찡코 사건 등 중앙정보국이 개입한 것으로 입증된 이른바‘4대의혹 사건’이 대표적이다-등 부정부패를 고려할 때만이 민정이양 후 불과 3개월여 만에 본격화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성격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63년 민정이양을 위한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신승한 것은 군정이 내세운 ‘민족적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부분적 지지철회가 표현된 것으로, 그리고 6.3항쟁은 한일회담반대투쟁을 계기로 주권자인 대중이 직접 나서 박정희 정권을 타도하고자 한 60년대 마지막 국민적 저항이었으며 4.19혁명의 역사적 의의 및 민주적 요구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마지막 행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 pp.98-99

“5.16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장이 된 박정희는 가난한 농민의 아들임을 반복 강조하면서, 이후 집권 공화당은 농민을 상징하는 황소가 그려진 당기를 앞세우고 토지개혁 이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농민들에게 지지를 얻고자 하였다. 3공화정 시기 박정희 정권은 농협, 농촌진흥청 등을 위로부터 조직하며 자주적인 농민조직의 성장 발전을 차단, 수렴하는 한편 농어촌고리채 정리법안, 농산물가격유지법 등 혁신적인 대對농민입법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농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정책이 실패하거나 효력이 반감하고 독점자본 중심의 개방경제체제로의 전환 이후 농지세의 물납제 부활, 자립안정농가 조성사업의 중단 및 협업화시범농장의 좌절 등에서 보이듯 소위 쁘띠부르주아적 중농주의정책은 자본의 논리 앞에서 그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에 국가권력은 장기적이며 구조적인 대농업정책을 포기하고 60년대 말 이후 고미가 정책, 다수확품종개량에 의한 식량증산정책 등 미시적이고 단기간에 효과가 드러나는 정책을 채택하여 농민지지를 유도해 내려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수출드라이브를 위한 저곡가정책과 모순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그 한계는 결국 대중동원과 이데올로기적 공세에 의해 메워지는데, 뒤에서 살피겠지만 새마을운동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 p.131

“이는 신식민지 혹은 종속적인 국가의 경우 중산층이 파시즘에 대해 적극적으로 투쟁하지는 않지만 또한 스스로 파시즘적인 사회경제적 관점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견해의 유효함을 보여준다. 오히려 3선개헌이라는 군부정권의 정치적 반동에 부가하여 70년대 초 그들의 물적 기반인 종속적 독점자본의 축적 위기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기층대중과 중산층을 분리시키기 위한 물적 조건의 확보를 더욱 어렵게 함으로써 중산층의 정치적 반동으로부터의 이탈을 촉진시키는데, 이는 바로 이들이 70년대 자유주의적 민주화운동의 핵심 주체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바로 이러한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위기와 갈등에 기인하는 정치적 균열의 확대는 71년 양대 선거에서 지배권력의 패배로 나타나고 그와 같은 정치지형의 변화-특히 이 시기가 노동운동과 지식인, 학생운동이 점차 상호침투해가는 과정이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양대 선거 이후 휴교령, 위수령, 국가비상사태 선언(12월 6일) 등으로 시민적 헌법질서와 노동자계급에 예방적 공세를 취하며 군부파시스트세력이 정치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이 이러함에도 3공화정의 지배가 ‘대중적 동의’에 기반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 p.143

“애초 성장, 발전주의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약속했던 것, 즉‘분배와 민주주의’는 언제?지 고통을 감내해야만 맛볼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순간, 즉 대중들이 자신들이 믿고 있던 지배이데올로기의 실현을 즉각 요구하는 순간, 나아가 그것을 강제하고자 하는 순간, 기존 지배이데올로기는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전태일의 외침과 분신은 이 순간을 상징한다. 바로 이 순간 기존의 성장, 발전이데올로기는 대외종속적 개방경제체제의 재생산을 위해 노동자계급에 유혈적 테일러리즘을 강요하는 내외 독점자본의 이데올로기이며 그들과 결탁, 융합된 비민주적 정치권력의 자기정당화 논리라는 인식이 상식의 구성부분으로 인입되는 것이다. 물론 대중은 지배권력이 내걸었던 구호와 이상, 그리고 대중 자신의 현실적 고통 사이에 조성된 점증하는 괴리를 상식적인 단 한마디로 표현하는데, 바로 그것이“더 이상 속지 않아!”이다.
국가를 지배계급이 그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통치하는 하위계급의 능동적 동의를 확보하는 실천적 및 이론적 복합체라 한다면, 노동자계급 등 대중으로부터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 순응非自發的順應’을 이끌어내어 왔던 이들 지배이데올로기의 균열, 특히 축적 위기와 맞물린 성장, 발전이데올로기의 균열은 다른 한편으로 이완되었지만 여전히 손상되지 않은 채 그것들을 떠받치고 있던 반공, 안보이데올로기를 동반한 파시스트적 억압의 강제가 전면에 대두할 가능성과 그 현실성을 제고시키는 것이었다.”
--- p.159

