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미국 유학에서 막 돌아와 대학 강의를 시작할 때 일이다. 러시아 작가 아나똘리 김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이. 둥그런 두 눈에 멋진 콧수염을 기른 그는 키는 보통이었지만 체구는 당당했다. 평범한 외모지만 옆에 있으면 예술가 풍모가 물씬 나는 사람이었다. 1980년 대 중반에 발표한 장편 《다람쥐》가 소비에트 작가동맹 회의에서 비판의 표적으로 떠오르면서 러시아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가인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순수한 한국 피를 가진 사람이 러시아 작가가 되었다는 특이한 이력 때문에 그는 한 때 국내 언론으로부터 많은 조명을 받았고 에세이와 일부 작품이 번역되어 우리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그가 쓴 에세이와 이 작가에 대한 인터뷰 기사에 독자들이 보인 관심과는 달리 정작 이 작가의 소설에 대한 국내의 반응은 정말 미미했다. 우리 글로 옮기기 쉽지 않은 까다로운 문체 탓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자신의 독창적 세계관을 실험적 형식으로 표현하는 이 작가의 예술 세계가 우리에게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투명한 문체의 그의 초기 단편은 그런대로 읽혔지만, 대표적 중편 《연꽃》과 후속 작품들을 읽고는 나 역시 상당히 당황했다. 전통적 의미의 플롯 배제, 시간과 공간의 독특한 구성, 여러 1인칭 화자의 목소리가 섞이다가 마침내 1인칭 복수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과 같은 복잡한 시점의 변화, 마치 하늘 높은 곳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 같은 서술 등 모든 것이 생경하기만 했다.
이 같은 문학 세계의 배경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이 작가의 여러 작품을 읽고 난 후였다. 그는 우리 삶의 현상계 너머에 존재하는 정신세계에 온통 사로 잡혀있던 철학적 시인이었다. 따라서 그의 시선은 늘 인간 존재의 정신적 차원을 향하고 있었다. 인간은 지상의 육체적 삶을 사는 존재인 동시에 영원한 정신세계와 연결된 영적 존재이기에, 그의 문학은 삶의 의미를 잊고 살아온 고독한 영혼들이 경험하는 놀라운 변화에 대한 새로운 형식의 탐구였다. 틀에 박힌 사고로는 이 작가의 글이 이해되지 않고, 닫힌 마음으로는 그가 펼쳐 보이는 정신세계를 공감할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자전 에세이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과 내면세계를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광활한 러시아 땅을 전전하던 우리 동포들의 고통과 애환이, 그리고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외로운 영혼이 험난한 인생행로를 거쳐 러시아 작가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소비에트의 현실은 작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그리고 극적인 삶의 드라마의 이면에는 이 작가의 신비로운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흥미진진한 단서들도 숨어있다. 사물을 대하는 독특한 시각, 서정성, 철학적 사유, 우주적 세계관 등이 그렇다. 또 이 글을 읽다보면, 19세기 말 가난과 배고픔을 피해 러시아 땅으로 이주한 할아버지와, 스딸린 치하에서 황량한 까자흐스딴 초원지대로 추방당한 아버지를 둔 한국인 후예가 인간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웅대한 우주를 언어 예술로 새롭게 창조하는 기적을 어떻게 이루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고통과 눈물을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키는 예술의 놀라운 힘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 자전 에세이가 탄생하게 된 사연은 제법 길다. 약 20년 전 〈전망〉이라는 잡지가 아나똘리 김 선생에게 당신이 살아 온 이야기를 게재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 사회가 극심한 혼란을 겪던 때 한국에서 일종의 정신적 피난 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그 당시 이 분의 표정은 상당히 무거웠다. 막강한 위력을 자랑하던 소련이 외부의 침략 없이 저절로 무너진 사실에 충격을 받은 그는 그 무렵 소비에트 제국의 붕괴를 철학적 알레고리로 표현한 《켄타우르스의 마을》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원래 자기 고백적 글쓰기에 관심이 없는 분인지라 한참을 주저주저 하다가 편집장의 끈질긴 설득에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 후 이 잡지는 아나똘리 김 선생의 글을 매월 연재했고 독자들의 반응이 괜찮았는지 그것을 묶어 1995년 〈초원, 내 푸른 영혼〉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잡지사가 문을 닫으면서, 책은 절판되고 이야기 후반부를 계속 집필하려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반쪽짜리 자전 에세이로 끝날 뻔 했던 이 이야기가 계속 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사상〉 덕택이었다. 