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힘들고 아프고 외롭다."
이 말은 절대 부정적인 말이 아니다. 나만 힘들고 아프고 어렵다는 것이야말로 부정적인 말이다. 우리 모두 힘들고 외롭고 아프다고 여기게 되면 이것은 필연적인 사실로 굳어지고 내가 느끼는 슬픔과 외로움, 고통은 점점 엷어져간다. 결국 인생이 느끼는 외로움이나 고통은 내가 그걸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세상이 무너질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은 무덤덤하게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같은 사건인데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이처럼 차이가 난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 고통, 슬픔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다르다. 그래서 인생은 외로움, 고통, 슬픔 투성이라고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면 이제 더 이상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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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지만 나는 그걸 받아들인다. 원래 세상은 그런 거니까. 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세상은 누구에게나 불공평한 법이다. 누구는 부유한 재산을 타고나서 더 불행해지기도 하고, 좋은 가문에서 자랐으나 큰 병을 일찍 얻어 생을 달리 할 수 있다. 좋은 머리를 타고났으나 그걸 나쁜 쪽으로 이용해서 자신의 신세를 망치기도 하고, 머리가 나쁜 대신 노력하는 바람에 더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재산이 없는 집에서 자라는 바람에 더 큰 꿈을 꾸고 독립심을 길러 자수성가하기도 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불공평한 세상은 우리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이끄는 힘이다. 따라서 불공평하다고 세상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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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인생이 고해'라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방송이나 책 등에서 인생은 항상 즐거워야 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은 항상 해피엔드로 끝난다. 그래서 문제들이 닥칠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나는 정말로 운이 나쁜 인간인지 모르겠다'라고 자조 섞인 한탄만을 되풀이한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불행보다는 행복이 더욱 눈에 보인다. 그러다 보니 더욱 자신에게만 이런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이 따라다닌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어느 인생이고 고해의 바다에서 헤엄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내가 노는 물이 그런 물인데, 그걸 부정하느라고 사람들은 도리어 에너지를 낭비한다. 좀 더 편하고 좋은 곳에서 헤엄치려고 시도하느라 더욱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어느 곳에도 낙원은 없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자신의 일을 뒤로 미루기만 한다.
하지만 '인생이 고해'라고 생각하고 이런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내게 닥쳐오는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은 무게가 덜 실리게 된다. 인생의 고통이 나에게만 닥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힘이 덜 든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과 인정하지 않는 사람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인생에 닥치는 힘든 사건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한동안 슬픔에 잠길 수 있지만, 이런 불행한 사건으로 무너지거나 자포자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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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다는 말을 듣는다고 위축되거나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냉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도리어 냉정한 판단과 결단이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인생은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이타적인 법이다. 지나치게 남을 위하고 남을 위해 산다고 하는 이타적인 사람들 대부분은 실제로 매우 의존적인 경향이 많아 상대방에게 부담을 준다. 지금 내가 냉정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일단 미안해서 얘기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빌려준 돈부터 달라고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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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외부와 나를 차단시켜준다. 그리고 깊은 외로움은 이제 본격적으로 내 자신에 몰입하게 해준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나는 남과 어떻게 다른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외로움이 몰려왔을 때 푹 빠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외로움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우리는 내 자신 안에 숨겨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외로움의 시간도 인간관계를 맺는 시간만큼 중요하다. 혼자서 산책을 하거나 짧은 여행을 가거나 남과 같이 했던 일을 혼자 해보는 것, 카페에 혼자 앉아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거나 혼자 영화를 보는 것 등을 통해 외로움은 내 친구가 되어준다. 외로움은 내가 세상에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그동안 관계 속에서 지쳤던 나를 쉬게 해주는 편한 친구가 된다. 그래서 가끔 우리는 혼자 놀기에 빠져들 필요가 있다. 그러면 외로움은 남들과 관계를 맺느라 지치고 힘든 우리의 영혼을 달래준다.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자식을 키우기 위해,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니?"
이렇게 외로움은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오롯이 자신을 자신답게 편안하게 해준다. 그러니 외롭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라 외로움은 우리의 영혼이 휴식으로 가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자. 이제 외로움에 빠져보자. 그래서 외로움에서 위로를 받자. 그 달콤한 위로를 말이다.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