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다 이제야 오시게 되었습니까?" 대학병원의 의사는 안타깝다는 듯 물었다. "다른 병원에서 오진을 해서 그동안 엉뚱한 약만 드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오진을 할 수 있습니까?" 한 의사의 잘못된 진단은 환자의 삶에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인가? 담당 의사의 잘못된 말만 믿고 있다가 놓쳐버린 기회……,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어찌할 수 없는 분노가 연약한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괴감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음……, 검사 결과가 좋지 않네요. 그동안 담배를 많이 피우셨나요?" "치료가 어려울까요?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절박한 마음과는 달리 그렇게 묻는 목소리는 마치 무언가에 주눅이라도 든 양 자꾸만 기어들어간다. "이미 다른 부위로 전이가 되어서 수술은 어렵겠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설마……, 설마……' 하던 것을 기어코 확인해주는 의사의 말이 잘 들리지 않으시는지, 군데군데가 허옇게 보이는 당신의 엑스레이 필름에서 눈을 떼실 줄 모른다. 아버지의 눈은 지금 한 의사의 말을 다시 한 번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끈질기게 네거티브 필름 위를 더듬었지만, 입은 굳게 다물어진 채 아무런 말도 없었다. 누구에게나 결국은 찾아오는 순간이지만, 당신에겐 현실이 된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워서 도대체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를 모르는 것이다. 생각은 했었지만 정작 준비는 못한 일이었던 것이다.
고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오랫동안 간호사로 근무한 사람답게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제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있어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반드시 후회하는 일이 있어요. 생전에 꼭 해야 할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는 두고두고 후회하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너무 많아요. 꼭 해야 할 말을 서로 하지 못하고, 일단 지나가 버리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그 순간을 놓치고 나면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 없어요. 그러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반드시 해야 할 말은 서로에게 꼭 해야 해요."
오늘따라 고모의 말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위엄'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 고모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의 죽음을 도와야 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라는 직업이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중병에 걸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갈 때가 돼서야 이런 말을 할 용기를 낸단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의외로 많지 않단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한단다. 그래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정신 없이 달려와 죽음 앞에 서서 오열을 하는 것뿐이란다. 그러고는 하는 말이 거의 다 같다. '그 말을 했어야 했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아니면 '용서를 빌었어야 했는데……, 용서한다고 말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러면서 미처 그런 말을 하지 못하고 상대를 떠나보낸 자신을 한없이 책망한단다."
오늘은 공장에서 퇴근하면서 그동안 미뤄왔던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참 존경스러워요. 평생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제가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평소에 전혀 하지 않던 말을 하려니 많이 망설여지고 또 몹시 쑥스러웠다. 하지만 용기를 내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렇게 결심을 하고 입을 떼니 사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다. 물론 고모의 당부도 있었지만, 아버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니 어려운 말도, 쑥스럽게 생각할 말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생각했던 것, 내가 느꼈던 것을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 고맙구나!" "아버지 세대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가 어려우시잖아요." "왜 그랬는지……, 남자는 그저 과묵해야 좋은 줄 알고 있었으니……." 잠시 말끝을 흐리시던 아버지는 오래 기다리며 준비하셨다는 듯이 말을 꺼내셨다. "아들아, 내가 널 많이 사랑한다." "아버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은 모르지만, 아버지가 그 말을 얼마나 어렵고 힘들게 꺼내셨는지는 그 표정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마도 그 말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준비하고 또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신 모양이었다. 도대체 내 마음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뜨거운 눈물 두 줄기가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코 끝이 한없이 시큰거렸다. 아버지의 그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이토록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줄은 이전에는 정말 몰랐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도 아버지를 사랑해요. 아주 많이 사랑해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참으로 아름다운 이 세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언젠가는 찾아 올 그 순간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된다면, 나는 과연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 내 삶에 들어온 황색 등의 시간에 아름다운 한 편의 시를 노래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앞의 단상에 놓인 방석에 무릎을 꿇고 앉으셨다. 목사님은 아버지의 머리에 물을 뿌리시며 세례식을 거행하셨다. 몇 올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지나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어깨를 타고 내리며 아버지의 눈물을 씻어가고 있었다. '무엇이 아버지를 저렇게 변화시켰는가?' 나는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마치 꿈속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내 손을 감싸 쥐어 정신을 차리니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잡고 계셨다. "어머니, 좋으세요?" "그래,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저도 잘 실감이 나지 않네요." "나도 네 아버지가 우는 모습은 처음 본다." "……." "저 무심한 양반이 그래도 눈물이 있었구나." "……."
당신의 신앙 고백은 가족들에게 축복이 됩니다. 그보다 더한 마지막 선물은 없습니다. 가족들이 남은 삶을 통해 당신에게 얼마나 감사를 느낄 지 모릅니다. '꼭 말을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음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백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생각과 사고는 자주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생각 속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별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으로 믿어 의롭다 함을 얻으며,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로마서 10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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