“농촌에서부터 실시된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노동력을 자본화하여 도로와 주택, 주변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농업에 있어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에 기여할 가시적인 자산을 늘려가려는 노력이었지만 결국 그 의도 여부와 무관하게 농촌지역의 자본에의 포섭력을 더 증대시킨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새마을운동의 또 다른 특징은 지배권력에 대한 지지 속에 잠재되어 있는 농민의 불만을 오히려 농민의 집단적 노력동원과 경쟁을 통해 예방하고자 하는 국가권력의 적극적인 농민통제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 p.168

“박정희 정권에게 이음異音그 자체로 간주된 것이 바로 정치였다. 그리고 근대정치의 핵심이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이음異音의 부정은 곧 민주주의의 부정을 의미하였기에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란 ‘이음異音으로서의 정치’를 부정하고 추방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런 측면에서 박정희 정권이야말로 ‘정치가 아닌 치안의 상징’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 박정희 정권이 민족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재현하고자 한 비밀이, 나아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민주주의와 함께 할 수 없는 이유가 간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 내면화’는 감수성이 예민한 초등교육에서부터 이루어졌다. 즉 70년대 초중반 영웅들의 전기들이 고전교양도서로 되어 국민(초등)학교와 중학교 등에서 의무적으로 읽혔고 자유교양대회라는 것을 통해 그것의 내면화 정도가 평가되었다. 각 초, 중등학교에서 선발된 인원들은 지역(시, 도), 전국대회 등에 참여하여 시험과 독후감 등으로 실력을 겨루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이루어졌다”
--- p.182

“8.3조치는 국가개입이 단지 축적 위기의 방어라는 소극적인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듯이 단순히 기업의 채무부담 해소를 위한 조치만은 아니었으며, 자본축적 위기의 도래로 전면에 대두한 경공업 중심의 수출구조가 갖는 한계를 타개하고 중화학공업 육성의 지반 확보를 위한 금융개혁이라는 측면을 함께 지니는 것이었다. 즉 8.3조치는 중화학공업부문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동원을 위한 저금리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한편, 72년의 단기금융업법의 제정에서 보이듯 사私금융시장의 유통자금을 중화학공업부문의 투자로 전환시키기 위한 성격 또한 아울러 내포하고 있었다.”
--- p.188

“8.3조치가 60년대 후반 고도축적에 내재한 모순의 발현으로 나타난 위기를 국가권력의 폭력적 개입에 의해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단계의 자본축적의 재개를 위한 지반형성을 견고히 하였다면, 유신체제의 등장은 새로운 자본축적의 원활한 재생산을 위한 억압적 국가장치의 공식화된 재편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특히 독점자본주의의 경우, 가치실현을 위해 국가의 경제적 개입은 물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개입을 필수조건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은 박정희 정권의 시민적 헌법질서에 대한 위협및 동결이 71년 양대 선거에서의 실질적 패배 이후 강화되고 같은 해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선언과 27일 국가보위법이 불법 통과되면서 급속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며, 이런 맥락에서 유신체제의 등장은 기존의 파쇼화 경향이 공식적인 체제원리로 전환, 마무리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p.191

“전태일의 분신과 광주대단지폭동 등은 ?떤 사회정치적 영향을 미쳤을까. 이들 사건은 저임금저곡가 기제에 근거한 대외개방형 수출지향 발전전략의 한계가 표현된 것이라는 점에서 박정희 정권의 사회정치적 기반의 취약성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런 측면에서 정치적인 위협을 함축하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 그에 저항하는 사회정치세력에게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중요하다. 전태일은 자신에게 지식인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다. 즉 고통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지식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태일의 분신에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 나아가 박정희 정권에 비판적인 정치인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노동자들의 열약한 노동조건과 무권리 때문이라기보다 바로 자신들이 그러한 현실을 방조하고 있었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이들은 경제성장의 뒤안길에서 소외된 노동자 등 대중의 삶, 기본권 보장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흐름은 민중지향적인 자유주의세력 - 비판적 자유주의 혹은 개혁 자유주의 - 이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 pp.218-219

“유신정권의 민청학련의 성격에 대한 규정과 관련하여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민청학련이 3선개헌 반대투쟁, 71년 교련반대투쟁과 위수령 발동시기에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세력에 의해 지도되었으며 이념적으로 ‘비판적 자유주의’에 지배되었다는 점이다. 즉 민청학련은 당시 반유신정서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에 기초하여 전국적인 반정부투쟁을 계획하기는 했으나 지배체제의 본질적인 성격에 대한 인식은 물론 유신체제에 대한 변혁적 전망 역시 지니고 있지 못하였다”
--- pp.222-223

“박정희 정권시기 반체제운동을 관통하였던 ‘자유주의세력의 헤게모니’는 상이한 영역에서, 상이한 요구를 내걸고 전개된 다양한 대중투쟁을 ‘반독재 민주화’로 수렴시키면서 결국 자유주의세력의 특수한 이해에 종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력은 대중의 삶의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한 재야, 학생운동의 방향선회에 기인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들을 추종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대중운동의 빈곤, 최소한 그들을 대표하고자 하는 진보 정치세력의 부재에 기인하는 바 또한 컸다. 따라서 자유주의세력이 주도한 당시 반체제운동은 민중들 자신의 인지 여부에 관계없이 그들이 자유주의세력이 설정한 경계를 넘어 나아가고자 하는 순간,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 pp.230-231