작가의 길을 결심한 아나똘리 김이 군 복무를 마치고 모스끄바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초원, 내 푸른 영혼》이 막을 내린 것을 아쉽게 여기던 이 잡지사의 관심과 배려가 고마웠다. 그런? 한국에 머물며 대학 강의를 하던 아나똘리 김 선생이 이미 모스끄바로 돌아간 후여서 그게 문제였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쉽게 파일을 보낼 수 있는 시절이 아니어서, 모스끄바에 있는 작가가 원고를 팩스로 보내오면 내가 매달 번역해서 잡지에 게재하는 식이었다. 여러 일로 바쁜 중에도 도착하는 원고를 꾸준히 번역할 수 있었던 것은, 이분의 글이 갖는 문체적 매력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에 내가 탄복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러시아어 텍스트의 섬세한 뉘앙스를 전달할 방법을 찾지 못해 고민 고민하다가 길 가던 중에 갑자기 묘안이 떠올라 문제를 해결했던 기억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아나똘리 김 선생이 작곡한 악보를 받아들고 끙끙대며 연습을 한 후 한 달에 한번 씩 연주해야 하는 깐깐한 훈련을 내가 받은 셈이었다.
1998년 마침내 연재가 끝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저자와 번역자 두 사람 다 이 자전 에세이를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모스끄바로 간 아나똘리 김 선생은 새로운 작품 집필과 다시 재미를 붙인 그림 그리는 일에 바빴고, 이러저러한 분주한 일로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이 글의 출판에 관심을 기울일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아나똘리 김 선생이 2년 전 한국을 다시 찾았다. 한국문학번역원 초청으로 3개월가량 남원과 충남 서해안 지역에 머물면서 글을 쓰고 또 당신이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기 위해서였다. 웅장한 지리산 자락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남원의 어느 시골집에서,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천리포 해안의 어느 이층집에서 만난 그분은 예전의 활기 넘치던 모습이 아니었다. 어느 새 나이 칠십을 눈앞에 둔 노인이었다. 그때 나는 선생이 쓰신 자전 에세이와 내가 좋아하는 그분의 단편 소설 모음집을 서둘러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20여 년 동안 인연을 맺어 온 내가 존경하는 작가에게 작은 정성이라도 드리고 싶어서였다.
오래된 잡지의 빛바랜 지면들을 다시 넘기면서 자잘한 오류를 바로 잡고, 글의 흐름과 톤을 기억하면서 일부 문장을 손본 다음 여기 독자들 앞에 내놓는 것이 두 권으로 된 아나똘리 김 선생의 자전 에세이 《초원, 내 푸른 영혼》과 《나의 삶, 나의 문학》이다. 그리고 이 분 작품 중 우리 독자들이 친근감을 느낄만한 단편들을 모아 작품집도 한 권 이어서 내볼 계획이다. 개인 아나똘리 김이 아닌, 작가 아나똘리 김을 독자들이 얼마간이라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역자 해설 중에서
내 마음속의 첫 번째 풍경화는 까자흐스딴의 황색 구릉들의 모습이다.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나는 늘 색깔과 선, 그리고 예술적 이미지를 생각한다. 우리 영혼의 세계는 신이 우리에게 준 예술의 박물관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마음속에 여러 그림들로 가득 찬 화랑을 간직하고 있다. 내가 살아 온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나는 완성된 그림으로 상상하기를 좋아한다.---p.15
동양적 인간,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이라고 불리는 어떤 철학적 우수 같은 것을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한국 사람인 나는 러시아어로 쓴 자신의 시와 산문 속에 영혼을 담으려 했다.---p.327
작가의 길을 가면서 거쳐야 할 최초의 관문들을 통과하면서부터 이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목숨을 끊고 싶은 순간을 여러 차례 경험하기도 했다.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위대한 고독만이 나를 진정한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때마침 깨달았기 때문이다.---p.331
마른 들풀과 바스락거리는 다람쥐, 질주하는 말처럼 움직이는 회오리바람이 함께 존재하는 이 초원지대가 내 자신의 영혼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이 메마른 땅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는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 두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들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높은 하늘을 유유히 맴돌고 있었다. 그래도 초원은 늘 고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것이 초원이 타고난 운명이기 때문이다.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