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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터키

두 번째 터키

이혜승 글,사진 | 에디터 | 2011년 05월 2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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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576g | 152*210*30mm
ISBN13 9788992037754
ISBN10 8992037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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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이혜승
지도와 계획 없이 훌쩍 떠나고, 도착지에서는 오래 눌러앉기를 좋아하는 여행이 일상이고, 일상이 여행인 타고난 생활 여행자. 보이지 않는 일상의 신비와 가이드북 바깥의 뒷골목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사진과 글로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자기소개는 저자에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같다. 떠도는 자의 자화상은 스스로도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와도 같은 것이니…. 저서로는 『지도없이 떠나는 오리엔트 여행』, 『모로코 낯선 여행』이 있고, 『이스탄불에서 온 장미도둑』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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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타 탑을 지날 때마다 나는 떠올리곤 했다. 평생 동안 수만 명의 피비린내를 맡고 살아왔던 블라드가 자기 목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얼굴에 범벅이 된 달콤한 꿀을 빨아먹으며 눈을 번쩍 뜨고 괴기스럽게 웃는 모습을. 갈매기들처럼 바람을 타고 유럽에서 아시아로 자유롭게 활공하는 첼레비의 날갯짓을.
--- p.36

아프리카 산 커피는 터키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졌지만, 담배는 유럽에서 터키로 전해졌다. 터키인들은 당시 유럽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담배에 빠르게 빠져들었다. 오죽하면 이태리 사람들은 골초를 ‘터키 사람처럼 담배 피운다’는 말로 표현을 했을까.
--- p.61

터키에서 국솥을 엎어버린다는 말은 애지중지 키운 호랑이 새끼가 도리어 주인을 물거나 망치가 약해서 못이 치고 올라오는 경우 등 하극상의 의미를 두루 갖고 있다.
--- p.69

여행을 할 때는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여유를 찬양했다. 그러나 이스탄불에 살면서부터 그들이 마시는 차와 내뿜는 담배 연기가 고달픈 삶의 편린으로 보인다.
--- p.77

이스티클랄 거리에는 그리스, 영국, 러시아, 스웨덴, 덴마크, 이태리, 프랑스 등 여러 나라들의 영사관이 몰려 있고, 프로테스탄트 교회와 가톨릭 성당, 아르메니아 교회, 그리스정교, 이슬람 모스크 등 다양한 종교 사원들이 공존하며, 오스만튀르크 스타일의 건축부터 아르누보, 아르데코, 클래식, 절충주의 등 여러 양식의 건축물들이 3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의 양쪽을 수놓고 있다.
--- p.125

터키에서는 인간 신체의 각 부위를 이름으로 부르는 음식들이 꽤 있다. 우선, 잘게 다진 고기와 야채를 밥과 뭉쳐서 만든 일종의 주먹밥이 여자 허벅지라는 의미의 카든 부두다. 숙녀의 입술, 작부의 과자, 총리의 손가락, 마님의 배 등은 모두 디저트 종류다.
--- p.134

일본에도 외국인 신랑을 선호하는 아가씨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러시아 여자들처럼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쳐 보겠다는 계산이라기보다는 준수한 외모의 2세를 낳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완전히 까맣지도 하얗지도 않게 적당히 거므스름하면서 마음씨도 착한 터키 남자들은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높은 신랑감 후보라고.
--- p.155

터키에서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남자들은 여자를 잘 단속해야 남자의 자격을 갖췄다고 믿는다. 딸이든, 아내이든 집안 여자들이 정숙하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 바깥 세상에 수치스러운 일이다. 남자의 명예는 체면에 먹칠을 한 ‘가해자’ 즉 여자가 죽음으로써만 회복할 수 있다. 집안의 수치가 된 딸을 살려둔다면 가족 모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겠지만, 죽음으로 불명예를 씻는다면 온가족이 떳떳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에게 여자 가족 구성원의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체면을 살리는 일이다.
--- p.165

터키에서 결혼식 전날은 ‘헤나의 밤’이라 불린다. 헤나는 염색제인데, 피부 보호제로도 사용한다. 신부의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은 결혼이 헤나처럼 보호막이 될 거라는 믿음에서 신부의 손을 물들인다. 터키 군인들도 입대를 하면 엄지손가락을 헤나로 염색한다. 총을 쏠 때 신의 가호를 받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 p.215

예나 지금이나 터키의 소년들은 할례식 날만큼은 왕자 대접을 받는다. 엔긴 아저씨도 번쩍거리는 왕자 옷, 왕관, 손에는 봉까지 쥐고는 이후 이스탄불의 카지노가 될 옛 궁전으로 향했다.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감언이설 외에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던 아저씨는 막연한 공포감에 모골이 송연해졌고, 얼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누군가 아저씨를 체포하듯 팔을 뒤로 돌려 쥐었다. 또 다른 사람은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리게 한 채 붙들었다. 엔긴 아저씨가 빠져나오려 몸부림을 치기도 전에, 이발사 아저씨는 번쩍이는 칼을 들고는 휙!
--- p.216

