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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기자 민병욱의 민초통신 33

: 6ㆍ7ㆍ80 풀뿌리 서민의 삶과 꿈

[ 양장 ]
민병욱 | 나남 | 2011년 05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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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28쪽 | 568g | 153*224*30mm
ISBN13 9788930085694
ISBN10 8930085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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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민병욱
30년 〈동아일보〉 기자를 하면서 얻은 별명이 ‘민초’다. 식초를 친 듯 시큰하고 눈물 나는 기사를 잘 쓴다고 성 뒤에 ‘초’자를 붙여 선배들이 지어준 별명이었다. 7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만의 기자가 탄생했지만 ‘초’를 성 뒤에 쓸 수 있는 기자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이른바 글 잘 쓰는 기자의 대명사로 별명을 얻었지만 ‘민초’는 풀뿌리 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자라는 걸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閔醋이자 民草였던 것이다. ‘민초 통신’은 1970년대 중반 사회부 사건기자 시절을 중심으로 민초가 겪은 한국사회의 겉과 속 모습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원래는 네이버에 ‘옛날 신문-그 시절 그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09년 7월부터 연재됐다. 20세기 후반 한국사회의 속살을 뒤집고 삶의 이모저모를 감성 터치로 소개해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 풍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듯한 묘사로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다시 역사에 새겨 넣은 작업이 됐다. ‘민초통신’은 아직 진행 중이며 추억의 삶의 현장은 날개를 타고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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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대를 없애자는 공격적 캠페인이 벌어진 건 1960년대 후반이다. 돌격적 서울건설을 진두지휘한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앞장섰다. 경제개발계획마냥 장독대 없애기 3개년 계획까지 세우고 시민들을 몰아붙인 것이다. 이유는 아파트 건설에 있었다. 판자촌 15만 채를 헐고 아파트를 지어 입주시키려 했지만 당시 서울사람들은 시큰둥했다. 왜? “장독대가 없으니까.” 물론, 장독대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민들이 아파트를 외면한 건 아니다. 당시 서민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의 불만 조사를 해보면 제일 큰 것은 뜰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음이 고층을 걸어 오르내리기 힘든 점, 서로의 살림을 지켜보는 시선, 정전 때의 사고위험, 장독대와 빨래널이 설치가 불편한 점 순이었다. 뜰이 없는 것과 장독대, 빨래널이 문제는 사실상 연결된 것이니 그게 가장 큰 이유랄 수 있었다. 장독대가 아파트 문화 확산의 걸림돌로 일정부분 작용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던 70년 4월 8일 새벽 6시 반.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와우아파트 한 동이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아파트 주민 33명과 아파트 단지 밑 판자촌 주민 1명이 매몰돼 숨졌다. 판자촌 철거, 아파트 문화 조기정착에 집착한 서울시 정책이 부실공사를 불러온 탓이었다. 이 아파트는 착공 6개월 만에 준공하고 준공 3개월 만에 무너져 내렸다. 골조조차 제대로 쓰지 않아 무너졌지만 이 사고 탓에 많은 아파트 주민들이 또 ‘장독대 없애기’의 희생자가 되었다. 시민아파트를 관리하던 서울시는 장독대 무게 때문에 와우아파트가 무너진 양 호들갑을 떨었다. 시민아파트마다 공문을 보내 “하루빨리 장독대를 없애라”고 지시했다. 붕괴사고에 놀란 고위 공무원들이 다른 아파트 시찰이라도 나갈라치면 구청 동사무소 직원들이 나와 장독대가 있나 없나를 조사했다. 주민들은 된장 고추장 항아리를 안방 이불 밑이나 화장실 변기 옆에 숨기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당장 서울시로 사람들이 몰려갔겠지만 당시 아파트 주민들은 공무원 위세에 떨며 장독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1부_“장독대를 없애라!”」중에서

