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되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를 죄책감 없이 미워하는데도 용기가 필요했고, 뒤끝 없이 용서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어떤 일을 선택하는 데도, 혹은 포기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는 데도 용기가 필요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는 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그 ‘용기’가 없었다. 아니 있어야 하는지 조차도 몰랐다.
--- p.15
나이가 아주 많이 들고 내 마음이 단단해지고 나서야 27살 엄마의 아픔이 조금 보인다.
엄마에게 ‘나의 못생김’은 낯선 곳에 홀로 남겨둔 남편에 대한 원망이고, 첫 출산을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 했던 외로움의 그림자였다.
엄마에게는 ‘못 생겼다’는 말 밖에는 다르게 쏟아낼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그렇게 질리도록 “못생겼다”고만 했나 보다. 내가 화장을 해도, 좋은 옷을 입어도, 뼈 시렸던 엄마의 시간은 달라질 수 없으니 나는 엄마에게 꼴 보기 싫고, 못생긴 첫째 딸일 뿐이었다.
--- p.21
누군가가 하면, 나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누군가에게 아름다우면, 내게도 아름다울 줄 알았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은, 내게도 좋은 일이 될 줄 알았다.
그 누군가와 내가 다르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살다 보면 그 단순한 진리를 잊어버릴 때가 더 많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나의 출산은 그렇게 어이없는 시트콤처럼 기억되고 말았다.
그 땐 내가 나를 너무 몰랐다.
--- p.49
그녀가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하버드 졸업식의 연설자 오프라 윈프리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말했다.
“인생에 실패라는 건 있다. 실패는 우리를 또 다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삶의 한 부분일 뿐이다. 세상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말고, 무엇을 할 때 가장 재미있는지 생각해 보라”
인생에서 꽃과 화초를 만질 수 있는 기쁨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 화원에 카페를 열어,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그녀, 그녀의 소원이 꼭 이뤄지기를 소망해본다.
--- p.86
비가 오는 날에는 할머니의 동태탕이 더욱 그리워진다.
또각또각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따뜻한 국물, 세상 부러울 것 없었다. 허한 마음 채우는 만병 통치약이었던 할머니의 동태탕, 된장, 고추장, 각종 장아찌들, 그리고 젓갈까지.
할머니의 손맛이 배어있었던 음식들이 생각난다.
아니다. 할머니의 손맛이 아니라 할머니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 p.92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조금 더 일찍 도와 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신경이 쓰였다. 연신 차오르는 기침에 저녁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평생 농사 일만 하고 살아오신 아버지, 이제 농사 그만하라고 얘기하면, 시골에서 할 일이 뭐가 있냐면서 ‘조금만, 조금만 더’ 하신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이것저것 심어놓을 테니까, 가져다 먹어”라고 얘기하신다. 흙과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 그 삶이 조금만 덜 고단하기를 희망해본다. 흙의 정직함에 기대어 살아가는 아버지, 건강이 조금만 더 나아지기를 희망해본다.
--- p.107
내 안에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녀가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내 생애보다 그녀의 생이 짧은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내가 살면서 느끼고 듣고 생각한 것들을 먹고 살기에, 아마 내 생명 이후에 그녀가 탄생했을 것이다.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시간이 지나자 그런 상상은 선명한 자각으로 이어졌다.
--- p.147
나는 심리 상담사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들려준 그들은 종종 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저 같은 사람이 또 있나요?”
그런 질문에 대해 나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해준다.
“그 질문의 답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p.160
한 번도 제대로 숨겨둔 미움을 만나지 않았기에 이별도 없다.
어느 멋진 날,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어떤 엄마는 아이에게 말한다.
“그래 그렇구나! 엄마가 몹시 밉구나!”
이러한 엄마 앞에서야 비로소 아이도 자신 안에 있는 미움을 소중하게 다루며, 잘 이별할 수 있고 뜨거운 사랑으로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어쩌면 나는 우리 남편이 그런 엄마가 되기를 바라는 아이인지도 모르겠다.
--- p.166
나에게 던진 질문들을 안고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오랜 시간 방치 되어 있었던 나를, 오롯이 기록해 보고자 함이다. 잘 살아낸다는 것은, 결코 생각만으로 잘 실현되는 일이 아님을 알기에, 글쓰기를 통해서 ‘새로고침’을 반복하려고 한다.
‘청춘이라 하기엔 너무 때 타버렸고 어른이라 하기엔 한참 덜 익은’ (우근철/그래도 괜찮아 中에서) 사람이지만, 지금부터 시작하는 글쓰기가 나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 줄 수 있을 지 스스로 기대해 본다.
--- p.182
어쩜, 12살 이후 아이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이의 세상 엿보기는 오롯이 아이만의 방식으로 습득되어 갔고, 그렇게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알 수 없는 어느 길에서부터 늘 시작되었다. 아주 낯선 골목길이었다. 분명 그 곳은 처음 가 보는, 익숙하지 않은 골목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여행이라도 하듯, 아이는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있었다. 골목길은 너무 밝지도 않았지만, 그리 어려운 길도 아니었다. 아이는 높은 담벼락을 따라 이쪽으로 갔다가, 저쪽으로 다시 돌아 나오면서 같은 골목길 안을 몇 바퀴째 돌고 있었다.
--- p.188
그 시절 나는 때묻지 않은 투명한 아이였다. 그 어떤 잣대로도 세상을 재지 않았으며, 재려고도 하지 않았고, 잴 줄도 몰랐던 1급수 맑은 물의 버들치 같은 아이였다. 내가 살았던 그 동네에는 여자 중학교, 남자 중학교가 각각 하나씩 있었다. 장난을 좋아했던 내 성격은 남자 중학교에까지 소문이 났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 이후, 남자 중학교에는 괴상한 소문이 떠돌아다녔다고 들었다.
“1980년대 즈음, 옆 여자 중학교에 남자아이가 하나 다녔었대.
그 아이는 개구리 소년이었대”
--- p.193
나이가 들어서일까. 가끔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추억이 하나씩 들춰질 때가 있다. 끝내야 할 일을 마무리한 후의 여유일까, 아니면 어제 저녁 늦게까지 읽은 책 때문일까, 거실 끝까지 밀려오는 오후 햇살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추억이 많은 사람'은 부자라고 했다. 기분 좋은 추억이든, 그렇지 않은 추억이든, 흐르고 난 것들은 아름답게 기억되는 모양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저 좋았던 어느 오후’로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나도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 보다.
--- p.219
사람은 누구나 의미 있는 존재이기를 원한다.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 먹고 살아내는 일에 충실했던 시간들의 기록은 엄마에게 무엇보다 좋은 위로가 될 거라고 믿는다. 열심히 살아낸 자신을 격려하고, 앞으로의 삶을 기대하는 특별한 선물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어서 빨리 엄마에게서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으면 좋겠다.
“이제 딸이 책 만들어줘”라고.
--- p.223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숨소리를 확인하고, 숨결이 고르게 펴지는 모습을 지켜봐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그렇다. 허덕거리며 쫓아오는 삶의 그림자를 챙겨보는 위로와 격려의 시간이며, 나답게 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성숙의 시간이다.
--- p.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