참전 용사들은 한국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한국인이라는 뜻의 코렐리라고 불렸다. 1960년대 말부터 독일에 취업하는 터키 노동자가 많았는데, 그들은 아무리 오래 있다가 돌아와도 ‘알만’으로 불리지 않았다. 그냥 ‘투르크’였다. 코렐리들은 특별했다. 미다스가 손대는 물건들이 황금으로 변했듯, 한국전 참전 군인과 관련된 것들은 코렐리가 되었다.
--- p.222

미국에서 태어난 한 터키 여학생은 무슬림으로, 머리를 가린 채 수업을 받거나 대학원에 진학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여름방학 때 터키로 여행을 왔다가 대학 교정에 들어가려다 경비에게 저지를 당했다. 종교적 상징물의 노출을 금하는 프랑스조차도 대학에서는 히잡 착용을 허용하는데, 인구의 98%가 무슬림 신자인 터키에서 무슬림이 차별당한다는 사실이 그 여학생에게는 미스터리였다.
--- p.229

한국이나 중릱, 중세의 기독교 사회와 달리 무슬림 사회는 고양이를 대개 좋은 의미의 영물로 여긴다. 무슬림들은 고양이를 해코지하면 모스크를 일곱 채 지어야 그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바그다드의 어떤 신비주의자는 뒷골목에서 떨고 있던 고양이를 옷 속에 넣어 따뜻하게 해 주어 죽은 후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한다. 선지자 모하메트도 고양이 애호가였다. 그가 기도를 드리던 중, 고양이가 그의 옷자락 위에 와서 잠을 잤는데, 고양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모하메트는 자기 옷을 잘랐다고 한다.
--- p.246

이스탄불은 천 개의 이름을 가진 도시로 알려져 있다. 누가 도시의 주인인가에 따라서, 그리고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 다른 명칭이 존재한다고 한다. 비잔틴, 콘스탄티노플, 아우구스타 안토니나, 짜리그라드, 미클라가로르, 카이세리제민, 쿠쉬탄디나 라바티… .
한 무명의 역사가가 기록한 필사본에는 ‘펠리노폴리스’라는 이름이 전해진다고 한다. 펠리노폴리스는 고양이를 뜻하는 펠린, 그리고 도시를 뜻하는 폴리스를 합쳐 만든 합성어로써, 고양이 도시를 의미한다. 이 도시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던 역사의 증인이자 인간과 더불어 도시의 삶에 싱싱한 수액을 공급했던 고양이들에게 헌정한 이름이다.
--- p.248

라마단이란 말은 본래 ‘땡볕에 마르는 땅’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물 한 모금 대지 못해 육신이 바짝 말라가는 금식의 고통을 빗대어 라마단이라 칭한다고….
--- p.263

술탄들 가운데도 주당으로 유명한 사람이 많았다. 무라드 4세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는 술과 담배, 커피도 금지했고,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사형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술탄의 초자아가 백성들에게 금욕을 강요한 반면에, 그 자신은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다. 결국 술탄은 지나친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했단다. 오스만 제국 최고의 전성기를 이룬 술탄 술레이만도 주당이었다.
--- p.271

터키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지점이었고, 두 대륙이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1만5000여 년 전, 인류 최초의 마을이 생겨났고, 그리스의 수많은 신들이 활약을 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 그리고 크고 작은 믿음들이 꽃을 피웠고, 손을 잡았다. 중앙아시아에서 말을 타고 서진해 왔던 유목민들. 그들이 세운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거의 대부분이 혼혈이었다. 34명 술탄의 어머니들 가운데 6명은 투르크인이었고, 나머지는 그리스, 이태리, 세르비아, 루마니아, 프랑스, 러시아, 세르비아 등 다른 나라 출신이었다.
--- p.276~277

이스탄불은 값비싼 골동품과 한쪽 팔이 떨어진 플라스틱 인형들처럼 값어치가 다른 것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거대한 벼룩시장 같다. 시간을 투자해서 잘 고르면 헐값에 횡재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진짜 벼룩만 가져 올 수도 있다. 골목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대로에서 보지 못했던 낯선 건물들이 툭툭 튀어나오곤 했다. 또 다락방에서 오래된 물건들의 잊혀졌던 사연을 발견하듯이, 도시 곳곳의 담과 건물의 오래된 페인트를 긁어내면 겹겹이 쌓여있던 이야기들이 비듬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 p.296

아무도 폐허를 기억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폐허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속하지 못하는 시간 속의 망명자가 되고, 화려한 도시 공간 속의 난민처럼 몸을 숨긴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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