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부엉이Owl of Minerva
황혼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비로소 그 날개를 편다.” 왠지 장중한 울림이 있는 이 말은 헤겔이 한 말이다. 헤겔이 자신의 저서 『법철학』 서문에서 언급한 이 말은 마르크스가 『헤겔 법철학 비판』이라는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언급하면서 서양철학사에서 꽤나 의미심장한 하나의 문장이 된다. 무슨 뜻일까? 부엉이가 황혼 무렵에야 날개를 펴다니? 부엉이는 원래 밤에만 활동하지 않나?
미네르바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이고 이 여신이 애지중지하는 부엉이는 곧 ‘지혜’를 상징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따르면 워낙이 미네르바의 신조는 까마귀였다는데, 이 까마귀 녀석이 미네르바의 비밀을 누설한 죄를 짓고 그 자리를 부엉이에게 내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말한 것은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낮이 지나고 밤에 그 날개를 펴는 것처럼, 철학은 앞날을 미리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역사적 조건이 지나간 이후에야 그 뜻이 분명해진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바로 대낮의 혼란이 가라앉은 저녁이 되어야 비로소 모든 사태가 명확해진다는 것, 지혜는 모든 일이 끝날 무렵 얻어진다는 것이다. --- p.16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
자기 생각만이 원칙인 독불장군
프로크루스테스란 이름은 그리스어로 ‘잡아 늘이는 자’란 뜻. 이 이름의 주인공은 포세이돈의 아들로 ‘다마스테스(얌전하게 만드는 자)’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무시무시한 악당이다. 아티카 지방에 살던 프로크루스테스는 자기 영지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 자신의 쇠침대에 눕혀놓고 결박했다. 그러고는 나그네의 몸이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잡아 늘여 침대 길이에 맞추고, 반대로 몸이 침대보다 길면 긴 만큼 무지막지하게 잘라버렸다. 그에게 걸린 이상 그 누구도 이와 같은 죽음을 피해갈 수 없었다. --- p.60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몸을 지배하는 마음의 효과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인간은 더욱이 칭찬 한마디에, 격려 한 구절에, 위로 한 소절에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동물이다. 약효가 전혀 없는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고 속이고 환자에게 복용토록 해도 진짜약이라는 그 믿음이 환자를 낫게도 하는 것.
‘플라시보’란 ‘마음에 들도록 한다’는 뜻의 라틴어로서 가짜 약을 의미한다. 만성질환이나 심리상태에 영향받기 쉬운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에게는 가짜 약을 투여해도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플라시보 효과’ ‘위약효과’라고 한다. 따라서 제약업계에서는 어떤 신약이 개발되었을 때 실제 임상효과가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플라시보 검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즉 가짜 약을 투여한 군과 진짜 약을 투여한 군을 비교, 확실한 유효성이 드러나야 그 약이 제대로 된 약으로 인정받는다는 말이다. --- p.120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
진실은 결국 승리하는 법
법은 그 무엇보다 진실을 밝히는 일에 앞장서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역사상 진실의 힘은 언제나 위대하고 놀라웠다. 드레퓌스 사건은 그것을 보여준다. 1894년 프랑스 육군 포병대위였던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으로 사건은 시작된다. 증거는 독일 대사관부 육군 무관 앞으로 보낸 편지의 필적인데, 이것이 드레퓌스 필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섬으로 유배당한다. 사실상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 드레퓌스를 간첩으로 몰고 간 것이다. 당시 고급 장교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덮으려고 사실을 은폐했으며, 반유대적인 가톨릭교회와 보수 언론들도 드레퓌스 사건을 여론재판하며 유대인들을 맹비난했다.
그런데 진짜 사건은 그 후 발생했다. 드레퓌스가 유배된 지 일 년 만에 진짜 간첩 에스테라지가 우연히 적발된 것이다. 이를 발견한 피카르 중령은 참모본부 상부에 이 사실을 알리며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진범은 무죄로 풀려나고 피카르는 군사기밀 누설죄로 체포된다. --- p.178
빅브라더Big Brother
모든 인간을 향한 절대권력의 눈
나의 하루가 누군가의 치밀하고 계획된 프로그램이라면? 30년간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노출되어 본의 아니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신의 모든 일상을 보여주게 된 남자를 그린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있다. 거대한 돔 안에 인공도시를 짓고 5000대의 카메라를 도시 곳곳에 설치해 한 사람의 생애를 탄생에서부터 30년 동안 매일같이 24시간 생방송으로 보여준다는 독특한 설정을 갖는 이 영화 속에서 미디어는 새로운 권력이자 신으로 그려진다.
이렇듯 거대한 사회권력, 정보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혹은 그러한 사회체계를 일컬어 빅브라더라 한다. 전체주의의 탈을 쓴 실로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맏형인 셈.
이 말은 사회학적 통찰과 풍자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비롯된 용어다. 소설은 세계가 세 개의 경찰국가로 나뉘어 통치되는 가상미래공간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중 하나를 지배하는 자가 빅브라더다. 소설 속에서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통제하는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하는데, 텔레스크린은 심지어는 화장실에까지 설치되어 있어 실로 가공할 만한 사생활 침해를 보여준다. --- p.224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피부색에 관한 무너지지 않는 편견
21세기 들어 차이와 차별 논쟁이 뜨겁다. 피부색의 차이가 곧 차별로 이어지는 상황이 지구촌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데, ‘아파르트헤이트’는 이 차별을 대표하는 용어다. 즉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를 일컫는 이 말은 결국 흑인에 대한 모든 인종차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원래 분리, 격리를 뜻하는 아프리카 말이다. 남아프리카에서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은 17세기 중엽 백인의 이주와 더불어 차츰 제도로서 확립되었는데, 아파르트헤이트가 본격화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내에 민족주의 운동이 한창 고양되던 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는 1949년 백인의 순수성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다른 인종끼리의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하고 또한 경제적·사회적으로 백인의 특권을 유지강화시키는 여러 법안을 만들어내는데, 당시 국민당 정권은 이에 대한 국제적 비난까지도 무시하면서 인종격리제도를 완성시킨다.
--- p.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