버스 여차장들은 ‘힘이 장사’였다. 그들은 말 그대로 버스 차장이지 ‘안내양’이 아니었다. 힘을 못 쓰면 도저히 승차근무를 해낼 수가 없었다. 버스 내부로 오르지 못하고 승강구에 어설프게 서있는 승객 들을, 문 양옆 손잡이를 꽉 움켜쥔 뒤 오로지 팔과 배의 힘으로만 밀어 올렸다. 온 힘을 다한 여차장의 ‘배치기’에 승객들은 쑥쑥 버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갓 스무 살 안팎인 그녀들의 어디서 그런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승객들이 대충 버스 안에 빨려들면 여차장은 운전사가 듣도록 목이 터져라 “오라이!!”를 외쳤다. 출입문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승객을 실은 버스는 “오라이” 소리기 떨어지기 무섭게 내달렸다. 삥땅을 의심 받아 알몸수색의 모욕도 감내해야 했던 것도 여차장의 일상이었다. 여차장 30명 당 한 명꼴인 여자 감독들은 이른바 ‘센터’를 한다며 차장들을 구석방으로 몰아넣고 팬티까지 벗겨 수색하곤 했다. 그들은 제 살림보다 차장들 가방 속, 몸속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행여 보는 눈이 많다거나 시중 여론이 불리해 차장 옷 벗기기가 수월치 않을 때는 물구나무서기를 시키고 줄 위로 뛰게 해 동전이 떨어지길 기다렸다. 여차장들에겐 정말로 ‘마귀할멈’ 같은 존재였다. 상황이 이랬으니 78년 연두기자회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버스 여차장 문제를 거론한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서울시내 90여개 버스회사를 감사한 결과를 밝히며 “대부분 회사는 경영주가 안내양의 후생복지에 관심이 적고 무성의했다”고 질책했다. 당장 처우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이 덕분에 여차장이란 직종은 ‘안내양’이란 새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20세기를 지나며 사라져간 박제 직종이 되었다. 70년대 고속성장의 그늘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우리들의 발이 되었던 그녀들의 모습은 이제 추억으로만 남았다. ---「2부_시내버스 여차장의 애환」중에서

1971년 10월 15일 점심 무렵. 공수특전단과 수도경비사령부의 무장군인, 헌병대가 고대와 연대, 서울대 등 캠퍼스에 진입했다. 장갑차를 앞세우고 집총한 군인들이 학교 별로 200∼500명씩 물밀 듯 쏟아져 들어갔다. 군인들은 말 그대로 인정사정이 없었다. 강의실을 덮쳐 학생들을 연행하고 달아나는 학생 뒤를 쫓아가 워커 발로 까고 정강이를 개머리판으로 찍었다. 고려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군인들은 강의실까지 들어가 문을 부수고 학생들을 연행했다. 문이 열리지 않는 방은 유리창을 깨고 최루탄을 던져 ‘너구리 잡듯’ 학생들을 체포했다. 여학생 십여 명이 최루가스에 질식해 쓰러졌다. 놀라 도망가는 학생들을 총과 곤봉을 든 군인이 쫓느라 캠퍼스 안에는 비명과 고함이 어지러웠다. 학교주변 주민들은 높은 건물 옥상에서 ‘야수적 폭력현장’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눈물을 훔쳤다. ---「
3부_위수령과 강제징집」중에서

자랑스러운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혀를 물어 아픔을 삭이고 수치심에 낯붉히며 몸을 떨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라를 뺏기고 동족전쟁도 치렀지만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이루다보니 그 뒤안길에 진창은 오죽 많았겠는가. 눈물로 닦기 힘든 수모를 또 얼마나 견뎌야 했겠는가. 1970년대 이른바 ‘기생 관광’은 수치스럽지만 잊어선 안 될 현대사의 치부요, 진창으로 기록돼 있다. 72년 일본교통공사가 발행한 관광안내서에 “한국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나라”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관광회사들도 “한국에선 하루 30달러만 쓰면 최고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향락을 누리는 곳, 한국 유객작전을 폈다. 관광단 모집 명칭부터 아예 ‘기생파티 관광단 모집’이라고 한 곳이 많았다. 흥청망청 밤마다 섹스 파티를 벌인다는 노골적 표현만 안 했을 뿐 한국만 가면 바로 기생을 끼고 놀 수 있으며 매매춘도 할 수 있다고 선전했다.
---「4부_부끄러운 한국의 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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