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뺑소니에 치인 후 200미터 추격 ‘맨손으로 제압’”
2012년 11월 14일, 스포츠조선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기사 제목만 봐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차 한 대가 배우 하정우를 치고 도망갔는데, 하정우가 쫓아가서 붙잡았다는 얘기다. 미담이긴 하지만, 이 기사가 수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는 여기 달린 댓글들 때문이다. 몇 개만 보자.
?아이디미상: 하정우는 그 사람한테 도주하다 잡혔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 진짜 말 그대로 역대 최고로 비참한 연예인이 아닐까 싶다.
?mghb****: 앞으론 자숙 좀 하시고 연예계 나오셔야 할 듯요.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뺑소니라니.
?skyb****: 하정우 진짜 나쁜 새끼네. 뺑소니 하고 200미터나 도망가? 양심도 없는 놈, TV에 두 번 다시 나오지 마라.
?hkps****: 헐, 진짠가요. [힐링캠프] 나왔을 때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인생 끝났네요. 뺑소니를 치고 어떻게 도망갈 생각을 하지? 어쨌든 피해자분이 크게 안 다쳤음 좋겠어요.
피해자인 하정우가 갑자기 가해자로 둔갑하다니, 이리도 황당할 수 있을까? 게다가 마지막 댓글 두 개가 더 심각한 건, 뺑소니의 정의를 모르는 듯해서다. 원래 뺑소니라는 게 사람을 치고 도망가는 행위를 일컫는데 “뺑소니를 치고 어떻게 도망갈 생각을 하지”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도주거리가 200미터면, 물론 더 도망가다 실패한 것이겠지만, 뺑소니 치고 그리 긴 거리는 아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는 기사에 피해자를 혼동한 댓글이 이렇게 달린 이유가 뭔지 궁금해진다. (…)
그러니까 진짜 난독증과 위에서 예로 든 인터넷 난독증은 차원이 다르다. 후자는 읽는 데는 지장이 전혀 없지만, 읽은 것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이런 분들이 있었겠지만, 인터넷 시대 개막 이래 이런 유의 난독증이 급증한 것은 글을 차분히 읽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읽을 게 얼마 없을 때는 다시 읽는 게 가능했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상황에선 마음이 급해져 본문을 대충 읽게 된다. 본문의 맨 위 두 줄은 제대로 읽지만 그 이하는 맨 첫글자만 읽는, 소위 F패턴으로 읽는다. 사람의 이해 능력에 아주 큰 차이가 없다면, 글을 제대로 읽은 이에 비해 F패턴으로 읽은 이는 본문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크다. -42쪽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사이비 책을 구별할 수 있을까? 첫째, 저자의 프로필을 확인하라. 『81가지』처럼 의사가 아닌 법학도가 의학 책을 썼다면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의사가 아니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의학 책을 쓸 수는 있겠지만, 다음 일화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책 출간 후 활발히 활동하던 허 씨는 관절염을 자연의 음식인 카레로 치료했다고 자신의 SNS에 쓴다. 카레로 관절염을 치료한다고? 뜻밖의 글에 놀란 사람들이 원문을 찾아봤더니 그는 ‘health care’를 카레라고 번역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는 다음과 같은 패러디가 양산됐다.
-careful: 카레를 많이 먹어 배가 부른
-I don’t care: 나는 돼지고기 카레
-Please take care of yourself: 손님, 카레는 셀프입니다.
-career: 카레를 만드는 사람
둘째, 다른 이들의 의견을 듣자. 건강에 관한 책이면 의사들의 의견, 건축에 대한 책이면 건축가들의 의견이 의미가 있다. 만일 해당 집단에서 아무 이견이 없다면 그 책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참고로 『81가지』가 나온 뒤 의사들은 반박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조목조목 비판을 가했다. 허 씨를 믿는 이들은 이게 “의사들의 비밀이 폭로되자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저러는 것”이라며 역공을 폈는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한 의사의 말 혹은 글을 따르다 잘못되는 경우 그 의사에게 소송을 걸면 되지만, 허현회의 말을 따르다 잘못되면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그 밖에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먼저 책을 읽은 사람들의 의견도 중요하다.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해도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건 가능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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