“YH노동조합의 투쟁과 관련,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그것이 유신체제의 붕괴에 미친 영향이다. 흔히 유신체제는 지배권력 안의 갈등의 표현인 10.26사태가 발생하여 박정희가 제거됨으로써 붕괴되었다고 주장된다. 물론 지배블록 내‘강경파’와‘온건파’의 갈등이 반영된 10.26사태가 박정희 제거의 직접적인 계기였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러한 갈등이 표면화되기까지 전태일 등 노동자들의 분신, YH노동조합의 투쟁과 같은 노동자 등 대중들의 반유신투쟁이 단속적으로 전개되어 그러한 갈등의 폭과 깊이를 증폭시키는 계기를 제공하였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도 안 된다.
YH노동조합의 투쟁은 유신정권이 주장하듯이 도시산업선교회가 어린 여공들을 사주하여, 혹은 노사 문제를 반정부투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재야나 신민당의 정략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의 쟁의가 ‘정치적 요구’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노동현장은 ‘정치의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자본의 헤게모니 빈곤과 공개적 독재체제로의 이행은 생산현장에서 일어난 노자 사이의 아주‘사소한 일trivial thing’조차도 국가기구들과의 극단적인 갈등으로 나아가게 하는 경직된 구조를 내재화시켰던 것이다.”
--- pp.249-250

“이러한 발상의 문제는 이 글의 모두에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박정희=유신체제’를 전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박정희를 비대칭적인 사회관계들, 그 안에 내재하여 작동하는 권력관계들 속에 위치시켜 이해하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이해함으로써 박정희의 살해에도 불구하고 유신체제로 상징되는 부당한 사회관계들 및 권력관계들이 계속 재생산되었던 현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효과를 산출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발상으로 인해 유신체제는 박정희의 피살에도 불구하고 붕괴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이 재편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자유주의 사회정치세력들이 대중에게 유포한 반독재 민주화담론의 핵심이기도 한 ‘박정희=유신체제’라는 발상은 최측근에 의한 박정희의 피살과 맞물려 유신체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시키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조성하는데 일조하였고, 그 결과 대중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할 중차대한 시기-이른바‘서울의 봄 시기’-에 모든 이들이 박정희의 죽음 앞에 머리를 조아리게 함으로써 바로 그 대중정치를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는 뿈과를 발휘하였던 것이다.”
--- p.273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은 공개적 독재체제로서의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기독교와 지식인들에 대한 탄압의 성격을 띄고 있었지만, 그 기저에는 전태일의 분신 이후 ‘민중과의 연대’라는 모토에 근거한 노동자 등 민중에 대한 의식화 활동의 확산, 그리고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사회비판적 인식의 심화를 차단하기 위한 정치권력의 의도 또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사건은 유신정권의 고문과 인권유린을 통한 사건조작이라는 수준을 넘어 노동운동(정치)의 향후 발전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유주의적,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점차 이탈하고자 하는 진보적 지식인과 대중노동운동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에 대한 유신정권의 선제적 공세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 p.276

“이 시대 박정희체제를 평가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경제신화, 즉‘한강의 기적’에 관한 논의들, 평가들을 접할 때이다. 자유주의에 입각한 논의는 물론 일부‘진보’를 포함한 대체적 시각은 “‘경제적 성장’을 이룬 업적은 부인할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인식,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성장 위에서만 분배, 복지 등‘삶의 질’을 둘러싼 논의가 가능하다는 담론을 수용하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즉 성장, 나눌 수 있는 빵이 없는데 어떻게 분배와 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논의구도로 끌려들어가 결국 ‘성장과 발전’을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 여부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구도로의 이끌림은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서만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지배적 발상의 수용으로 귀결된다. 바로 이것이 1990년, 1997년‘산업화세력(수구세력)과 민주화세력(자유주의세력)의 연합’이라는 언술로 포장된 3당합당, DJP연합이 가능할 수 있었던 기저의 논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들은 이데올로기이다. 왜냐하면 근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 발전과 착취, 수탈은 결코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역사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 p.285

“한 가지 의아한 것은 박정희체제를 다루는 여러 논의들이 그것의 비민주성, 반민주성을 다루면서도 결국 민주주의의 동력인 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 문제를 충분히 고민하고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박정희체제 20년을 공개적 독재체제, 즉 종속적인 파시즘체제의 등장과정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바로‘운동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실패’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제는 박정희체제의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 비판세력들의 한계가 더 냉정하고 깊이 있게 성찰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박정희체제, 그것의 확대재생산으로서의 신자유주의경쟁국가가 강제하는 분절된 삶들을 해소, 극복하기 하기 위한 제도 안팎의 다양한 시도들 또한 최소한의 역사적 의미를 담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때, 이미 ‘자유주의자들에게 늪이 된 박정희’가 진보에게 덫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pp.29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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