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과 헤어지고, 의사한테 금주를 권고받고, 운전도 할 수 없게 된 남자는 어린아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많을 때는 일주일에 다섯 번이나 나를 불러냈다. 나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기사도를 발휘하는 여자였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문을 열어주고, 가방을 들어주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작성했다. 그는 나에게 그날의 피곤지수를 설명하며 택시를 잡으라고 했다. 그는 턱짓 하나로 나에게 이것저것 다 시켰다. 나는 새삼 그의 뻔뻔함에 놀랐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 예쁜 여자가 그렇듯 잘생긴 남자도 관심과 배려를 받는 쪽에만 익숙하기 마련이었다.
● 한 달간 매일같이, 카페라테 톨 사이즈 한 잔이 다 식어갈 때까지 두 눈을 마주했던 남자. 그가 대뜸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고, 축하해달라며 환하게 미소짓는다. 그에게 욕을 실컷 퍼부어주고 뛰쳐나온 뒤 두 달이 지난 어느 오후, 그에게서 힘들고 아프다는 엄살이 섞인 전화가 온다.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그 남자를 집까지 바래다주기 시작한다._「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달라고 한다」
● 새벽에 만취한 채 콘돔을 달고 들어온 후, 남편은 사고를 칠 때마다 늘 그랬듯 미애에게 선물공세를 퍼붓는다. 그러면서 이번에 투자한 영화가 잘될 것 같다며 자랑을 한다. 어느 젊고 철없는 부부가 서로가 정해주는 상대하고만 바람을 피우기로 한다는 내용의 <불륜 세일즈>라는 영화. 남편은 그 영화의 내용처럼, 장난삼아 미애에게 남자를 한 명 골라준다. 그리고 며칠 후 미애는 그 남자, 병우를 유혹해낸다._「불륜 세일즈」
● ‘나’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홍차 시폰케이크를 사들고 아파트로 찾아간다. 이제 효자 노릇은 때려치우고, 어머니에게서 기어코 사업자금을 받아낼 생각이다. 그런데 이미 낌새를 알아차린 어머니는 편지 한 장만 남겨놓고 성지순례를 떠나버린 후다. 부들부들 떨면서 집을 나오려던 나는 발길을 돌려 주방으로 향한다. 어머니가 밀폐용기 타파웨어에 담아 주방 곳곳에 숨겨놓은 보석들을 찾기 위해._「타파웨어에 대한 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